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묶인 땅’ 거액에 팔리자 뒷말 무성
▲ 김해 시외버스터미널 전경(왼쪽)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 ||
박 전 회장은 측근의 부인으로 알려진 안 아무개 씨와 공동명의로 2002년 10월 토지공사로부터 이 부지를 340억 원에 매입했다. 박 전 회장 측은 잔금 3억 원을 납부하지 않고 등기이전을 미루다 지난해 12월 잔금을 치르고 등기를 마쳤다. 문제는 박 전 회장 측이 등기 이전을 마친 뒤 한 달여 만인 지난 1월 22일 이 부지를 신세계 측에 899억 원에 되팔았다는 점이다. 8년여 만에 550억여 원의 매각 차익을 남긴 셈이다. 지역 부동산업계 주변에서는 외부에 드러난 액수가 899억 원이지 실제 매매 금액은 1000억대를 훨씬 상회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인 신세계가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 터미널 부지를 매입한 배경과 관련해서도 ‘이면계약’ 의혹 등 뒷말이 무성히 나돌고 있다. 현재 이 부지는 도시계획법상 ‘자동차정류장’ 부지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지구단위계획 변경 없이는 대형유통점 등 복합상가 건축이 불가능한데도 신세계가 거금을 투자한 배경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형국이다. 부동산 투기 의혹과 이면계약설을 넘어 비자금 조성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는 박 전 회장과 신세계 측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 속으로 들어가 봤다.
김해 시외버스터미널 부지를 둘러싼 논란이 처음 불거진 것은 ‘박연차 게이트’의 서막이 올랐던 200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무렵 박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부산·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승승장구해 온 박 전 회장의 대규모 사업 및 재산형성 과정에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박 전 회장이 실질적 소유주였던 터미널 부지를 둘러싼 특혜 및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 때쯤이다.
<일요신문>이 확보한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안 아무개 씨와 함께 2002년 10월 11일 한국토지공사로부터 경남 김해시 외동 1264번지 김해 시외버스터미널 부지(7만 4331㎡)를 300억여 원에 매입했다. 이 부지는 제1종지구단위계획구역(자동차정류장)으로 지정돼 있어 버스정류장과 그외 편의시설만 들어설 수 있는 곳이었다. 박 전 회장이 주변 부동산 시세보다 3분의 1 정도 싼 가격으로 이 부지를 매입할 수 있었던 것도 ‘개발제한구역’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이 이 부지를 매입한 이후 김해시가 터미널을 다른 지역으로 옮길 계획을 추진 중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고, 지역 부동산업계 주변에서는 터미널 부지 시세가 1000억 원을 상회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터미널 이전 소문은 송은복 전 김해시장이 재임할 당시에 불거졌다. 송 전 시장은 재임시절(1995~2006년) 박 전 회장의 각종 사업과 관련해 편의를 제공해 주는 대가로 5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2009년 3월에 구속됐다.
박 전 회장의 터미널 부지 매입을 둘러싼 논란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부지 매입 자금 출처와 관련한 의혹이 증폭되면서 횡령 및 비자금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박연차 게이트’에 올인 승부를 펼쳤던 한나라당은 박 전 회장 측이 회사자금을 횡령해 부지를 매입했고, 탈세 및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 전 회장과 공동명의로 부지를 매입한 안 씨의 정체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했다. 경남지역 재계 주변에서는 안 씨가 박 전 회장 측근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을 뿐 그녀의 역할 및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박 전 회장 측이 오랫동안 등기이전을 마무리하지 않은 대목도 석연치 않다. 박 전 회장 측은 터미널 등 일부 건물이 철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잔금 3억 원을 남겨둔 채 등기이전을 마치지 않았었다. 다른 목적이 있어 고의로 잔금을 치르지 않으면서 소유권 이전을 지연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렸다.
