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이스 벗기기…‘속 보이는’ 마케팅
<마담 뺑덕>(왼쪽)과 <인간중독>은 각각 신인 이솜과 임지연을 여주인공으로 발탁했다. 두 연기자는 영화에서 전라의 베드신을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신인 여배우를 주인공이나 조연으로 기용해 노출 연기를 맡기는 영화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그 횟수가 많은 건 이례적으로 보일 정도다.
현재 캐스팅을 진행 중이거나 촬영에 한창인 영화 가운데 신인 여배우에게 비중 있는 역할을 맡긴 경우 실제로 노출을 조건으로 한 작품은 여러 편이다. 개봉을 앞둔 <순수의 시대>를 비롯해 <간신> <남과 여> 등이 대표적이다. 박찬욱 감독이 내년부터 촬영을 시작하는 신작 <아가씨> 역시 영화를 이끌 두 명의 여주인공을 신인으로 찾으면서, 동시에 노출을 출연의 주요 조건으로 덧붙였다.
물론 이 영화들은 실력 있는 제작진과 탄탄한 시나리오를 갖추고 있다. 소위 노출에만 포커스를 맞춘 ‘B급 영화’가 아니라는 얘기다. 신인 여배우들이 이들 영화를 선택하고 기꺼이 노출을 감행하는 이유도 제작진과 작품에 거는 신뢰가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다양한 역할이 주어지는 가운데 노출이 곁들여진 게 아니라 유난히 ‘노출이 필요한 배역’만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예계의 한 관계자는 “신인이 파격적인 노출로 스크린에 화려하게 데뷔하는 일은 간혹 있었지만 요즘은 너무 많아졌다”며 “신인이 영화에 출연하려면 벗어야 한다는 자괴감 섞인 불만도 여기저기서 나온다”고 짚었다.
매주 두세 편의 신작이 극장에서 개봉할 만큼 어느 때보다 영화 제작 편수가 늘었지만 ‘남자 캐릭터’에 편중된 이야기가 많다는 점도 신인 여배우가 느끼는 ‘이중고’다. 활발한 영화 제작 분위기는 정작 신인들에겐 ‘남의 일’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여자 캐릭터가 활약할 만한 작품이 적은 데다 그나마 신인을 찾는 배역의 경우 대개 노출을 조건으로 걸고 있다.
대중이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신인 연기자에게 영화 주연을 맡기고 노출연기를 주문하는 건 작품을 알리는 데 상당히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이다. 실제 성공 사례도 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은교>다. 당시 제작진은 영화를 이끌어갈 주인공 은교 역을 두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신예 김고은을 기용했다. 제작진의 실험은 적중했다. 김고은은 영화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흥행을 이끌었다. 더불어 그 해 김고은은 영화계 신데렐라가 됐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올해 더욱 적극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5월에 개봉한 <인간중독>과 10월 개봉한 <마담 뺑덕>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 영화는 각각 신인 임지연과 이솜을 여주인공으로 발탁했다.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시선을 모았고 특히 두 연기자 모두 영화에서 전라의 베드신을 연기해 더 큰 화제를 모았다.
물론 영화에 참여하기까지 임지연과 이솜이 느낀 부담은 상당했다. 개봉 전 임지연은 “연출자인 김대우 감독님의 영화 속 여배우들을 항상 동경해왔고 인간 본성에 충실한 감독님의 작품 세계를 좋아했다”고 했다. 노출 연기를 상쇄할 만큼 제작진에게 건 신뢰가 더 컸다는 의미다. 이솜도 비슷하다. 패션모델 출신인 그는 “연기로 승부를 걸어보고 싶었다”며 “내가 맡은 덕이라는 여자를 통해 어떻게 남자를 사랑하고 어떻게 미워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신인 여배우에게 노출 연기 제안이 더 많은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인지도 있는 기성 여배우들이 노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결정적이다. 영화계에서는 작품 개연성에 중요하다면 노출 장면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대부분은 이에 동의하고 때때로 공개적으로 “필요하다면 노출 연기를 하겠다”고 말하는 여배우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상황이 닥치면 입장이 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출 연기는 흥행 결과나 작품성 평가에 대해 더욱 냉정한 잣대를 적용받는다. 자칫 무모한 노출로 인해 이미지가 소모될 경우 향후 연기 활동에도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따른다. 여배우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영화 제작진 입장에선 인지도가 낮은 신인들에게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영화 출연 기회가 절실한 신인들 입장에선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장 경험 많은 매니저의 입에서 “악순환”이라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몇 편의 독립영화 출연 경험을 가진 한 신인 여배우는 “최근 제안을 받은 상업영화들 중 노출이 필요한 배역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며 “영화계에선 새로운 얼굴의 연기자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다양한 개성을 가진 배우를 발굴하는 노력은 덜한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영화 출연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노출해야 하는 분위기가 부담스럽다”고도 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