탄력받나 했더니 웬 날벼락?
▲ 이번 이혼소송이 이건희 전 회장(왼쪽)에서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작업 추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
이 전무 측에서는 이번 소송이 장기화되지 않게끔 임 씨 측과 물밑조율을 펼치려 하겠지만 5000억 원대 재산분할과 두 자녀 양육권까지 요구하고 나선 임 씨의 기세가 도무지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직은 예단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이번 이혼소송이 후계구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지 짚어봤다.
삼성 입장에선 상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겠지만 이번 소송이 임 씨 측에 유리하게 전개될 경우 세간의 관심은 이 전무 측이 어떻게 자금을 마련하려 할지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개돼 있는 이 전무 재산목록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삼성전자 주식이다. 이 전무는 삼성전자 지분 0.57%(84만여 주)를 갖고 있다. 2월 12일 현재 주가 52만 원 기준으로 환산하면 4370억 원 정도가 된다.
조만간 그룹 경영권 승계가 예상되는 이 전무로선 핵심 계열사 삼성전자 지분율이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이를 현금화해 내주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희-홍라희 부부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 아들을 도와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희 전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1.86%(274만여 주)로 시가 총액은 1조 4246억 원이며 홍라희 씨 명의 지분 0.74%(108만여 주)의 시가총액은 5631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 전 회장 일가가 삼성전자 지분을 선뜻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까. 삼성 총수일가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의 순환출자구조 덕분에 소량의 지분만으로 삼성전자 같은 알짜 회사를 지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주주로서의 책임경영을 위해 핵심 계열사 지분율을 늘려야 할 판에 가정문제로 인해 지분을 내다팔 경우 시장의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전 회장은 삼성전자 외에도 삼성물산 삼성증권 같은 상장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지분율이 각각 1.41%(220만여 주), 0.10%(6만여 주)에 불과하다. 시가총액으로 따져도 각각 910억 원, 40억 원 정도다. 법원이 임 씨의 청구를 다 받아들였을 경우지만 5000억 원의 재산분할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이재용 전무는 삼성전자 외에 삼성에버랜드(25.10%) 삼성SDS(9.1%) 삼성네트웍스(2.81%) 등 비상장법인들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비상장법인의 주가 산정 기준이 모호해 수천억 원의 현금화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게다가 삼성에버랜드 주식은 지배구조의 핵심이기 때문에 아무리 비싸게 쳐준다고 해도 내주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삼성 측이 비상장사 주식으로 손실을 물어준 전례가 있긴 하다. 지난 1999년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차 법정관리로 손실을 떠안게 된 채권단에 삼성생명 주식 350만 주를 내준 바 있다. 상장시 1주에 70만 원으로 치면 채권단 손실을 메울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상장을 전제로 한 지분 증여 역시 향후가치를 산정하기 애매해 분란의 소지를 남겼다. 삼성생명 상장이 이뤄지지 않자 삼성차 채권단은 2005년 12월 이 전 회장과 계열사들을 상대로 5조 원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 본보기다.
만약 이 전 회장 일가 보유 부동산 규모가 수천억 원대에 이른다면 이를 처분해 임 씨 측에 제공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이 전 회장 일가에 숨겨놓은 부동산 의혹 꼬리표가 붙어 또 다른 논란을 잉태할 우려가 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삼성 총수일가 부동산 공개로 이번 소송의 본질을 벗어나 ‘이 전 회장 일가의 거액 부동산 취득과 상속과정’에 여론의 비판적 포커스가 향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이재용 전무가 완패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라면 꼭 돈이 아니더라도 이 전무의 총수 등극이 위태로울 수 있다. 이혼 소송 과정에서 만에 하나 이 전무가 도덕적 상처를 입는 상황이 생긴다면 ‘자질논란’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먼 훗날의 얘기일지 모르지만 자녀들 양육권이 임 씨에게 넘어갈 경우 이재용 이후 삼성그룹 경영권의 승계행방을 두고도 집안싸움이 불거질 수 있다. 이 전무 측이 소송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임 씨의 영향력 하에 놓인 자녀들보다는 총수일가 내 다른 후계자를 염두에 둘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 적통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우려로 인해 재계 관계자들은 삼성 측이 어떻게든 합의를 이끌어내 법정까지 가지 않으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임 씨와 소송 취하 및 양육권 포기를 위한 절충작업을 벌이는 동시에 ‘파경의 책임을 이 전무에게 물을 수 없다’는 식의 여론몰이 작업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소송을 ‘이재용 대 임세령’이 아닌 ‘삼성그룹 대 대상그룹’ 구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임 씨가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과 의견을 전혀 나누지 않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까닭에서다. 이렇다보니 대상그룹에 대한 검찰수사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현재 검찰은 임창욱 명예회장 개인소유 투자회사가 주가조작을 통해 수백억 원대 부당이익을 취한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다. 정보 관계자들은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임 명예회장 연루 여부나 부당하게 조성된 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단서들이 삼성의 정보망에 걸려들 경우 이번 이혼소송이 새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천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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