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 아니라면 할복” vs “안보불안 조장 말라”
혹자는 엉뚱한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를 확고하게 믿고 땅굴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있다. ‘땅굴알림연대’, ‘남침땅굴을찾는사람들’, ‘땅굴안보국민연합’ 등의 관련 단체들이다. 이들은 수도권 일대를 다니며 여기저기서 땅굴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이번에는 땅굴이 있는 곳으로 경기도 양주를 지목했다. 더구나 이들은 땅굴이라고 주장하는 지하 굴을 찍은 동영상까지 공개했다. 영상이 퍼지면서 안보 불안감이 커지자 국방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4일간의 정밀 조사를 통해 “땅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5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관련 단체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자신들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고 있다.
땅굴 탐사 결과 현장설명회에서 육군 관계자들이 시추 장비를 움직이고 있는 모습.
이들이 땅굴이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는 다우징 기법이다. 다우징은 흔히 알파벳 L자 모양의 기구인 ‘엘로드’의 변화 모습으로 수맥을 찾는 데 쓰이는 기법이다. 일반적으로 땅굴이나 동공을 찾는 데 사용되는 방식은 아니다. 한성주 예비역 소장은 지난여름 서울 송파구 석촌동 일대에서 동공이 발견됐을 때도 “다우징 기법으로 확인한 결과 동공이 아닌 땅굴이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기자에게 “다우징 기법으로 보니 석촌호수 사거리의 대로 밑으론 다 땅굴이 지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시민들을 가장 불안하게 만든 건 일명 ‘양주 땅굴 동영상’이다. 이 동영상은 온라인을 타고 빠르게 번졌다. 동영상에는 우물처럼 파낸 깊은 구멍을 타고 한 남성이 들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또 땅 밑에 있는 어른 한 명이 들어갈 크기의 동공의 모습도 찍혀 있다. 더불어 땅굴 파는 소리와 북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녹음됐다고 주장하는 파일을 단체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이들이 땅굴 파는 소리라고 주장하는 파일을 직접 들어보니 바람소리와 무언가 반복적으로 덜컥대는 소리로 들렸다.
동영상이 퍼지면서 군 당국은 정식 해명에 나섰다. 지난달 14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양주시 광사동에서 발견된 동공에서 발파석과 산화 실리콘 성분 등이 발견됐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국과수 정밀감정 결과 허위로 판명됐다”고 발표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도 한민구 국방장관은 땅굴에 대해 언급했다. 1982년 이후 남침 땅굴 민원 740여 건 중에 590여 건을 시추했으나 어떤 징후도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5일 합동참모본부 땅굴 탐사 결과 현장설명회에서 땅굴알림연대 및 땅굴안보국민연합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국방부 관계자들을 둘러싸고 있다. 원 안은 군의 조사 결과에 항의하는 땅굴단체 회원들. 연합뉴스
조사를 마치고 5일 공식 현장 발표에서 국방부는 “땅굴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또 관련 단체가 ‘인위적인 되메우기와 실리콘과 점토 성분이 들어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정면 반박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주관으로 암석 시료를 분석한 결과, 일반 지층에서 식별되는 자연 암석만 있을 뿐 특별히 인위적 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땅 밑 공동은 싱크홀이나 과거 농지 개간 과정에서 만들어진 굴로 추정했다. 또 땅굴 굴착음과 북한 아나운서의 음성이라고 주장한 자료 역시 지상에서의 자연음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더불어 예산 낭비와 국민 안보 불안감을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에는 관련 단체들이 몰려와 국방부 관계자들을 에워싸며 소란이 일기도 했다.
국방부의 발표에 대해 한성주 예비역 소장은 “국방부의 일방적 주장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남침땅굴설을 주장하는 책 <여적의 장군들>을 펴내며, 여전히 청와대 밑에는 최소 84개의 땅굴이 있고, 경복궁 지하에는 5개 이상의 북한 기지가 건설돼 있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국방부는 땅굴을 탐지하러 들어온 게 아니고 덮으러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어떤 점을 두고 땅굴을 덮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국방부가 땅굴을 흙으로 덮었다면 단면을 잘라보면 알 수 있다”는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답변을 내놨다. 한 장군은 “양주와 남양주 일대 땅 밑에는 지름 2.5~3.5m의 땅굴이 지나고 있다. 국방부는 1980년대부터 북한은 땅굴을 파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자신 있으면 국방부와 우리 단체가 함께 파보면 되는 것 아니냐”며 여전히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국방부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예산 낭비와 국민 안보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며 ‘남침땅굴설’을 주장하는 단체들에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