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밥 안줘? 각오해!” 갑질이 기가 막혀
일부 파워블로거들이 홍보성 글을 써주며 대가를 당연시 여기는 등 갑질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일요신문DB
“황당하죠. 식당 매출은 여전히 회복이 안 되고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악의적 글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지난 7월, ‘전주 고기 5점 사건’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전주에서 고기 무한리필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명해 씨(31)가 겪은 일이다. 박 씨의 악몽은 전주 맛집 블로거 B 씨가 가게를 다녀간 후부터 시작됐다. B 씨는 블로그에 하루 평균 3000명이 방문하는 준 파워 블로거였다. 6월 박 씨의 가게를 방문한 B씨는 지인들과 함께 “배불러서 많이 못 먹었는데 깎아주면 안 되냐”는 요구를 했다. 결국 음식 값을 치른 B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야박한 인심의 전주 고기뷔페. 고기 다섯 점밖에 먹지 않았는데 1인분 값을 다 받았다”는 요지의 글을 썼다. 무한리필 뷔페에서 다섯 점을 먹었든, 열 점을 먹었든 사람 수 대로 돈을 받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주인 박 씨의 몫이었다. ‘전주 맛집’이라고 검색하면 대번에 해당 글이 나왔다. 매출은 급격히 떨어졌다.
하지만 한 달여 뒤 분위기는 반전됐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B 씨의 글이 올라오면서다. 블로거들의 지나친 ‘횡포’에 문제의식을 느끼던 일부 누리꾼들이 B 씨의 태도에 분개하며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뒤 이 문제가 온라인의 뜨거운 이슈로 확산됐고, B 씨에겐 ‘블로거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블로그에는 B 씨를 성토하는 글과 댓글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에 B 씨는 게시판을 닫고 댓글 기능을 삭제했다. 또 자신을 욕한 다른 누리꾼들을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고소를 당한 네티즌들과 블로거지를 반대하는 이들이 모여 ‘우리는 파워블로거지를 반대한다(우파반)’라는 이름의 온라인 카페를 개설했다. 이들은 소송을 함께 준비하고 블로거지들의 횡포에 관한 자료를 공유하며 활동하고 있다. 고깃집 주인 박 씨는 “이 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형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 이제와 B 씨가 고소를 취하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소송할 거다”고 억울함을 터뜨렸다.
종편에 출연해 악성 블로거에 당한 사연을 털어놓는 방송인 홍석천(왼쪽)과 파워 블로거의 갑질 행태를 보도한 SBS 뉴스 화면 캡처.
요식업을 하는 이들이라면 블로거지에게 한 번쯤은 당해본 경험이 있다. 매장에 찾아와 다짜고짜 공짜 음식을 요구했다는 피해 사례는 셀 수도 없다. 식당을 찾거나 물건을 살 때 후기를 확인하는 게 생활화되면서 블로거들의 영향이 커지고 있기에 무시하기도 어렵다. 경기도 양평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서 아무개 씨(56)는 “관광지다보니 맛집 검색을 해서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블로그를 통해 마케팅을 해주겠다는 전화가 많이 오는데 때론 솔깃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일일 방문객이 수만 명에 달하는 파워블로거들은 영향력을 이용해 한 달 수백만 원의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글 하나를 작성해주고 50만 원을 받는 블로거도 있다. 팔로어가 수만 명에 이르는 파워블로거가 글을 쓰면 그 파급력은 일파만파다. ‘A급’ 파워블로거들에게는 집안 인테리어, 가구는 물론 미용실, 네일 관리숍 등의 협찬이 줄을 잇는다. 사진을 찍어 글을 올리는 대가로 수십, 수백만 원 상당의 편익을 제공 받는 셈이다.
실제 2011년에는 ‘문성실의 이야기가 있는 밥상’, ‘요안나의 행복이 팍팍’ 등 유명 블로거들이 공동구매를 알선해 수억 원의 수수료를 챙기고도 소비자에게 이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아 과태료를 낸 일도 있었다. 블로거 문성실 씨는 17개 업체로부터 8억 8000여 만 원의 수수료를, 오한나 씨는 12개 업체에서 1억 3600만 원의 수수료를 받는 등 억대의 수입을 올렸다.
