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에 코트만 걸치고 등산로엔 왜 간 거니?
여대생 김 씨의 사체가 발견된 부산 연제구 배산 중턱과 배산 등산로 입구(아래 사진). 배산 등산로는 피해자의 집과 가까운 거리였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즉각 피살자의 신원파악에 나섰다. 확인 결과 이 여성은 사건 발생 현장에서 150여m 떨어진 한 주택가에서 사는 김 아무개 씨(당시 여·22)로, 인근 B 대학교에 재학 중인 여대생이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연산 1동 지구대에 수사본부를 차리고 연제경찰서 형사 전원과 부산지방경찰청 강력팀을 급파했다. 하지만 이 여대생의 죽음은 처음부터 미스터리했다. 김 씨는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했으며 주변 사람들과 관계도 원만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편이었지만 금전 문제도 없었고, 이로 인한 가족 간 불화도 없었다. 살해 당할 만한 특별한 이유를 발견하기 어려운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여기에 발견 당시 김 씨의 사체에는 목에 두 군데, 복부에 한 군데 칼에 찔린 상처만 있었다. 성폭행을 당했거나 반항을 한 흔적은 없었다. 현장 주변에서도 별다른 단서를 발견할 수 없었다. 수풀이 우거진 곳이라 범인은 물론 피해자의 족적도 없었으며 몸싸움을 벌인 흔적도 없었다. 사건과 관련된 것은 사건 발생 하루 뒤 현장에서 1.5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혈흔이 묻어있는 과도뿐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부검 결과 사망 시각은 오전으로 추정, 사인은 7~8cm 깊이의 복부 상처로 인한 과다출혈이며 목 부위의 상처는 치명상이 아니다”라는 소견만을 보내왔을 뿐이었다.
대체 김 씨는 왜 그 시간에 사건 발생 현장에 갔던 것일까. 자의에 의해서였을까, 아니면 끌려갔던 것일까. 경찰은 우선 김 씨의 가족부터 수사를 시작했다.
사건 발생 당일 김 씨의 아버지는 직장에서 야간 근무를 하느라 귀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같은 날 오전 5시 20분께 고향인 경주로 새벽기도를 하러 첫 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가 나가기 전까지 김 씨는 남동생과 한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남동생은 오전 7시 30분께 잠에서 깼을 때, 김 씨는 자리에 없었다. 김 씨가 집을 나선 시각이 오전 5시 20분부터 7시 30분 사이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경찰은 김 씨 가족에게서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자 주변인물로 수사를 확대했다. 김 씨가 새벽에 잠옷 차림에 코트만 걸치고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집을 나선 점으로 볼 때, 가족이 아니라면 김 씨와 친분이 있는 면식범의 소행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건 당일 전화 통화 내역을 분석한 결과 김 씨는 전화를 걸거나 받은 기록이 없다. 누군가 집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려 자고 있던 김 씨를 깨웠고, 김 씨는 그를 따라 ‘순순히’ 집을 나섰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주변인물에서도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다. 당시 김 씨와 가깝게 지내던 학교 친구, 동아리 선후배, 전 남자친구 등 약 20여 명을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조사했다. 이 가운데 김 씨와 가장 가까웠다는 친구 두 명이 미심쩍었지만, 이들은 이른 새벽이라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거나 “서울에 있었다”고 진술했다. 조사 과정에서 수상한 점이 발견되지도 않았으며, 이들의 알리바이를 뒷받침할 증거와 증인들도 완벽했다.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서도 특별한 혐의점은 나오지 않았다.
