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 전 주택공사 사장 | ||
지난 6월, 억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감찰을 받은 백범 김구 선생의 자손인 김진 전 주공 사장은 청와대 관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이미 자신의 비리를 대부분 인정한 김씨의 이 말에는 ‘자살’하겠다는 강한 암시가 들어 있는 듯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평소 사장실에 백범이 직접 쓴 ‘양심건국(良心建國)’이라는 휘호를 걸어두고 집무할 만큼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 구속된 이후 김 전 사장은 “저승에서 조상들을 어떻게 뵐 것인가”라며 참담해 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 검찰은 김씨가 지난해 6월 Y건설 대표 한아무개씨로부터 주공이 발주한 인천지역 재개발사업 관련 경비용역 또는 철거업무를 맡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3천만원을 받는 등 지난 7월까지 모두 1억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한 상태. 이 외에도 김씨는 2001년 6월 광고업체 G사 전무 윤아무개씨에게 주공 발주 광고를 맡게 해달라는 청탁의 대가로 양도소득세 2천1백만원을 윤씨에게 대납케 하고 광고 수주에 대한 사례비 명목으로 2천만원을 받는 등 4차례에 걸쳐 5천6백86만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수사를 맡고 있는 대검 중수부는 이 중 1억6천여만원이 대가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추적을 계속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뇌물 수수와 관련된 비리는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 청와대에 접수됐다고 전해진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사건은 한 통의 제보를 통해 알려졌다. 그런데 제보가 접수됐던 6월 초는 이미 김씨가 차기 보훈처장으로 내정되어 인사 검증작업이 끝난 뒤였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당시에는 (김 사장이) 별다른 하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제보가 전해진 이후 민정수석실은 바빠졌다. 제보의 내용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을 끌면서 일일이 조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미 자신의 비리 내용을 확보, 내사를 시작했음을 감지한 김씨가 자살을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정수석실은 며칠간의 내사 자료를 확보하여 검찰에 사건을 의뢰했고, 결국 김씨는 긴급 구속에 이르게 됐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문광섭 판사도 지난달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피의자가 비리에 연루돼 명예 손상에 따른 극도의 심리적 불안감을 갖고 있어 구금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 판사는 개인적 판단임을 전제로 “수사 기록을 살펴본 결과 김씨가 상당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어 구속하지 않을 경우 불행한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에서 김씨의 사무실에 대한 감찰을 하던 중 억대의 돈이 들어있는 차명계좌를 김씨의 사무실에서 발견, 김 전 사장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차명계좌 문제를 거론하자 평소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던 김씨의 얼굴이 굳어진 것으로 안다”며 당시를 설명했다. 김씨는 이후 민정수석실의 조사과정에서도 건설사 등에서 수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순순히 털어놓았다고 한다. 사건이 확인된 이후 청와대는 김씨에 대한 보훈처장 내정을 즉각 취소했다고 한다.
최근 김씨를 만났다는 청와대 관계자는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던 김 사장이 이제는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 같다. 자신의 죄에 대해 깊이 뉘우치면서 부끄럽다는 말을 많이 한다. ‘더 큰 죄를 저지르기 전에 죄 값을 치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는 말도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