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구vs 한의’ 싸움이 정치권으로 불똥
▲ 뜸사랑 회장 구당 김남수 옹이 지난 1월 21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에서 현지 병원과 실행한 암환자에 대한 침뜸 임상진행 내용과 자신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
이처럼 양측의 갈등이 정치권으로 확전되고 있는 와중에 김 씨가 최근 수백억 원대 교육비 유용 혐의로 사정당국으로부터 내사를 받은 데 이어 유명인 마케팅 논란까지 점화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한의사 업계 주변에서는 김 씨의 과거 행적 및 정관계 로비 정황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된 이른바 ‘구당 X파일’이 나돌고 있는가 하면 정·관계 등 유명인사들이 대거 ‘구당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일요신문>이 확보한 ‘구당 리스트’에는 여권 핵심실세인 A 씨를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 다수가 포함돼 있어 상당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한의협과 김 씨 간의 난타전을 넘어 정치권으로 그 불똥이 튈 조짐이 일고 있는 ‘구당 X파일’ 및 ‘구당 리스트’ 실체 속으로 들어가 봤다.
김남수 씨의 뜸 시술을 둘러싼 불법 논란은 십수년 전부터 지속돼 왔다. 70여 년간 침과 뜸을 시술해 온 김 씨의 의료행위가 입소문을 타면서 정·관계 인사는 물론 언론인, 유명 연예인, 소설가, 대기업 임원 등 각계 인사들이 그를 찾기 시작했다. 문제는 김 씨가 침사(鍼士) 자격만 갖고 있고, 뜸 시술을 할 수 있는 구사(灸士) 자격증은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한의협이 김 씨의 뜸 시술을 불법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본격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그 서막이 올랐다.
김 씨의 불법 의료행위 논란이 거세지자 검찰은 2008년 7월 김 씨에게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뒤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고, 서울시는 이를 근거로 같은 해 10월 김 씨의 침사 자격을 45일간 정지시켰다.
서울시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김 씨는 “침사와 구사를 구분한 것은 구사의 침술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것이다. 위험성이 없는 침사의 뜸 시술을 못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5월 20일 김 씨가 서울시를 상대로 낸 침사 자격정지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침사와 구사는 각각 정해진 면허 범위 이외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며 “침사에게 뜸 행위를 허용하는 문제는 입법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이상 서울시가 그에게 내린 자격정지 처분을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18일에는 노인과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침과 뜸을 놔준 ‘뜸사랑’ 회원 100여 명이 경찰에 입건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한의사 자격 없이 불법 의료행위를 한 혐의로 ‘뜸사랑’ 회원 강 아무개 씨 등 128명을 불구속 입건한 바 있다. 이들은 2007년 8월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사무실에서 노인이나 저소득층 등을 상대로 일주일에 두 번씩 무료로 침과 뜸을 놔주는 봉사활동을 해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았다. 경찰에 입건된 ‘뜸사랑’ 회원들은 다름 아닌 남수침술원 원장인 김 씨에게 침과 뜸을 배운 사람들이 설립한 자원봉사단체다.