단 한 명의 목격자도 없었다. 일단 김 씨 집 주변부터 등산로까지 단 한 대의 CCTV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일요일 이른 새벽이라 출근하거나 밖을 거니는 주민도 없었으며, 사건 발생 시각 등산객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담당해온 부산 연제경찰서 이영화 강력4팀 경위는 “인근 주택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했지만, 비명 소리조차 들은 사람이 없었다. 피해자가 등산로까지 멀리 돌아서 갔다면 목격자가 한두 명은 나왔겠지만 집과 등산로의 거리가 가까워 오히려 목격자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등산객의 소행일 수도 있다는 판단에 배산에서 발생한 범죄 자료를 모두 찾아봤지만 칼 관련 범죄나 성추행 범죄는 단 한 건도 없었으며 동일 수법 전과자와 동네 불량배를 대상으로도 조사를 벌였으나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심지어 현장에서 발견된 유일한 증거인 과도에서도 숨진 김 씨의 혈흔을 제외하면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앞서의 이 경위는 “범인이 범행 후에 칼을 던지고 도주한 것으로 보이는데,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의 혈흔 자체도 많지 않았다. 칼에 찔리면 순간적으로 근육이 수축되는데, 찌른 뒤 빼는 과정에서 닦여 나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해당 과도가 제작된 공장을 찾아 판매자부터 역추적을 시도했지만,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칼이며 이미 전국으로 수십만 개가 팔려나가 이 역시도 불가능 했다.
사건 현장과 주변인물 탐문 수사에서 아무런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자, 경찰은 김 씨가 다른 장소에서 살해당한 후 사건 현장에 유기됐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를 벌였다. 특히 김 씨가 신고 있던 단화 사이에 솔잎 두 개와 미세한 흙이 붙어 있었는데, 소나무와 흙은 등산로 외에 김 씨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발에 박혀있었다는 것은 김 씨가 걸어 다녔다는 추정이 가능하고, 여기에 만약 솔잎과 흙 성분 분석 결과 학교에 있는 소나무와 흙이라면, 용의자 특정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경찰은 즉시 등산로와 학교 주변 소나무 전부와 흙의 일부를 채취해, 김 씨의 단화에서 발견된 것과 비교 분석을 국과수에 의뢰했다. 하지만 국과수는 “증거품이 너무 작아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허탈한 답변만을 보내왔다. 김 씨가 살던 집에 루미놀 시약을 뿌려 혈흔 반응 검사도 진행했으나, 여기서도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김 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사체로 발견된 현장일 것이라는 추론만 남았을 뿐이었다.
주변인물부터 증거품에 대해 꼼꼼히 수사했지만 아무런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자 일각에선 자살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단 한 명의 용의자도 특정할 수 없었으며, 살해당한 후 유기된 것도 아니라면 자살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숨진 김 씨가 살던 주택가엔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하지만 이 경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복부 단 한 군데에만 상처가 있었다면 자살에 무게를 둘 수 있었겠지만, 목에 있는 상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사람은 자해할 때 심리적으로 한 번에 치명상을 가하지 못하고 여러 번 시도하다 실패하거나 마지막으로 치명상을 가해 사망하는데, 여기서 치명상이 아닌 손상을 주저흔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 씨의 목 부위에서 발견된 두 개의 상처는 주저흔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범인은 목을 먼저 찔렀다가 김 씨가 피하자 복부를 찔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김 씨가 살던 주택가는 대부분 재개발로 사라졌다. 그 자리엔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곳곳에 CCTV가 설치됐고, 근처 연산 1동 지구대가 등산로 주변을 상주하며 순찰을 돌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 반대편, 재개발이 되지 않은 주택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아직도 불안하기만 하다. 20년째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는 한 주민은 “배산은 예전부터 자살 사건이 많았다. 최근에는 아파트 단지도 들어서고 관련 사건이 일어나지 않지만 당시를 떠올리면 두렵기만 하다”고 말했다. 배산 등산로 앞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또 다른 주민은 “이곳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은 배산에 잘 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얼른 범인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혹과 심증만 늘고 의문만 남긴 이 사건은 결국 1년 뒤 수사본부가 해체되고 수사에 진척이 없어 미제 사건으로 분류됐다. 14년간 관련 제보뿐만 아니라 한 통화의 장난전화도 걸려오지 않았다. 