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사업권 따줄게” 수억원 꿀꺽
▲ 사기 혐의로 고소당한 김 아무개 이사장이 지난해 8월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모습. | ||
피해자 및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비영리법인 A 단체의 김 아무개 이사장은 평소 주한미군 및 군·경 인사들과의 친분 관계를 내세워 평택미군기지 내 각종 사업권을 따주겠다며 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자신을 ‘주한미군 평택기지이전 사업단장’이라고 소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그는 주한 미군 영내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패스’(통행권)를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수백만 원에 팔아넘겨 거액을 챙겼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A 법인은 한국과 미국 간의 친선 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2003년 설립됐으며 초대 이사장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었다. 2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김 이사장은 실제 주한미군 관련 각종 자선행사를 여러 차례 주최하며 주한미군 사령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을 정도로 한미관계 증진에 앞장서 왔다. 그러나 뒤에서는 자신의 신분을 활용해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 수억 원을 챙겨 현재 피해자들에 의해 고소를 당한 상태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법인과 김 이사장의 각종 자선 사업을 보면 실제 한미관계 증진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법인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초대 회장으로 취임한 지난 2003년부터 주한미군 장병들을 위한 각종 자선사업을 펼쳐왔으며 올 9월에는 장병 부모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행사도 예정되어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이 법인이 주최한 행사에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 및 주한미군 사령관이 초대돼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당시 행사는 주한미군이 추천한 모범장병 70명을 초청해 격려하는 자리였으며 샤프 사령관 외에도 이성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김종환 전 합참의장, 마이클 퀴어 미 8군부사령관, 윤영범 한미연합사 작전처장, 주한미군 관계자 등 160여 명이 참석했다.
주한미군으로부터 지난 몇 년간의 노력을 인정받아 주한미군사령관이 수여하는 ‘2008 좋은 이웃상’을 받기도 했던 김 이사장은 이런 과정에서 주한미군 사령관사에서 주최하는 파티에도 초대받는 등 주한미군 측에 상당히 좋은 인상을 남겼다.
김 이사장이 ‘양지’에서 이러한 민간교류 사업에 실제 노력해왔다면 ‘음지’에서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군 고위 인사들 인맥을 활용해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했다.
그는 특히 주변인들에게 주한미군 인사 및 경찰 인사와의 친분 관계를 내세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 이사장의 집에 방문했던 한 인사의 말에 따르면 집 한쪽 벽면에 현 주한미군 사령관인 월터 샤프 사령관과 찍은 사진을 크게 붙여놓았고 그 앞에는 주한미군으로부터 받은 각종 감사패를 진열해 놓았다고 한다. 주변 인사들을 자신에 집에 초청해 이런 ‘증거물’(?)을 보여주면서 인맥을 과시했다는 것. 그는 또 주변인들에게 강희락 경찰청장과도 친밀한 사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해진다. 실제 법인 홈페이지에는 김 이사장과 강 청장이 최근 청장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이 올려져 있다. 또한 그는 몇몇 지방경찰서장들과의 관계도 상당히 돈독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김 이사장의 이런 ‘허세’에 피해자들이 당했다.
<일요신문>이 피해자들을 통해 입수한 계약서 등을 보면 그는 A 법인 이사장 자격으로 각종 사업 계약을 맺었다. 중소건설사 대표인 권 아무개 씨에게는 평택주한미군기지 주유소 사업권을 주겠다며 계약금 명목으로 5억 원을 받았다. 모 건설사와는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에 들어가는 ‘토석’ 계약권을 따 주겠다며 역시 수억 원을 받아냈다. 연예인 강 아무개 씨에게는 ‘평택미군기지 레스토랑 사업권을 따주겠다’며 3000만 원을 받아 챙겼기도 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10건 정도의 계약을 체결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 김 아무개 이사장이 주한미군과 관련된 사업권을 미끼로 거액의 사기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용산 미군기지. | ||
하지만 군 관계자를 통해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단에 확인해 본 결과, 사업단 측에서는 ‘기지가 언제 완공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유류 사업권을 누구누구에게 주겠다고 한 적이 없으며 준다하더라도 공개입찰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말했으며 ‘레스토랑 사업권도 실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 법인은 비영리법인으로서 법인이름을 영리사업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김 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이뿐이 아니다. 그는 주한 미군 영내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패스’를 지인들에게 사고팔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주한미군 측에서는 미군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인사들에게 이런 패스들을 발급하고 있는데 김 이사장은 법인에 할당된 수보다 더 많은 패스를 미군 인사들에 부탁해 발급받아 이를 돈을 받고 판 것으로 전해졌다. 확인 결과 이 패스를 산 사람들은 총 145명으로 대부분 의사, 변호사, 사업가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었다.
군 관계자는 “예전에는 이 패스가 있으면 영내에 들어가서 미군 물품 등을 살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일은 안 되고 레스토랑에서 식사 정도만 가능하다”며 “지도층 인사들이 이 패스를 사려 하는 이유는 허세를 부리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편에서는 한미우호증진을 위해서 일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맥을 내세운 각종 이권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 아무개 이사장은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현재까지 김 이사장이 어떻게 이 법인에 들어오게 됐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요신문>이 수사 기관 등의 협조를 받아 취재한 결과 김 이사장은 90년 이전에 사기, 폭력 등으로 검찰에 기소됐으나 얼마 후 기소 중지 되었고 7년 뒤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수사 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가 생기자 해외로 도피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 주변인들은 “아르헨티나로 도망 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도 세 차례에 걸쳐 사기,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했으나 모두 ‘혐의 없음’으로 처리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속초 지방에서는 꽤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현재 ‘속우회’(속초우정회) 멤버인데 여기에는 속초 지방 관공서장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다. 검찰 관계자는 ‘속우회’에 대해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지방토착세력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속초시에서 발주하는 쓰레기처리 사업과 관련해 올해 초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다가 검찰 내부 사정으로 인해 사건이 종결된 바 있다.
이번 사건이 확대될 경우 주한미군과 손잡고 하는 각종 민간사업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될 것으로 보이며 한미 군사당국 간에도 적지 않은 외교적 마찰이 발생할 전망이다. 주한미군 측에서 ‘주한미군을 내세운 각종 사기사건을 한국 정부가 사실상 방조한 것 아니냐’며 한국 정부에 책임을 돌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법인은 외교통상부에서 인가한 단체는 물론이고 올해에는 행정안전부가 선정하는 비영리단체 지원사업에 뽑혀 45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현재 국정원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시작했으며 피해자들은 김 이사장을 지난 27일 검찰에 고발했다.
김 이사장은 현재 9월 중순에 있을 주한미군장병 부모 방한 초청 행사 관계로 인해 미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는 김 이사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끝내 닿지 않았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