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R 개발·동해 시추 예산 삭감, 전망 어두워…수도권 송전망 부족 재생에너지 확대도 쉽지 않아
#윤석열 정부 에너지 정책 전망은
정부는 2038년까지의 중장기 에너지 정책을 담은 ‘11차 전력기본계획(11차 전기본)’의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보고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국회 보고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또 더불어민주당이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요구하고 있어 연내 통과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1차 전기본에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3기 건설 △소형모듈원전(SMR) 1기 △석탄화력발전소 단계적 폐쇄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향후 윤석열 정부가 수명을 연장하더라도 ‘식물정부’가 될 가능성이 높아 국회와 협의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새로운 정권이 들어오더라도 윤석열 정부 에너지 정책의 반작용으로 원자력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진단했다.
차세대 원전으로 알려진 SMR에 대한 전망도 밝지 않다. SMR은 현재 상업용으로 건설해서 가동할 수 있는 ‘표준 설계 승인’을 받은 기업이나 국가가 한 곳도 없다. 심지어 미국 뉴스케일파워는 2020년 받은 50메가와트(MW)급 SMR 설계인증을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포기했다. 뉴스케일파워는 SMR 상업화에 가장 근접한 회사라는 평가를 받은 곳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11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개발 사업 333억 원을 전액 삭감한 바 있다.
초대형 국책 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앞날도 좋지 않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동해 심해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 여부를 확인하는 사업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대국민 브리핑을 통해 직접 대왕고래 프로젝트 추진 의지를 밝혔다. 초대형 시추선인 웨스트 카펠라호는 지난 12월 9일 부산외항에 입항하며 본격적인 탐사 시추를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그렇지만 야당이 첫 탐사 시추 예산 497억 원을 전액 삭감하면서 사업 추진 동력이 약화됐다. 결국 해당 예산은 한국석유공사가 책임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석유공사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이기 때문에 수백억 원의 비용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산업계 한 관계자는 “정권이 교체된다면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도 높다. 석유의 매장량이 아주 크고 채굴이 쉬워야 경제성이 있는데 그간 이미 해외 기업들이 다 탐사하고 경제성 있는 유전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던 곳”이라며 “세계적으로 탈탄소 국면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사업성 자체가 전면 재검토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분석했다.
#향후 에너지 정책은?
윤석열 정부는 그간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보다는 무탄소 에너지에 정책에 집중했다. 에너지산업계 다른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석유·석탄 대비 탄소배출량이 낮은 액화천연가스(LNG)를 개질해 무탄소 연료인 수소 발전으로 전환하고, 원전과 SMR 중심으로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라면서도 “이는 국제사회에서 통하지 않는다. 현실성도 떨어지고 실제로 탈탄소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주요국이 제시한 2030년 재생에너지 공급 목표는 영국 85%, 독일 75%, 미국 59%, 일본 38% 등이다. 그런데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 목표는 21.6%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김종용 한국공학대학교 교수는 “RE100(재생에너지 100% 발전)이 지금은 와 닿지 않지만 점차 압박이 오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수출길이 막힐 수 있다”며 “이 문제 해결하는데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도 윤석열 정부가 전혀 방비를 안했기 때문에 향후 숙원 과제가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당장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전력은 저장성이 없어 발전 이후 전력 소비가 필요한 곳으로 보내야 한다. 문제는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송전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기존의 전력시장 질서를 그대로 둔 채 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는 계획만으로 현재 상황을 극복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송전 사업을 전담할 공기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현재 한국전력공사(한전)는 발전, 송전, 배전, 판매 등의 사업을 독점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대부분의 국가가 송전 사업자를 따로 두고 있다. 이스라엘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내 전력 기업도 최근 송전 부문 분리에 나섰다.
지역별로 전기 요금을 원가에 따라 다르게 책정해 수도권의 전기 수요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나아가 산업단지를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영환 홍익대학교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송전선이 부족한 게 아니라 수도권에 수요가 몰려있어 송전 효율이 몹시 떨어지는 게 문제다. 발전과 송배전비용의 원가가 저렴한 지방의 전기 요금을 낮게 책정해 신규 산업용 전력 수요가 지방으로 이전하도록 가격 신호를 줘야 한다”며 “단순한 에너지 이슈가 아니라 지방 소멸과 저출생 문제까지 해결할 실마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향후 정치권 논의가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석광훈 전문위원도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3개 국가는 인구가 적고 발전소가 많은 지역에 낮은 전기요금을 책정하면서 산업체 투자가 늘었고, 지역 불균형을 자연스럽게 해소했다”며 “수요를 균형적으로 배분하면서 국토균형발전 달성에도 성공한 만큼 향후 우리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