연제경찰서에서 담당해오던 이 사건은 지난 9월 부산지방경찰청에 신설된 장기미제사건전담팀으로 이첩돼 수사가 재개될 예정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당시 사건 담당 이영화 경위 인터뷰 “잡고 싶은 마음 지금도 크다” “오로지 관심사는 피해자가 사건 현장에 ‘왜 갔는지’였다. 조사 대상에 오른 이들 모두 알리바이가 완벽해 용의자로 특정할 수 없었다. 최근에는 CCTV가 곳곳에 설치돼 있어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빠르게 검거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장비가 많이 부족했다. 피해자 주변 인물부터 인근 지역 주민 모두를 대상으로 발로 뛰며 목격자를 찾고 조사를 벌여야만 했다.” 그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극비수사>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속인의 도움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답답한 심경이었던 것. “작은 실마리 하나라도 보이면 모두 수사했는데 용의자 특정은 결국 하지 못했다. 피해자가 집을 나섰을 것으로 추정되는 새벽 시간에 직접 등산로까지 올라가기도 했고, 너무 답답해 용하다는 무당과 점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심지어 피해자의 고향인 경주에 위치한 조상 묘지까지 찾아 갔다. 조상 묘지 앞에 서서 피해자가 그 곳에 ‘왜 갔는지’ 한참을 물었다.” 이 경위는 아직도 조사 대상에 올랐던 주변인물 가운데 범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른 새벽에 잠을 자다 부른다고 나갔을 정도면 친분이 있는 사람이며, 전화로 부른 것이 아니니 그 집까지 와 본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당시 주택가 대문은 열어 놓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는 사람, 그를 보고 피해자가 잠옷 입은 채로 양말도 안 신고 나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경위는 오로지 이 사건을 위해 최근 신설된 장기미제전담팀에 지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웃으며 “나이가 많아서 지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형사 생활 27년째다.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사건은 오직 이 사건 하나다. 한 번 더 자료를 보고 수사하면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기미제전담팀에서 자문 요청이 오면 기꺼이 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
부산경찰청 미제전담팀 가동 5년 이상 미궁 속 26건 봉인 해제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부산 지역에서 태완이법이 적용되는 장기 미제 살인사건은 모두 26건이다. 법 적용 기준 시점인 2000년 8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발생한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부산 지역에서 가장 최근에 발생한 미제 사건은 지난 2010년 10월 1일 발생한 부산진구 모텔 주인 이 아무개 씨(46·여) 살인 사건이다. 이 씨는 당시 자신이 운영하던 부산진구 부전동 모텔 안에서 목과 가슴 등 70여 차례 흉기에 찔려 숨졌다. 경찰은 모텔 인근 CCTV에 찍힌 30대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전단지 2000장을 뿌리는 등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그 용의자가 범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건이 미궁에 빠졌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 앞서의 연제구 연산동 배산 중턱에서 2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 지난 2002년 사상구 괘법동 다방 종업원 살인사건 등이 장기 미제로 남아있다. 부산경찰청은 이번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에 맞춰 지난 9월 ‘장기미제사건전담수사팀’을 신설했다. 경감 1명, 경위 이하 5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장기미제 살인사건으로 지정된 사건의 기록과 증거물을 관리하다가, 목격자나 첩보 등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면 수사를 재개한다. 앞으로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과학수사팀 등이 참여해 수사본부나 전담반을 꾸리고, 이후 1년이 지나면 관할 경찰서 전담반이 수사를 담당한다. 사건 발생 후 5년이 지났는데도 해결되지 않으면 그 때부터 ‘장기미제사건전담수사팀’이 기록과 증거물을 넘겨받아 5년 동안 수사한다. 10년이 넘어가면 ‘장기미제 살인사건 지정심사위원회’가 추가 수사 여부를 심의, ‘장기미제 살인사건’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용의자가 없는 사건은 없다. 다만 증거가 부족해 해결이 어려웠던 사건이 있을 뿐”이라면서 “전담팀은 앞으로 미제 살인사건 26건의 기록을 넘겨받아 분석한 뒤 수사에 주력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한편 ‘태완이법’은 지난 1999년 5월 20일 대구시에서 김태완 군(6)에게 정체 모를 범인이 황산을 뿌린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 종결된 것을 계기로 살인죄의 공소시효(기존 15년)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 적용 기준 시점 때문에 숨진 태완 군의 사건은 전담팀에 배정되지 않는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