‘업계’에서는 ‘파워블로거질’로 집을 샀다는 소문도 공공연히 돈다. 한 블로거는 “아는 사람이 파워블로거다. 그게 벼슬인 것처럼 공짜밥을 당연하다는 듯 얘기하더라. 파워블로거가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식이었다”며 ‘갑질’을 성토했다.
꼭 공인된 파워블로거가 아니더라도 하루 300~500명 수준의 방문자 수를 확보한 블로거에게는 협찬이 곧잘 들어온다. 하지만 ‘먹튀’를 염려한 업체 측에서도 성실한 블로거를 가리는 일종의 ‘시험’도 두고 있다. 처음에는 저렴한 상품을 제공해 블로그에 후기를 올리게 한 뒤, 이에 성실히 임하는 이들만 선별해 단계적으로 고가의 상품을 제공한다. 사실상 홍보 대행 역할을 블로거들에게 맡기는 셈이다.
협찬 물품에 대한 포스팅은 한 차례에 끝내지 않는다. 택배가 도착해 포장된 상태와 포장을 여는 과정을 찍는 ‘개봉기’, 개봉을 마치고 실제로 사용해본 경험을 찍는 사용기를 두세 차례 올려야 한다. 한 제품에 3~4개의 포스팅을 올려야 업체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해당 업체들은 블로거들에게 포스팅 가이드라인도 제공한다. 사진은 글 한 개당 몇 장 이상, 포함되어야 하는 키워드, 문장 등의 지침을 내린다. 이렇다 보니 포스팅에는 긍정적 얘기만 실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자신을 블로거지라고 자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신을 뷰티 블로거라고 소개한 이는 “간혹 양심 없는 업체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후기, 조작된 내용으로 글을 쓰게 한다. 스스로 거짓말쟁이, 블로거지라고 느꼈다. 협찬의 유혹 때문에 언제 다시 블로거지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이제 그만두겠다”고 적었다. 파워블로거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형성되자 “블로거지 아닙니다. 돈 받고 당당히 리뷰 적습니다. 협찬 받지 않습니다”는 등의 양심선언을 프로필에 적어놓은 블로거도 늘고 있다.
전주의 한 고깃집에 보복성 악평을 올린 블로거의 포스팅 캡처(왼쪽)와 이 블로거로 인해 생겨난 블로거지 안티 카페 캡처.
블로거지의 횡포는 파워블로거를 이용하려는 업체들이 있기에 끊이지 않는다. 블로거와 홍보가 필요한 업체 사이에는 바이럴 마케팅 회사가 있다.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진 블로거들에게 “블로그 임대 문의드립니다”는 쪽지가 하루에도 수십 개 온다. 임대 비용은 블로거의 영향력에 따라 다르다. 하루 방문자수가 500명 정도 되는 블로거들은 블로그 카테고리 하나 임대에 매달 10만 원 수준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한 달 10만 원이라는 공돈이 들어오는 셈이다. 아예 블로그를 통째로 빌려주는 데 한 달 150만 원을 제안하는 업체도 있다.
역으로 나쁜 후기를 남긴 블로거에게 음식점 주인이 집요하게 항의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8월에는 ‘건대 ㅌ 돈가스 사건’으로 블로거들과 음식점 사장 사이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돈가스 식당 주인은 개점 초기 입소문을 내기 위해 바이럴 마케팅을 시도했다. 포털 검색창에 ㅌ 돈가스를 검색하면 “건대 최고의 맛집”, “맛집 방송에 나와도 손색없는 맛” 등의 칭찬 일색의 후기가 줄줄이 떴다.
