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남’이 ‘변태’로 돌변
노인의 치매를 다룬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치매의 초기 증상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와 관련, 최근 일본 대중지 <주간겐다이>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려 ‘성격별로 의심해볼 수 있는 치매 초기 증상’에 대해 소개했다. 치매를 앓기 전 성격과 발병 초기 증상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얘기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병 치매. 과연 성격에 따라 어떤 증상이 나타날 위험이 큰지를 살펴봤다.
일본 사이타마현에 사는 유키코 씨(49)는 아버지의 치매로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 중 한 명이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는 평소 말수가 적고, 농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실한 분이었다. 그러다 변화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어느 날 아버지가 여고생인 손녀의 방에서 속옷을 뒤지다가 발견된 것이다. 충격이 너무나 커 아버지에게 따져 물었으나 아버지는 “내가 그런 일을 하겠냐”며 되레 화를 냈다.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치매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 후 아버지가 젊은 여성을 몰래 만지는 등 이상행동이 심해져서야 병원을 찾았다. 진단결과 ‘치매로 인한 인격변화’였다. 결국 아버지는 입원 1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위의 사례처럼 평소 엄격하고 음담패설을 싫어했던 사람이 갑자기 ‘성도착증’으로 돌변했다면 “치매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에 대해, 치매클리닉의 다카세 원장은 “치매환자는 이성적 판단과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뇌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크게 3층 구조로 되어 있다. 1층은 생명유지를 관리하고 2층은 식욕, 성욕 같은 본능을 담당한다. 그리고 3층은 사회성과 지식을 담당하는데 치매를 앓으면 이 부분이 쇠약해져 본능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의학 전문용어로는 ‘탈억제’라고 부른다.
다카세 원장은 “치매환자는 선악 판단이 안 돼 스스로 ‘나쁜 것’이라고 느끼지 못하므로 가족이 심하게 꾸짖어도 개선되지 않는다”면서 “원리원칙을 지키며 몸에 성실함이 배어있는 남성일수록 탈억제로 인한 변화, 성도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에 비해, 돈에 철저한 사람 혹은 꼼꼼한 사람은 치매 초기 ‘누군가 자신의 돈을 훔쳐가는 망상’을 하기 쉽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이 같은 증상은 살림을 맡아 가계를 꾸려온 주부들에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오사카에 사는 히로시 씨(53)는 치매인 어머니와 단 둘이 생활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의 ‘도둑망상’은 어느 날 한밤중에 시작됐다. 이상한 기척을 느껴 눈을 뜨자 어머니가 머리맡에 주저앉아 있었던 것. 어머니는 “큰일이다. 도둑이 들었다. 통장을 모두 가져갔다”고 울먹였다. 놀란 히로시 씨가 집안을 살폈으나 다행히 도둑이 든 흔적은 없었다.
증상에 대해 의사는 “돈을 도둑맞았다고 믿는 것은 불안의 표현이다. 새로운 기억력이 감퇴돼 자신이 어디다 지갑을 두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금전관리는 평소처럼 확실히 하고 싶다. 왜 내가 아는 장소에 돈이 없을까. 마침내 누군가 훔쳐간 것이라고 믿게 되어버린다”고 했다.
이밖에도 전문가들이 뽑은 치매 초기 증상으로는 난폭한 행동을 들 수 있다. 간호사 게이코 씨는 한 환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어느 변호사의 사연이다. 고급 양로시설에서 만난 분이었는데 가까이에 있는 물건은 뭐든지 던졌다. 가족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처음 치매를 감지한 계기도 폭력이라더라. 평소 다정했던 사람이 거실에서 TV를 보던 중 부인에게 갑자기 ‘그런 것도 모르냐’며 주먹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게이코 씨의 말을 더 빌리자면, 변호사 남성은 양로시설에 들어온 후에도 항상 안절부절못했다. 의사들은 “본인이 말하고 싶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을 전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리모컨 좀 집어 줄래’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리모컨’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등이 가렵다’고 말하고 싶은데 ‘등’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안타까움이 난폭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평소 논리정연하게, 말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사람일수록 치매 초기 사소한 일로 격분해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마음먹은 것은 곧 실행으로 옮기는 행동력 강한 사람도 치매 초기 난폭한 성향을 보이기 쉽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편 유행에 둔감한 사람, 새로운 사건에 관심이 덜한 사람은 치매 초기 “간단한 도구를 다루지 못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나왔다. 가령 신문이나 뉴스를 잘 안보는 사람은 치매가 발병하면 낯선 화장실이나 세면대를 사용할 수 없다거나 집을 나서면 바로 길을 잃는 등의 증상을 보일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치매 초기 증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 제각각이다. 여기서 말한 성격별 초기 증상은 어디까지나 통계일 뿐이지만 치매를 마주하는 첫걸음인 것만은 분명하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이건 치매일까 건망증일까 문 단속 잊는다면? 같은 말 또 한다면? 단순한 건망증과 치매 초기증상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다음의 예시들을 살펴보자. ① A 씨는 최근 들어 새로운 것, 특히 숫자를 기억할 수 없게 됐다. 호텔에 숙박할 때도 방번호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항상 메모를 한다. ② 외출할 때 문을 잠갔는지 가스불은 끄고 나왔는지 등이 기억이 안나 불안하다. ③ B 씨는 최근 가족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날 바보노인 취급하다니’ 괘씸하다. ④ C 씨는 얼마 전 가족여행을 가기로 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우선 치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①과 ②다. 전화번호, 방번호 등 그 자체에 의미가 없는 기호를 뇌에 저장하는 기억을 ‘워킹메모리’라고 하는데 ①은 단순히 잊었다고 볼 수 있다. 또 ②처럼 문단속 등 일상적인 행동은 ‘절차기억’으로 신체의 기억이며, 뇌 의식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매일 습관처럼 하는 행동을 했는지 안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치매일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반면, 치매 위험이 높은 것은 ③과 ④다. 이에 해당된다면 치매 초기 증상일 수 있으니 전문 클리닉을 방문해 진단을 받는 게 좋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