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수사반장… 캄캄할 때 진가 발휘
▲ CCTV에 포착된 결정적 증거들이다. 피해자 통장에서 70여만 원을 인출하려던 강호순(위사진들). 제과점 여주인 납치 용의자(아래왼쪽).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 범인의 모습. | ||
특히 연쇄살인마 강호순 검거 이후 CCTV에 대한 관심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또 이밖에도 수많은 사건 해결에 CCTV가 동원된 뒷얘기들이 들리고 있다. 이에 맞춰 강력범죄 해결을 위해서 CCTV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고 한편에서는 인권침해 논란까지 제기되고 있다.
CCTV의 기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 아날로그 VCR 방식에 흑백으로 테이프에 녹화되던 CCTV는 그야말로 옛것이 된 지 오래다. 근래 사용되는 CCTV는 대부분이 DVR 방식으로 하드디스크에 영상을 저장하며 놀라울 정도의 선명도를 자랑하고 있다.
360° 회전에 상하이동은 기본이고 100m 밖의 자동차 번호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줌 기능이 탑재된 CCTV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움직이는 물체가 포착될 경우에만 촬영이 시작되는 자동추적 기능이 있는가 하면 영화 속에서 보던 것처럼 적외선 렌즈를 사용해 빛이 전혀 없는 야간에도 물체의 식별이 가능한 기능을 지닌 CCTV도 등장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폭발물이나 유실물 등을 찾아내는 기능을 지닌 CCTV도 있다.
한국IBM에서 개발한 ‘스마트감시시스템’은 평범한 상황에서의 인간 행동성향이 입력돼 범죄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 행동성향에 근거해 규정에 금지된 행동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거나 여러 정황상 의심스러운 행동으로 판단되면 CCTV가 자동으로 경비업체에 연락을 취하게 된다는 것.
또 최근 국내 CCTV 업체들은 마스크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경우 현금 인출기에서 지급이 안 되게 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도입을 준비 중이다. 업체 관계자들과 경찰은 하나같이 “이 CCTV가 상용화되면 앞으로 범죄 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며 범인 검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CCTV가 범죄사건 해결에 일조한 경우는 하나 둘이 아니다. 연쇄살인마 강호순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사례. 강호순이 군포 여대생 A 씨의 살해를 자백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CCTV에 찍힌 자신의 ‘뭉툭한 손가락’ 때문이었다는 후문.
A 씨의 통장에서 70여만 원의 돈을 인출할 당시 강 씨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콘돔을 손가락에 끼운 채 비밀번호를 눌렀기 때문에 현금인출기에는 지문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경찰이 CCTV를 통해 식별이 가능했던 것은 오직 강 씨의 손가락 모양뿐이었다는 것. 이에 경찰은 영상에 찍힌 모습과 강호순의 실제 손가락 모양의 유사점을 가지고 추궁했고 강호순은 그제서야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고 한다.
또 A 씨 살인사건 당시 강호순이 제시했던 알리바이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도 CCTV다. 강 씨는 처음 A 씨 살인사건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있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강 씨의 주장과 달리 A 씨가 살해된 시점을 전후해 강 씨가 집에서 에쿠스 차량을 몰고 나가는 것이 CCTV에 찍혀 있었다. CCTV가 사건 해결에 가장 중요했던 강 씨의 알리바이를 깨버리는 단서를 제공했던 셈이다.
경찰에 따르면 강 씨를 A 씨 살해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올려놓게 된 것도 강 씨가 나가는 시점에 찍힌 CCTV 영상에는 목에 넥타이를 매고 있는 반면 들어오는 영상에는 넥타이가 없다는 점을 포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찰은 “넥타이를 풀었다는 것은 넥타이를 이용해 살인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며 “모두 CCTV에 찍힌 영상 덕분에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호순 사건에서보다 CCTV가 더 큰 역할을 했던 사건도 있다. 지난 2월 초 발생했던 일명 ‘제과점 여주인 B 씨 납치사건’. 이 사건은 CCTV가 없었다면 해결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흘러나올 정도로 CCTV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찰은 B 씨가 납치된 직후 납치 지점 주변에 설치된 CCTV 영상을 분석했다. 이 중 번호판 식별까지 가능한 CCTV가 있었다는 것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경찰은 이 CCTV의 화면을 판독해 B 씨가 납치된 시점에 찍힌 차량 1만 1280대의 소유자를 조사했다. 강호순 사건의 경우 경찰은 CCTV를 통해 용의자의 차량이 에쿠스라는 점까지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번호판까지 식별해 내지는 못했다.
