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아테네올림픽을 앞둔 지난 2일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현정화 코치와 탁구를 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하지만 당시 국회의 끈질긴 요청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를 비롯한 정수장학회 관계자들은 한사코 국회 출석을 거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가 확인한 그간의 국회 속기록 자료 속에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몇 가지 대목이 담겨 있다. 당시 박 대표를 접촉했던 역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등의 국회 증언을 통해서 정수장학회 소유 주식 처리 문제에 대한 박 대표의 뜻이 간접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
그에 따르면 박 대표는 “제값만 쳐준다면 재단의 MBC 소유 주식을 팔 용의가 있다”고 밝혔으며 비공식적으로 3천억원이 제시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국회 차원에서 활발히 논의되던 정수장학재단 문제는 박 대표가 본격적으로 한나라당 중진급으로 부각되던 2000년 이후부터 눈에 띄게 사그라들었다.
정수장학회 처리 문제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4대 국회 때부터였다. 당시 “정수장학회가 소유하고 있는 MBC 주식 30%를 다시 환수조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의원은 민주당 박계동 의원과 신한국당 박종웅 의원이었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모두 한나라당 소속 전·현직 의원들이다.
95년도 국감 현장에서는 정수장학회측 증인의 불참 문제가 의원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정수장학회의 손미자 상임이사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증인 출석을 거부한 것.
이에 대해 박계동 의원은 “손 이사를 부른 것은 MBC 주식의 30%를 소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에 대해 소유하게 된 경위와 환수 대책에 대해서 묻고자 했으나, 특별한 진단서 첨부도 없이 단순히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불출석했다는 것은 국회의 위상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격렬히 성토했다. 당시 박 의원은 “사실은 정수장학회 상임이사가 재단의 전 권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수장학회를 대표하는 박근혜씨가 증인의 자격으로 다음 상임위에 반드시 출석한다고 하는 그런 보장을 해달라”고 위원장에게 강력히 요구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여당 의원들도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문화공보상임위원장이었던 신한국당 소속의 신경식 의원도 “정수장학회 상임이사가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여러 가지 의구심이 있다”고 가세했다. 박종웅 의원 역시 “(정수장학회측이) 참고인으로 출석요구를 했는데 안 나왔다. 그러면 우리 국회의원으로서는 어디에 이야기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당시 정수장학회측의 국회 불참은 고육지책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국회 문화공보위의 한 의원은 “법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국회라는 성격의 특성상 이 문제를 사회 여론화시키게 되는 데 따른 부담감이나 불리함을 감지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당시 국회에 나와서 박근혜 이사장의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던 인사들은 모두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역대 이사장들이었다. MBC의 주식을 7 대 3으로 나눠 소유하고 있는 양대 주주의 대표가 바로 방문진 이사장과 정수장학재단의 박근혜 이사장이기 때문.
95년부터 98년까지 방문진 이사장을 지낸 김희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95년 국감에서 “전해들은 이야기이지만 정수장학회에서는 (MBC 소유 주식을) 그냥 기부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 정수장학재단 이사회 모습 | ||
김 이사장은 96년 국감에도 출석해 “작년 국감에서도 의원님들이 여러 차례 지적을 했기에 주주총회에서 두 차례 만나 얘기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선 (정수장학회에서) 전혀 답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당시 박근혜 이사장의 증인 출석에 유난히 강한 집착을 보인 박계동 의원은 국회에 불출석한 손미자 상임이사가 대신 제출한 보고서 한 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 보고서는 ‘문화방송 주식은 정수장학회의 기본재산이며 정관상에도 방송사업과 신문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정수장학회가 재산처분 문제를 임의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고, 허가 관청인 교육부와 협의를 해야 할 문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이 문제를 놓고 박근혜 대표와 김 이사장이 상당히 불편한 관계에까지 갔음을 반증하는 증언도 나왔다. 김 이사장 후임자인 서규석 이사장은 97년 국감에서 당시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 “정수장학회의 30% 주식 인수 문제에 대한 답변을 해달라”고 계속 요구하자 “솔직히 말하면 인수하는 것이 좋으나, 대단히 어렵다. 전임 이사장이 회계에 아주 밝은 분인데 한번 말씀을 꺼냈다가 (박근혜 이사장과) 사이만 나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99년 국감에서도 서 이사장은 “얼마 전에 주주총회와 관련해서 박근혜 이사장을 만나뵐 기회가 있었다. 그때 국회에서 이런 이런 문제가 논의된다고 하는 말씀을 올리면서 ‘내놓으실 용의가 있으십니까’라고 여쭈어 보았더니 그쪽에서의 말씀은 정수장학회가 꼭 MBC의 주식을 가지고 있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장학사업을 하기 위해서 제값만 쳐준다면 내놓을 용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제값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냐 하면 가령 자산가치 1조원의 한 30% 정도를 상식적인 제값으로 쳐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 3천억원을 내면 내놓을 용의가 있다는 말씀이신데…”라고 구체적인 답변을 전하기도 했다.
2000년 국감에서도 박종웅 의원은 당시 김용운 신임 이사장을 상대로 “MBC의 자산재평가를 해서 30%에 해당되는 돈이 정수장학재단에 그대로 자본 전입이 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김 이사장은 “박근혜 이사장하고 저하고 둘이 만나서 수시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쪽에서 자세한 언질을 주는 것을 피하고 있다. 나도 상대가 있는 것이니 만큼 일방적으로 얘기를 못하는 처지에 있다”고 밝혔다.
한편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의 집중 추궁을 받은 당시 문민정부의 오인환 공보처 장관은 “공보처로서도 문민정부에서 해결을 보겠다는 인식 아래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도 또 강제적으로도 방법이 없다. MBC의 자산재평가를 통해 공금으로 사들인다고 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된다. 참으로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이 문제는 정부 차원의 해결보다는 국회를 통해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며 은근히 여론에 기대는 모습을 내비치기도 했다.
오 장관은 96년 국감 때에 “현재 MBC의 자산은 1조몇천억에서 2조원에 이른다. 이럴 경우 정수장학회 지분은 6천억~7천억원이 된다. MBC의 뭘 팔아서 그만 한 돈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아주 심각해진다. 그래서 한번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많은 무리수가 가기 때문에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