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짝짓기는 가문 간의 짝짜꿍
▲ SBS 종영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한 장면. | ||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류층들의 결혼문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일반인들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 우선 그들은 생각보다 결혼정보회사를 많이 이용한다. 그것도 가입비 1000만 원 이상 내야 하는 초고가의 업체를 선호한다. ‘그 정도 되는 잘난 사람들이 굳이 결혼정보회사를 찾겠나’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겠지만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한다.결혼전문 회사 ‘디노블’의 김형석 본부장은 “회원 가입을 희망하는 인사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회사의 경우 1년에 999명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원 가입이 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상류층 자제들 중에는 공부를 오래 한 분들이 많다. 외국에서 석·박사를 따고 돌아오면 어느덧 서른 중반이 된다.혼기는 찼는데 당장 인연을 찾으려니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여기에는 상류층들을 상대로 하던 뚜쟁이가 사라진 영향도 적지 않다. 그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중개자’가 필요한 시점에서 혼사를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전문업체가 등장했던 것이다.이들 정보회사는 엄격한 자격요건이 충족돼야 가입할 수 있다.
돈만 많으면 가입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재력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다시 말해 회원이 되려면 일정한 재력은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요건일 뿐이고 그보다 집안과 학벌, 직업, 능력, 인성, 외모 등을 더 따진다는 것.김 본부장은 “회원들의 집안은 대부분 수백억 원대의 재력을 갖추고 있다”며 “다른 조건이 안 되는 사람은 아무리 돈을 싸들고 와도 회원 가입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상류층 결혼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본인만 잘나서는 별 인기가 없다는 점이다.
일반 여성들에게 배우자 로망 1순위로 꼽히는 의사, 변호사 같은 이른바 ‘사’자달린 직업의 미혼 남성들도 집안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상류층 혼인시장에서는 큰 매력을 끌지 못한다.소위 ‘개천에서 난 용’은 예전처럼 상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한다. ‘기품 없는’ 집안과의 혼사는 피곤하다며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개인의 능력보다 더 중요시하는 건 집안 배경이나 문화적인 공감대다. 실제로 얼마 전 사윗감을 찾기 위해 방문한 한 ‘사모님’은 “어려운 집안에서 고학하며 바동바동 성공한 전문직 엘리트보다는 강남권에서 무난하게 자란 명문대 출신 ‘회사원’이 낫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동떨어진 문화권’의 집안에 딸을 보내 마음 고생시킬 생각도 없고 일에 치여 빡빡하게 사는 차가운 엘리트는 부담스럽다는 것이 ‘사모님’의 논리였다. 상류층 자제들의 결혼에는 부모들이 훨씬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며칠 간격으로 방문해 릴레이 상담을 받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들은 1000만 원 가까운 가입비를 내고도 별로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가입비는 일종의 투자일 뿐이라고한다.
뿐만 아니라 혼인이 성사될 땐 수천만 원의 성혼 사례비를 따로 주기도 한다.여성은 곱게 자란 단아한 이미지가 단연 인기다.물론 깔끔한 외모와 집안 배경. 높은 교육 수준은 기본이다. 상류층들은 며느리감으로 활동적이거나 일욕심이 많은 커리어우먼은 기피한다고 한다.내조에 충실할 수 있고 상류층 문화에 익숙한 ‘현숙한 여성’을 선호한다는 것.
서로 ‘OK’ 하지 않으면 만남 자체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을 확률도 낮다. 드라마에서는 혼수나 집장만 등의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일은 드물다. 양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 오히려 넘칠 만큼 알아서 준비한다는 것.결혼정보 업체들은 회원들에 대한 평가도 일일이 기록하며 관리하고 있다. 만남이 이뤄진 후 상대방의 평가를 일일이 기록해 점수를 매긴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만남시의 매너, 교양, 신뢰도, 정서적 안정감 등이 포함돼 있고 평가 후에는 다음에 만날 상대에게 그 내용을 공개한다고 한다.한편 최근 드라마의 영향으로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성들에 대해 김 본부장은 “현실적으로 신데렐라는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백마 탄 왕자’의 얘기는 말 그대로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상류층들을 상대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은 ‘왕자는 공주를 찾는다’는 진리다.
드라마에서 그려진 재벌 2세처럼 돈을 흥청망청 쓰며 자기관리 못하는 망나니형 혹은 신분이 다른 여성에게 호감을 느껴 목매다는 낭만파 도련님도 현실에선 찾기 드물다.냉정한 얘기지만 혼인에서도 끼리끼리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같은 상류층의 결혼문화에 대해 일부에선 일반인들에게 가입 기회조차 박탈함으로써 지나치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지적과 함께 업체들이 돈벌이에만 급급해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한 결혼정보 회사의 관계자는 “일반인들이 가입해서 상류층 인사들을 대하면 오히려 더 큰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며 “상류층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자신들에게 조건이 맞는 사람을 찾고 있지 않으냐.혼사에서 좀 더 나은 배우자를 고르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욕망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