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최근 새만금 개발의 새 주인이 갑(甲)질을 하고 있어 말썽을 빚고 있다. 새만금개발청이 자치단체의 의견을 무시하고 외국기업과 새만금지역 내 투자 합의각서 체결을 강행하면서 ‘갑(甲)질’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흔히 ‘갑질’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이를 빗대 갑의 무한 권력을 꼬집는 ‘슈퍼 갑’, ‘라면 상무’에 이어 엊그제는 ‘땅콩 부사장’이란 말도 나왔다.
새만금개발청이 지난달 24일 중국 에너지기업인 CNPV와 새만금지역에 태양광발전시설 용도로 5천8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위한 MOA(합의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문제는 전북도와 군산시가 CNPV와의 합의각서 체결에 앞서 ‘실익이 없다’며 반대 의견을 전달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양해각서 체결을 강행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새만금사업은 비록 현재는 개발주체가 새만금개발청으로 넘어가긴 했어도 전북도가 지역의 획기적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추진해온 사업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전북도와 군산시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결과는 자못 충격적이다.
앞서 새만금개발청은 지난 9월 국회에서 계획된 ‘새만금사업 조찬간담회’를 앞두고 간담회 성격상 자신들이 직접 주도해야했다. 그러나 새만금개발청은 중소기업에‘하도급’주듯 전북도에 일을 떠넘긴 일에 대해 도민들의 꼴불견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전북 지역 국회의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모양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전북도와 전북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하수인 격으로 인식, ‘갑’의 위치에서 주문만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전북도도 새만금사업의 성공을 바라는 도민 염원 때문에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새만금개발청에 많은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쯤되면 새만금개발청의 갑(甲)질이 중증에 속하는 것 아닌가. 지금 새만금개발청은 마치 점령군처럼 새만금에 밀고 들어와 지자체와 도민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이같은 악습은 새만금개발청이 새만금사업은 국가사업이 아닌 전북사업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새만금개발청이 새만금사업 추진을 목적으로 탄생했지만, 새만금사업은 어디까지 전북도민을 비롯 전북도, 전북정치권의 몫이고 자신들은 시혜를 베푸는 입장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새만금개발청은 지난해 9월 세종시에 국토교통부 외청 형태로 출범했다. 6개 정부 부처와 전라북도로 분산된 새만금사업 개발기능을 하나로 통합하는 전담 추진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러한 갑질과 비정상적인 행정 행태는 새만금 발전을 저해함은 물론 더 나아가 상생과 동반성장, 창조경제의 메카라는 미래지향적 가치마저 짓밟는다.
교수사회의 제자 집단에 대한 갑질을 상징하는 농담이 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유일한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정답은 ‘조교에게 시킨다’는 것이라고 한다.
교수가 시키면 불가능해 보여도 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밖에 없는 제자 집단의 서글픈 처지를 보여준다. 중앙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이 같은 악습(惡習)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이 때문에 지역 정치권 일각에선 “현재 새만금개발청은 도민을 볼모삼아 갑질을 계속하고 있다”,“이런 식이라면 새만금개발청이 있을 필요가 없다”,“정부의 조직기구 개편 등을 통해 총리실 산하에 두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더불어 새만금개발청에 대한 구조조정 문제가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것도 전북도와 지자체 위에 군림하고 있는 ‘옥상옥’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살이 곪으면 언젠가 터지는 법’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지역사회에서 새만금사업을 두고 더 이상 ‘죽쒀서 남 줬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