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1인당 10만원’ 수백명씩 동원 수천만원 후원
한전KDN이 자사에 불리한 법 개정을 막으려고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 의원 등 국회의원 4명에게 불법 후원금을 제공하는 등 ‘입법로비’ 의혹이 일고 있다. 사진은 한전KDN 입구와 법사위에 쌓여있는 법안들(왼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기사 보고 처음 알았다. 경찰 통보를 받지 못해 잘못된 정보인 줄로만 알았다.”
입법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한 의원실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18일 경찰의 입법비리 수사가 언론에 공개되기 전 국회 관계자들 및 기자들 사이에서는 해당 내용을 간추린 정보가 돌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앞서의 관계자는 “○○○ 의원은 관련 상임위에 있지도 않았고 법안발의에 참여한 적 없다. 잘못된 정보가 돌고 있다”고 전했지만 경찰이 공식적으로 언론에 발표하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18일 경찰청 특수수사팀은 김 아무개 전 한전KDN 사장(58)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하면서 이들이 전순옥 의원 등 국회의원 4명에게 후원금 쪼개기 형식으로 입법로비를 한 혐의가 있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2012년 11월 전 의원이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첫 번째 개정안을 발의하며 사건은 시작된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사업이 불리해지는 한전KDN은 ‘소프트웨어사업대처팀’을 발족해 전 의원을 포함한 의원 4명을 선정해 이들에게 후원금을 단체로 기부하기로 했다. 당시 전 의원이 낸 법안은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공공발주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의 참여 제한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한전KDN도 참여제한 업체에 포함돼 그동안 해오던 한전 관련 사업을 발주 받지 못하게 될 처지였다. 한전KDN은 2012년 11월 하순부터 국회의원실을 수차례 방문, 참여제한 대상 기관에 공공기관 제외 조문을 삽입한 법률안을 전달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직원 491명이 10만 원씩 전순옥 의원에게 1280만 원을, 나머지 의원들에게는 995만~1430만 원의 후원금을 기부했다.
이후 전순옥 의원은 2013년 2월 한전KDN의 제안처럼 공공기관은 해당조항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한전KDN은 직원 77명에게 전 의원에게 536만 원을 2차로 기부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그해 6월 전 의원 출판기념회에 한전KDN은 전 의원실 측으로부터 책자 100권을 구입해줄 것을 요구받고 900만 원 상당인 책 300권을 구매했다.
한전KDN은 법안 통과 과정에서 국회 법사위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대관업무를 진행했다. 당시 법사위 소속이던 새누리당 의원실 비서관은 “일반적으로 국회를 잘 아는 경력자를 대관업무로 보내지만 한전KDN은 대관과 관련 없는 팀에도 업무를 맡겼다. 기술팀 등 주로 IT만 하던 전문직 직원들이기에 국회에 인맥도 없고 법안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다”며 “그들은 의원실에서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회사에서 성과를 인정해줬다고 한다. 다른 부서까지 총동원할 정도면 대대적으로 (로비를) 했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당시 해당 법안을 검토한 법사위 소속이었던 야당 의원실 정책비서도 “법사위에서 한전KDN에 유리한 법이 제2소위로 내려간 뒤 이를 설득하러 (한전KDN 측에서) 여야 의원실을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법사위 의원실 보좌진들에 따르면 한전KDN은 상품권이나 시계 등 선물을 의원실에 건네며 정성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사위에 한전KDN의 발길이 잦았던 이유는 자사에 유리한 법안이 미방위를 무사통과했지만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경찰이 전 의원이 낸 2개의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 중 두 번째 법에서 공공기관 제외 조항이 첨부된 데 대해 초점을 두고 있는 만큼 수정된 법안이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린 이유도 관심거리다.
전순옥 의원. 연합뉴스
이렇게 해서 넘겨진 제2소위 회의에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업체가 한전KDN이라고 지목하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전해철 새정치연합 의원이 “이 법이 통과되면 해당되는 공기업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윤종록 미래부 제2차관은 “한전KDN이 있다. 그 외에 전력기술위원회 코레일 등 5개 정도 있다”고 답변했다. 전해철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소위로 법안이 넘어왔으니 정확하게 하자는 차원에서 문제제기 했던 것이다. 대화록 문헌 그대로 봐 달라”며 말을 아꼈다.
법사위 소속이었던 또 다른 의원실 비서관은 “법사위의 경우 넘어오는 법안이 워낙 많다보니 각 의원실마다 법안을 맡아서 검토해 의원들에게 보고서를 올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때문에 어느 의원실에서 해당 법을 검토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검토한 의원실에서 전순옥 의원 법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을 것”이라며 “주로 같은 당 법안의 경우 관대한 경우가 많은데 야당이 제동을 건 것은 조금 이례적”이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앞서의 여당 의원실 비서관은 “전 의원이 발의한 법은 사실 정부에 이로운 법이다. 이 때문에 여당 입장에서는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다만 중소기업 위한 법을 위해 규제를 강화하자고 했던 전 의원이 또 규제를 푸는 반대되는 법을 내 의아해하긴 했었다”며 “이 때문에 우리가 여당이지만 나서서 찬성하지는 말자고 조심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법안에 공감해 찬성표를 던졌다는 야당 의원실도 있었다. 앞서의 의원실 정책비서는 “내가 법안 검토를 담당했는데 공기업이 경영합리화 목적으로 민영화돼서 지분이 외국에 넘어가고 하면 안 된다고 판단해서 찬성했다”면서 “한전KDN도 한전 및 발전자회사들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면서 최소 마진을 챙겼을 텐데 정부입찰을 못하게 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전 의원 측은 입법 로비 의혹에 즉각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의혹이 보도된 당일 보도자료를 내고 해명한 데 이어 지난 20일 의원총회에서도 신상발언을 통해 “2012년 11월에 낸 개정안은 중소기업 보호하고 대기업 시장잠식 규제를 위한 예외적 허용범위를 축소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것이었다. 해당 법이 특정 목적을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이 대기업 범주에 포함돼 사업 참여가 제한되고 공공기관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며 “국감이 끝나고 현장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KDN을 포함한 32개 공공기관 노조를 방문하다보니 실질적 문제를 알게 됐다. 내가 낸 책에 그 내용들이 다 담겨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새정치연합도 전 의원에 대한 입법로비 의혹 수사가 ‘야권 탄압’이라고 반발했다. 야당은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의 입법로비 사건으로 김재윤 신계륜 신학용 의원이 재판을 받고 있고 최근 대한치과의사협의회와 관련해 양승조 의원 등 전·현직 의원 10여 명과 물리치료사 입법과 관련해 이종걸 의원 등 11명이 입법로비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야당에서는 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야당 측은 전순옥 의원과 또 다른 1명의 야당 의원이 연루된 한전KDN 입법로비 의혹도 이와 마찬가지로 야권 탄압으로 보고 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