김 씨의 뜸 시술 불법 논란은 지상파 방송 3사가 잇따라 특집으로 다루면서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했고, 일부 정치인은 ‘뜸 시술 자율화법’을 발의하는 등 뜸 시술 논란은 한의업계를 넘어 정치권으로 그 불똥이 튀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뜸 시술 자율화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검찰이 김 씨의 수백억 원대 교육비 착복 정황을 잡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가 하면 지난해 9월 사망한 배우 고 장진영 씨의 침뜸 시술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면서 한의협과 김 씨 간의 갈등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먼저 장진영 씨 치료행위를 둘러싼 논쟁은 김 씨의 유명인 마케팅 논란으로 비화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마케팅 논란은 얼마 전 MBC 이상호 기자가 김 씨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를 발간하면서 불거졌다. 이 책에는 장 씨가 생전에 김 씨에게 진료를 받는 모습이 담겨 있어 ‘고인을 홍보의 목적으로 이용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의협은 1월 20일 성명서를 통해 “고인을 이용한 불법 의료마케팅과 대국민 거짓말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 김남수 옹이 뜸사랑 회원들에게 특정 정치인의 후원을 요청한 글. | ||
장 씨 시술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자 김 씨는 1월 21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고 장진영 씨가 자신의 치료로 분명히 효과를 얻었고, 암 종양이 줄어들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2월 24일 기자와 통화한 뜸사랑 조건원 사무처장도 “한의사업계 일각에서 장진영 씨가 구당의 치료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다는 식으로 매도하고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장 씨의 치료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한 이상호 기자의 글을 읽어보고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사무처장은 또 유명인 마케팅 논란과 관련해서는 “구당이 모든 유명인들을 고쳤다는 얘기가 아니라 치료한 적이 있다는 얘기”라며 “허위로 하지도 않은 사람을 치료했다고 한 적도 없고, 광고나 선전을 위해 우리 측에서 먼저 그들(유명인)을 끌어모은 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 씨의 수백억 원대 교육비 착복 의혹은 한의협과 김 씨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메가톤급 핵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참실련은 지난해 12월 “최근 경찰과 검찰이 김남수 씨가 전국적으로 모집한 5000여 명의 수강생들로부터 불법적으로 약 200억 원의 수강료를 가로챈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최근 기자와 만난 참실련의 한 관계는 “누가 김 씨를 고소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수사를 처음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며 “김 씨 사건에 대한 검찰단계 조사가 시작되면서 검찰이 조사를 위해 한의협에 참고인 진술을 요청해 오면서 알려지게 됐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검찰은 언론을 통해 유명해진 김 씨가 불법 침뜸교육 사업을 통해 약 200억여 원을 착복하고 의료법 및 자격기본법을 위반한 혐의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뜸사랑 조 사무처장은 “애초 경찰에서 착복 및 횡령 등 자금 불법유용 부분을 추적하기 위해 뜸사랑 직원과 강사 등 모두 84명의 개인 은행계좌까지 샅샅이 조사했지만 아무 혐의가 나오지 않았다”며 “검찰에서도 현재 시한부 기소중지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 구당 김남수 옹이 운영하는 남수침술원. | ||
특히 전방위 로비 의혹은 이른바 ‘구당 리스트’로 확대·재생산되고 있어 사실 유무에 따라 상당한 후폭풍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정·관계를 포함한 각계각층의 유명인사 20여 명이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핵심실세인 A 씨와 민주당 B 의원, 참여정부 시절 최고위직을 역임한 C 씨 등 정·관계 인사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특히 김 씨의 든든한 후원자로 알려진 A 씨의 경우 김 씨와 뜸사랑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현장에 직접 나타나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는 등 김 씨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실련의 한 관계자는 “김 씨는 로비와 마케팅의 달인이다. 그와 뜸사랑의 성장 배경에는 막강 인맥과 전방위 로비가 자리잡고 있다”며 “김 씨의 200억대 교육비와 맞물린 정·관계 로비 정황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각종 근거 자료가 취합되고 있는 만큼 조만간 ‘구당 신화’의 베일이 벗겨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와 이들 정관계 인사들이 어떤 관계이고, 또 김 씨가 이들에게 후원금 등 정치자금을 지원했는지 여부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김 씨가 뜸사랑 회원들에게 정치 후원금 납부를 독려해 왔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일요신문>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김 씨는 2005년 12월 뜸사랑 홈페이지를 통해 “B 의원을 도와야 한다. 많은 고민 끝에 후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회원 300명의 명의로 1인 10만 원씩 3000만 원을 나 혼자 우선 기부하기로 했다. 후원금 10만 원을 뜸사랑 계좌로 넣어 주면 영수증을 보내겠다”며 회원들에게 후원금 납부를 독려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조 사무처장은 “구당과 관련한 각종 의혹들은 사실무근이고, 구당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집단들이 허위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며 “한의협은 구당의 의료활동이 허용될 경우 자신들의 수익에 지장을 받고, 입지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온갖 음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 씨의 뜸 시술을 둘러싼 한의협과 김 씨의 해묵은 논란은 양측의 치열한 난타전을 넘어 이제 정치권으로까지 그 불똥이 튈 조짐이 일고 있다. 한의사 업계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구당 X파일’ 및 ‘구당 리스트’ 실체를 둘러싼 진실게임도 갈수록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정관계를 뒤흔들 또다른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는 ‘구당 리스트’는 과연 폭발할 수 있을까. 사정당국의 수사 추이에 한의사업계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