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서 ‘왕의 남자’ 등판 사인?
▲ 지난해 8월 쿠바와의 야구 대표팀 평가전에서 시구하는 유인촌 장관. | ||
유 장관이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과 쌓아온 인연을 돌아봐도 전혀 허황된 얘기로만은 들리지 않는다. 두 사람은 지난 1990년에 연을 맺어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때부터는 정치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물론 유 장관의 차기 서울시장 출마설은 아직 물밑에서 진행되는 단계일 뿐이다. 본격적으로 거론된다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 공성진 최고위원, 나경원 의원 등 잠재적 경쟁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은밀하게 나돌고 있는 ‘유인촌 문화부 장관 서울시장 만들기 프로젝트’의 진상을 쫓아가봤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발판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서울시장직은 대권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여겨지고 있다. 정치인들이라면 한번쯤 욕심을 내볼 만한 자리인 것.
지방선거가 1년이 넘게 남았음에도 벌써부터 물밑에서는 차기 서울시장을 향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시작됐다. 일부에서는 구체적 후보군까지 거론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맹형규 현 청와대 정무수석과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의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재선 도전이 유력시되는 오세훈 시장이 가세하면 삼파전이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그밖의 후보군으로는 홍준표 원내대표와 공성진 최고위원, 나경원 원희룡 박진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하다. 유인촌 장관 카드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고 있다. 지금까지 거론돼 왔던 후보군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새로운 카드다.
<일요신문>이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을 만나 취재한 결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서울시장 만들기 프로젝트는 이미 올해 초부터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문화부 소속 핵심참모들 위주로 청사 인근에 예비캠프를 꾸렸다는 그럴싸한 소문도 들린다. 당내에서는 본인도 출마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고 파악하고 있다. 여권 핵심부에서는 유인촌 카드를 가지고 당내 경선 통과 가능성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전혀 거론되지 않던 유인촌 장관이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후보군에 올라있는 인물들에 대한 회의론이 가장 큰 이유다.
특히 오세훈 현 서울시장에 대한 당내 비토론이 부쩍 늘면서 대안론이 급부상했다는 것이 당내 관계자들의 목소리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친이계를 중심으로 오 시장에 대한 비토론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공약한 뉴타운 사업에 대해 오 시장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너무 튀는 행보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타운 파동 이후 오 시장에 대한 당내 서울지역 지역구 의원들의 불만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또한 오 시장이 최근 친박계 의원들을 만나 (서울시장 재선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친이계가 불쾌해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한편 지난 서울시장 당내 경선 때 오 시장과 맞붙었던 홍준표 원내대표나 맹형규 정무수석에 대해선 확실한 MB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성진 최고위원, 나경원 의원도 유력한 후보군이긴 하지만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결국 정책을 잘 조율하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호흡을 맞출 사람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확실한 ‘MB맨’이 서울시장에 취임해야 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거론된 인물들이 정두언 의원과 유인촌 장관이다.
하지만 정두언 의원의 경우 당내에 반대세력이 적지 않기 때문에 경선통과를 확신할 수 없어 결국 유인촌 장관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유 장관은 확실한 ‘MB맨’인 데다 다른 후보들보다 지명도나 호감도에서 앞서 있다는 것이 내부 검토 결과라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당시부터 유인촌 장관을 지근거리에 뒀다. 두 사람은 유인촌 장관이 연기활동을 하던 지난 1990년 현대건설의 성공신화를 다룬 KBS <야망의 세월>이란 드라마에서 이명박 역을 맡으면서부터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서울시장 취임 이후 500억 원이란 시 예산을 투입해 서울문화재단을 만들었고 초대 대표이사에 유 장관을 임명했다. 문화재단은 출범 당시 이명박 시장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도구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시장에서 물러난 후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유 장관은 곧바로 한나라당에 입당해 이명박 대통령 선거 후보 문화예술 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인수위 시절에는 사회교육문화분과 위원회 상근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유 장관을 이명박 정부 초대 문화부 장관에 임명하며 무한한 신뢰를 나타냈다.
유 장관도 초기에 최일선에서 난관을 돌파하는 데 앞장섰고 MB 정부에 쏟아지는 각종 비난의 화살도 온몸으로 막아냈다.
특히 정권 초 공공기관장들을 물갈이할 당시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해 정치판을 온통 들끓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비롯해 전 정권 때 임명됐던 많은 문화·예술계 기관장들이 옷을 벗게 해 물갈이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 장관 취임 이후 검증된 헌신도, 지명도 등에서 볼 때 유 장관만 한 적임자가 없다는 게 여권 핵심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소문에 대해 유 장관 측은 극도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문화부 유병한 대변인은 “장관으로서의 업무만도 벅찬 지경인데 서울시장 등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유인촌 장관은 차기 서울시장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후보군에 오르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어느 정도의 지지도를 가지고 있는지도 확인된 바 없다. 후보군에 포함된 것도 ‘자천’이라기보다는 ‘타천’에 가깝다. 그러나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굴러갈 수 있는 것이 정치판이다. 장관직의 성공적인 수행이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징검다리가 될 가능성은 높아보인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