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사찰? 용인 별장? 무한잠행중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지난해 9월 퇴임한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최근 개인 정보 불법조회 가담자들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오면서 채 전 총장의 근황에 또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재판의 쟁점은 조이제 국장과 조오영 행정관의 진술에 쏠렸다. 재판부는 두 사람의 진술이 모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우선 조이제 국장은 “조오영 행정관이 채 군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록기준지가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며 “구청 가족관계등록팀장을 통해 가족관계등록부를 조회한 후 같은 날 오후 5시 47분경 조오영 행정관에게 채 군의 인적사항이 가족관계등록부 등록사항과 일치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줬다”라고 법정에서 일관되게 진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조이제 국장이 1차 검찰 조사에서 “조회를 부탁한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진술한 점, 국정원 직원이 조이제 국장에게 먼저 조회를 부탁한 점 등을 들어 조이제 국장의 진술을 허위라고 판단했다. 즉, 조이제 국장이 국정원 직원의 부탁을 받고 가족관계등록팀장을 찾아간 것일뿐, 조오영 행정관의 부탁을 받고 간 것은 아니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주목할 점은 조오영 행정관의 진술이다. 조오영 행정관은 검찰조사에서 “전화를 통해 제3자에게 채 군의 주민번호, 성명 등을 넘겨받아 제 책상의 왼쪽에 있는 메모지에 기록한 후 그 메모지를 보고 조이제 국장에게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개인정보에 대한 조회를 의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상세하게 진술했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문자메시지 복원에 실패하자, 조오영 행정관은 “제가 조이제에게 신상정보 조회를 부탁했는지 여부가 기억나지 않는다”며 진술을 번복하기에 이른다.
검찰과 재판부는 이 지점에서 대립각을 세웠다. 검찰은 “조오영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면 진술하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들을 수사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스스로 진술했고, 이는 진술 신빙성을 드러내는 명확한 반증”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비록 조오영이 변호인 참여 하에 검찰 조사를 받거나,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그와 같은 진술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그 진술내용이 조이제의 진술과 언론보도 내용을 기초로 한 것인데, 조이제의 진술이 허위일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상, 그에 부합하는 조오영의 진술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오영 전 청와대 행정관과 조이제 전 서초구 국장.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꼬리 자르기’ 재판 논란은 사실상 여기서 시작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재판부가 두 사람의 진술을 모두 허위 사실로 판단했지만, 조이제 국장에게는 실형을, 조오영 행정관에게는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특히 재판부는 조오영 행정관이 범행을 시인한 것이 오히려 ‘허위 진술’로 보인다는 아리송한 결론을 내 논란을 자초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실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많다. 청와대 행정관이 ‘내가 요청했습니다’라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백까지 했다. 그런데 재판부에서 그걸 못 믿겠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며 “일각에서는 조오영 행정관의 허위자백이 윗선을 보호하기 위해 꼬리를 자르고 내 선에서 끝내기 위한 자백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는데, 재판부도 그렇게 판단한 듯하다. 그럼에도 봐주기 재판이었다는 논란은 계속해서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판결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건의 주인공인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행방에도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채 전 검찰총장은 지난해 9월 30일 퇴임식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후 현재까지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기간으로 따지자면 벌써 어느덧 1년 2개월째다.
<일요신문>은 채 전 검찰총장의 행방을 여러 루트를 통해 수소문했다. 그러던 중 채 전 총장의 지인을 잘 알고 있다는 한 관계자를 통해 채 전 총장이 강원도의 한 사찰에 머물고 있다는 전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앞서의 관계자는 “채 전 총장이 현재 강원도의 한 사찰에 머물고 있고 스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채 전 총장을 잘 안다는 지인에게 기자가 직접 전화통화를 시도한 결과, “그것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라는 답변만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재로서는 채 전 총장이 집을 떠나 여러 지방을 전전한다는 이야기가 일단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채 전 총장과 인연이 있다는 전직 검찰 지검장 출신 한 인사는 최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채 전 총장이 광주광역시의 한 지인 집에서 머무르며 바람 쐬러 남쪽으로 자주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그에게 채 전 총장의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또 다시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을 끝으로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채 전 총장은 지난해 9월 사퇴한 이래 1년이 넘게 잠행을 해오고 있는 셈이다.
법조계에서 돌고 있는 채 전 총장의 행적은 대략 강원도의 사찰과 채 전 총장의 경기도 용인 별장, 외삼촌 집이 있는 경남 창원이 꼽히고 있다. 일각에서는 채 전 총장이 잠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어느 정도 여론의 관심에서 벗어난 만큼 변호사 개업을 위해 지인들을 통해 관련 절차를 알아보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처럼 ‘무한잠행’을 이어가는 채 전 총장의 행적이 세상에 드러나기까지는 아직까지 좀 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취재 과정 중 만난 채 전 총장의 한 지인은 채 전 총장과 주고받은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올해 1월 중순경 채 전 총장에게서 온 메시지에는 “올해 1월까지 지방에 있어 사람을 만날 형편이 못 됩니다”라는 짤막한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