이를 믿고 돈가스 집을 찾은 손님들은 기대와 다른 실망했고, 한 블로거가 “인생 최악의 돈가스였다”며 낱낱이 음식을 분석하며 바이럴 마케팅을 고발했다. 이에 돈가스 식당 주인은 “악의적인 글에 영세 자영업자가 망한다. 트집 잡는 분들은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싸움이 번지자 다른 맛집 블로거들이 가세해 검증에 나섰고 해당 식당은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블로거들의 공세에 못 이긴 돈가스 집 주인은 “사실 다 알바 썼다. 10명에 30만 원 수준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손님 모을 수 없다”고 고백하고 식당은 문을 닫았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포스팅이 광고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특정 검색어가 자주 나오는지 관찰하라고 조언한다. 마케팅 업체들은 검색어 노출 빈도를 높이기 위해 한 포스팅 당 식당, 제품 이름이 20회 정도 나오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사진 퀄리티가 높은 포스팅도 광고일 가능성이 높으며, 검색을 할 땐 되도록 구체적 단어를 사용하는 게 광고글을 피해가는 방법 중 하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1년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을 제정해 협찬 등의 경제적 대가를 받아 쓴 글이라는 내용을 명시하도록 했다. 표준문구까지 정해두었지만 여전히 광고성 글을 올리면서 대가성 글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효녀 파워블로거지 사건 엄마 안심시키려다…42억 사기꾼 전락 어머니를 안심시키려 한 거짓말이 커져서 42억 원 규모의 사기꾼이 돼 버렸다. 박 아무개 씨(여·23)는 대학을 중퇴하고 별다른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했다. 지난해 7월경 아르바이트로 모인 돈이 꽤 되자 박 씨는 어머니에게 할부로 승용차를 구입해 선물했다. 취업도 하지 못한 딸이 1500만 원가량의 준중형차를 선물하자 어머니는 걱정이 앞섰다. “무슨 돈으로 차를 샀느냐”고 걱정하자 박 씨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내가 파워블로거라서 할인 가격에 차를 샀다”고 거짓말로 둘러댔다. 사촌동생 덕에 저렴한 가격에 명품을 사게 된 장 씨는 또 지인들에게 입소문을 냈다. 장 씨의 지인들도 “파워블로거 사촌동생 덕 좀 보자”며 명품 구입을 부탁했다. 안 그래도 현금 서비스 돌려막기로 빚에 허덕이고 있던 박 씨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 장 씨에게 사실을 털어 놓았다. 장 씨는 사촌동생의 고백에 잠시 당황했지만 자존심을 구길 수 없었던 박 씨는 “판을 크게 벌여보자”고 제안했다. 박 씨는 “더 이상은 할 수 없다”고 말렸지만 장 씨의 주도하에 범행은 점점 커졌다. 장 씨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명품을 저렴한 가격에 사다 주겠다고 속여 예치금을 받아냈다. 가방, 지갑, 시계 등의 명품 잡화로 시작한 범행은 점점 대담해져 갔다. 더 많은 예치금을 확보해야 범행을 이어갈 수 있는 만큼, 두 사람은 해외여행 상품, 골드바 등으로 품목의 금액을 올려갔다. 사촌 자매의 범행이 대담해지게 된 건 미용실 원장의 도움이 컸다.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고급 미용실은 중견기업 회장의 ‘사모님’, 유명 연예인, 프로야구 선수의 부인 등이 이용하던 곳이었다. 평소 이 미용실을 이용하면서 원장과 친분을 쌓은 장 씨는 “명품을 싸게 구해줄 수 있다”고 입소문을 냈다. 원장은 장 씨의 말에 깜빡 속아 넘어가 손님들에게 장 씨를 소개시켜줬다. 장 씨는 부유층과 어울리며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초청으로 본사를 방문하러 유럽에 다녀왔다”는 등의 거짓말을 했다. 장 씨의 거짓말은 피해자들의 허영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돌려막기는 언젠가 터지게 돼 있는 법. 작년 11월부터 이어진 범행은 올해 8월 끝이 났다. 사기 품목이 아파트, 외제차로 커지게 되자 더 이상의 사기가 불가능해졌다. 예치금만 주고 물품을 받지 못한 피해자 21명은 경찰에 두 사촌자매를 고소했다. 서울동부지방검찰청 박윤해 차장검사는 “허영심 때문에 시작한 범죄에 두 사람 수중에는 빚만 남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머니를 안심시키려 시작한 범행이 70여 차례에 걸쳐 42억 원을 받아낸 혐의로 구속이란 결말을 맞았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