이처럼 ‘박연차 게이트’ 초기부터 의혹이 증폭됐던 터미널 부지 매입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지난 1월 22일 박 전 회장 측이 이 부지를 신세계 측에 매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또다른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부지 매매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부동산업계는 매매 대금이 얼마인지, 현 도시계획법상 대형유통점 등 복합상가 건축이 불가능한 부지를 대기업인 신세계가 왜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 사들였는지 등을 놓고 갖가지 억측이 나돌고 있다. 물론 드러난 매각 차익만 550억 원대에 달하는 박 전 회장의 부동산 투기 논란도 재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투기 논란이 증폭되자 박 전 회장 측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박 전 회장의 대리인 문기봉 고문은 2월 9일 김해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구조조정 1순위인 불용자산을 매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고문은 “김해 시외버스터미널 부지와 관련해 여러 가지 추측이 이어지고 있다”며 “기업이익을 위해 개발을 추진한다면 현재의 시각으로는 특혜성 시비의 논란이 될 수밖에 없고, 개발을 추진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불용자산이 돼 엄청난 금융 비용과 지속적인 세간의 이목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매각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 매도 금액 및 매각 이익과 관련해서는 “이 부지(7만 4331㎡)는 박 전 회장의 단독 소유가 아니라 공동(안 씨) 소유이므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박 전 회장의 지분은 3만 7165㎡로 매입비용 183억 원에 매도금액은 449억 7000만 원이다. 세전 매각이익은 266억 7000만 원이고 순수익은 양도소득세와 주민세, 투입기간 이자(기회비용, 약 8년)를 제외하고 65억 7000만 원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고문은 안 씨가 부지 매입 당시 자금 절반을 실제로 투자했는지, 또 매도 금액 중 절반이 그의 몫으로 돌아가는지 등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문 고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지역 부동산업계를 중심으로 각종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매도 금액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문 고문의 설명에 따르면 부지 전체 매도 금액은 899억 4000만 원(안 씨 지분 포함)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2월 10일 기자와 통화한 부산지역 건축설계사 K 씨는 “터미널 부지에 대한 근저당권 설정 금액(292억여 원)을 감안하면 실 매매가는 1000억 원을 훨씬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박 전 회장 측의 해명에 따르더라도 세전 매각 이익은 550억여 원에 달하고 양도소득세 등을 제외하더라도 수백억 원의 시세 차익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K 씨는 또 “공동명의자인 안 씨는 명의만 빌려주고 박 전 회장이 매입 자금을 모두 충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시세 차익 또한 전적으로 박 전 회장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박 전 회장 측이 안 씨 지분을 계속 주장하려면 안 씨가 실제로 투자한 매입 자금을 공개하고, 자금 출처 및 재산세 납부 내역 등도 투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형유통업체인 신세계가 1000억 원대의 자금을 투자해 터미널 부지를 매입한 배경에 대해서도 갖가지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대기업인 신세계가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했을 때는 분명 박 전 회장 측이나 김해시 측과 용도변경 교감 등 ‘이면계약’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지구단위계획 변경 없이는 대형유통점 등 복합상가 건축이 불가능한 부지를 신세계가 아무런 담보나 복안 없이 거액을 투자했을 리 만무하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박연차 전 회장과 신세계 사이의 부동산 거래내역이 적혀 있는 등기부 등본. | ||
하지만 신세계 측의 한 관계자는 2월 1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용도변경이니 이면계약이니 하는 소문은 말 그대로 낭설일 뿐”이라며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편법을 동원해 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며 지역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각종 의혹을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또 “도시계획법상 자동차정류장 용도로 지정된 범위 내에서 개발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라며 “서울 강남이나 인천 부천 일산 등 터미널과 연계된 복합시설이 개발된 선례가 있는 만큼 부지 용도에 부합하고 김해시민의 편의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사업계획서를 준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지 실 매입가가 얼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박 전 회장 측에서 밝히지 않았느냐”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터미널 부지 매매를 놓고 지역 민심이 들끊자 김종간 김해시장은 “시민들을 위한 현대식 여객터미널을 짓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시장은 2월 10일 김해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최근 해당 터미널 부지 매각 과정에서 말이 많은데 해당 부지는 엄연히 도시계획법상 자동차정류장 용도로 지정돼 있는 만큼 터미널 건립이 1순위”라며 “인구 50만 명에 가까운 시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여객터미널을 보면서 시민들도 반듯한 현대식 터미널을 확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 시의 행정력도 터미널 확보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시장은 또 “터미널 부지 매각 추진과정에서 어떠한 사전 협의나 보고를 받지 못했다”며 부지 소유권자 측과의 사전 접촉설을 일축하는 등 지역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면계약’ 의혹을 차단했다. 다만 김 시장은 여객터미널과 연계한 유통시설 입점 여부와 관련해서는 “향후 터미널 건립을 위한 사업계획을 검토해야 하겠지만 일단 터미널을 제대로 확보한 뒤 관련법에 따라 기타 시설을 짓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유통업체인 신세계가 부지 소유권을 확보한 만큼 용도변경은 아니더라도 현대식 여객터미널과 연계한 유통시설 입점 가능성을 열어논 셈이다.
과거 서울 강남 시외버스터미널 부지가 터미널과 연계한 고품격 복합생활문화 공간인 ‘센트럴시티’로 화려하게 재탄생했듯이 김해 시외버스터미널 또한 터미널과 연계한 종합생활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형 유통업체인 신세계가 터미널 부지를 확보하자 벌써부터 특혜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 전 회장의 부동산 투기 논란을 넘어 ‘이면계약’ ‘비자금 조성’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는 김해 시외버스터미널 부지 매매를 둘러싼 진실게임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부산·경남 지역을 달구는 또 다른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