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녀 손씨가 ‘’리모컨‘’ 쥐고 총지휘
현재 서울서부지검 형사 5부에서는 전직 대검 수사관 이 아무개 씨(구속)와 이 씨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여성 손 아무개 씨(구속)가 연관된 사기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단순 사기로 인지하고 수사를 시작한 검찰은 두 사람과 돈을 주고받은 정·관계 및 군 거물급 인사들의 이름이 수사 과정에서 튀어나오자 이번 사건을 단순 사기가 아닌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얼마 전 구속됐던 정순영 국회 정무위 수석전문위원 뇌물 수수 사건도 이 씨와 손 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밝혀낸 것이다.
검찰은 두 사람과 돈을 주고받은 인사 중에 현역 광역자치단체장과 여권 거물급 정치인, 공군 장성 등이 포함되어 있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 부부는 각종 비리에 연루돼 수사를 받거나 재판 중인 정·관계 인사들에게 접근해 ‘사건이 잘 마무리되도록 도와주겠다’며 거액의 돈을 가로챈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사건이 지난 2005년 정계를 발칵 뒤집어 놨던 ‘법조 브로커 윤상림 게이트’의 재판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전직 대검 수사관인 이 씨와 그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손 씨의 각종 사기 행각은 이 씨가 자신의 이름과 경력을 속여 서울시 전 정무부시장 김 아무개 씨에게 접근해 8000만 원을 뜯어낸 사실이 수사를 통해 밝혀지면서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 씨는 자신의 나이뿐만 아니라 학력 및 경력을 모두 속여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그는 한 피해자에게는 자신이 대검 중수부 수사 과장을 13년 동안 지냈으며 삼성그룹 법무팀장에 청와대 근무 경력도 있다고 속였다. 또 다른 피해자에게는 행시 24회 출신이며, 여의도 정보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고 속이기도 했다. 이 씨는 이렇게 자신의 경력을 속여 유력 인사들에게 접근해 폭넓은 인맥을 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이 씨의 사기행각은 손 씨의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서 이뤄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손 씨는 주변에 검찰 수사를 받거나 재판 중인 사람들에게 접근해 ‘자신이 사건을 잘 해결해줄 만한 사람을 잘 알고 있다’며 소개비와 로비 착수금 조로 거액을 뜯어낸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그렇게 해서 소개를 해 준 사람이 바로 이 씨였던 것.
두 사람은 7년간 동거를 해왔으면서도 주변인들에게는 이런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 채 조직적인 사기 행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 씨가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은 실제로 정·관계 등에 폭넓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 씨는 이 씨와 동거하기 이전에도 정치권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수사진은 수사 과정에서 손 씨의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확인한 결과 총 1800명의 명단이 들어있었으며 이 중 1500명 정도가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력 인사여서 적잖게 놀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주변에선 이번 사건이 ‘제2의 윤상림 게이트’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의 인맥이나 각종 사기 행각들이 정·관계 및 법조계에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각종 이권에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까지 드러난 피해자는 모두 3명에 불과하지만 검찰은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때문에 향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피해자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 3명은 전직 서울시 정무부시장 김 아무개 씨, 게임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대표이사 노 아무개 씨, IT 업체 회장 김 아무개 씨다. 이 씨와 손 씨는 이들에게 각종 로비 명목으로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을 받아 챙겼다.
이 씨와 손 씨는 이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정·관계에 적지 않은 돈을 뿌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이 씨는 모 광역단체장 등에게 접근해 골프장 인허가를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로비자금이 자치단체 등에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이 건과 관련해서는 유명탤런트 Y 씨와 N 씨가 이 씨와 광역단체장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검찰은 손 씨가 여권 유력 정치인에게는 모 단체 자문위원직을 맡아달라는 명목으로 1500만 원가량을 건넨 사실도 확인됐다. 이에 대해 손 씨는 ‘단체 현판 제작비로 돈을 준 것이지 대가성이 있던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기 위해 평소 친분이 있는 공군 장성들을 술자리 등에 합석시킨 것으로 알려져 수사는 군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이 씨와 손 씨는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불교계 인사에게도 접근해 2억 원가량을 뜯어낸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이외에도 두 사람은 평소 친분이 있던 유력인사들의 이름을 등에 업고 기업 인수·합병, 게임사업 정부 인허가와 관련한 문제 등을 해결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검찰은 ‘지난해에만 수십억 원의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두 사람의 전직 운전기사 등의 진술을 토대로 계좌 추적에 나서고 있다. 검찰은 특히 이번 사건이 손 씨를 정점으로 해서 여러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손 씨 주변인들에 대한 계좌 추적도 벌이고 있다.
두 사람의 지인에 따르면 손 씨는 7년 전 이 씨에게 먼저 접근했고, 당시 처가 있던 이 씨는 손 씨를 만난 이후 이혼했다. 이후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7년 동안 동거를 해왔다. 하지만 손 씨는 이 씨 외에도 얼마 전 천 아무개 씨와 약혼을 했으며 중견기업 박 아무개 회장과도 내연 관계였던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 박 회장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손 씨의 복잡한 남자관계가 드러났음에도 ‘그럴 리 없다’며 손 씨의 변호사 비용을 모두 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 과학자 출신인 박 회장은 70년대 미국 유학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과학발전을 위해 직접 국내로 불러들였던 인물이다.
또한 이 씨와 손 씨가 검은 돈을 받은 주요 창구였던 손 씨 사무실 여직원은 손 씨 오빠와 내연관계인 것도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현재 검찰은 이 씨, 손 씨와 연루된 인사들의 범위가 정·관계, 군은 물론이고 언론계 등에도 폭넓게 퍼져 있기 때문에 수사와 관련해 일체의 함구령을 내린 상태다. 하지만 피해자 및 참고인 등을 통해 흘러나오는 두 사람의 범죄 행각은 ‘게이트’로 비화되기에 충분하다는 게 검찰 안팎의 목소리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