이후 경찰은 범인들이 B 씨의 몸값을 받을 장소로 지정한 접선 장소를 토대로 이동경로를 추정, 그 주변의 CCTV 화면을 판독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경찰은 A 씨의 납치 장소와 접선 장소 양쪽에서 모두 등장한 용의차량을 선별해냈고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어맨 차량을 찾아냈다.
경찰은 이후 용의차량인 체어맨 승용차의 번호판이 심 아무개 씨(28)의 이름으로 등록된 프라이드 번호판과 일치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후 심 씨의 범행 당일 행적과 휴대전화 통화내용 등을 추가로 확인한 경찰은 지난 13일 서울 가산동에서 심 씨를 붙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또 지난해 3월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던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 역시 CCTV 덕에 범인을 발 빠르게 검거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한 손에 흉기를 들고 초등학생 여아를 끌고 가려다가 말을 듣지 않자 발로 마구 폭행하고 도망을 치던 용의자의 모습이 찍힌 CCTV 화면이 전파를 타면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이 외에도 지난해 2월 숭례문 화재 사건의 범인 채 아무개 씨(72) 역시 CCTV를 덕에 검거된 사례로 꼽힌다.
이처럼 CCTV 덕에 해결된 사건들은 부지기수다. 또 CCTV 덕에 실마리를 잡아가고 있는 사건들도 많다. 제주도 어린이집 여교사 살인사건이 그 대표적인 경우. 사건을 수사 중인 제주서부경찰서 수사본부는 CCTV에 찍힌 화면을 통해 용의자를 좁혀가고 있는 상황이다. 여교사의 가방이 발견된 지역 주변의 한 아파트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확보한 경찰은 이를 판독해 용의차량 10여 대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현재 이 용의차량을 토대로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부실한 CCTV로 인해 안타깝게 해결되지 못한 사건도 있다. 얼마 전 서울 양재동의 한 상가 지하 주차장에서 50대 재력가가 피살된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 당시 건물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CCTV의 영상을 확보한 경찰은 재력가가 살해된 시점에 빠르게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괴차량을 발견한 후 이 영상을 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했다.
하지만 주차장의 CCTV가 워낙 오래된 것이었고 화질도 나빠 국과수에서도 번호판 식별에는 실패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한 경찰은 “지하주차장이었기 때문에 빛 흡수율이 높은 CCTV가 설치돼 있었으면 범인을 쉽게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재력가 피살사건은 수사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CCTV가 범죄 해결에 큰 역할을 하자 전국 지자체에서는 CCTV 설치 대수를 해마다 대폭 늘리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전국에서 8761대가량이 설치돼 있던 CCTV는 올 들어 1만 5092대로 약 2배가 늘어났다. 또 강호순 사건 해결을 계기로 CCTV 설치의 필요성이 부각되자 경찰청에서는 올해 우발 지역을 대상으로 CCTV 설치를 대폭 늘릴 방침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CCTV의 범죄예방 효과와 더불어 각종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인권침해 문제는 CCTV 설치가 점차 늘어나면서 몇 해째 계속돼 온 논란이기도 하다.
법무법인 지평지선의 이은우 변호사는 “‘CCTV 때문에 강호순 혹은 일부 강력범죄자들이 잡혔다. 그래서 확대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 자체가 문제”라며 “CCTV를 많이 설치해 놓으면 그만큼 인권침해 가능성도 높아진다”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재의 CCTV를 분석해 인권침해적 요소를 줄여나가면서 설치를 해야지 무조건 현재처럼 정치적으로 설치를 늘려가다가는 국가에 의해 모든 것을 감시당하는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CCTV로 인한 일명 ‘풍선효과’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이는 CCTV가 설치된 곳은 그만큼 범죄가 줄어드는 대신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곳으로 범죄가 옮아가는 현상을 말한다. 부유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CCTV를 많이 설치하는 만큼 빈곤층이 밀집해 있는 지역의 범죄율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최응렬 교수팀이 지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 지역의 강도 범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강남구에 CCTV가 도입된 시기인 2002년부터 상대적으로 CCTV가 적었던 수서와 서초 등 다른 지역으로 강도가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CCTV의 범죄 해결효과를 봤을 때 CCTV를 더욱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용인대 경찰행정학과 박현호 교수는 “수사하는 입장에서는 적시성이 필요하다”며 “CCTV는 범죄예방과 범인 검거 등 다양한 사회 안전장치로 필요성이 증명됐다”며 CCTV 설치를 적극 지지했다.
김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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