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만 된다면야 부모를 못바꾸랴’
▲ 지난해 열린 특목고 입시 설명회.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 ||
이처럼 갖가지 비리로 교육계가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특목고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에 입양까지 시키는 학부모들이 있다는 사실이 <일요신문> 취재결과 처음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특히 강남, 목동 등 부유층 부모들에게 접근해 은밀히 유혹하는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적잖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편법 입학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학부모들의 잘못된 교육열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 정부 기관에서는 교육계 내의 비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교육 주체의 또 다른 축인 학부모들이 저지르는 각종 편법들을 근절하지 못한다면 교육 개혁은 요원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목고에 입학하기 위해 비윤리적인 방법도 서슴지 않고 있는 일부 학부모들의 몰지각한 행태를 취재했다.
자립형사립고(자사고)가 문을 열고 특목고들의 입학 전형이 다양해진 2010학년도 고교 입시의 또 다른 특징은 특목고와 자사고 등 상위권 학교가 사회적 배려 대상자 선발 인원을 대폭 늘렸다는 점이었다.
2010년도 입시안이 확정발표된 직후인 지난해 3월경 강남과 목동 등의 특목고 입시반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를 바꾸면 특목고에 들어가기가 더욱 수월해진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말하는 ‘엄마, 아빠를 바꾼다는 것’은 몇몇 특목고에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지원 자격 요건으로 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규정하는 수급권자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대부분의 특목고들은 가정생활이 어렵거나 혹은 국가유공자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실시하고 있다. 내년입시부터는 그 선발 대상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전해져온 이 같은 소문이 이제 단순한 ‘루머’가 아닌 현실로 드러나고 있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기자는 최근 특목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한 부모로부터 놀라운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들어온 아이가 있다. 원래 학교 측에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여부를 공개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떤 아이들이 (사회적 배려) 대상인지를 다 알고 있다. 그중 유독 한 학생에 대한 소문이 아이들 사이에서 많이 났다고 한다. 소년소녀 가장인지 혹은 부모가 기초생활대상자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돈 씀씀이가 일반전형 학생들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집안이 어렵다고 알려진 이 학생이 주말에만 100만 원 이상 하는 학원에 다니고 기숙사 생활이 끝나는 금요일에는 고급승용차를 타고 집에 간다고 하더라. 친구들 말에 따르면 특목고에 입학시키기 위해 부모가 그 학생을 다른 집으로 ‘입양’을 시켰다고 한다. 그 이후 호적상 가족관계가 어떻게 정리됐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원래 부모들과 함께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 기자는 몇몇 행정기관 등의 도움을 얻어 이 학생에 대해 보다 자세한 취재를 했다. 가족관계나 기초생활수급자 여부 등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접근이 어려운 측면이 있었지만 다른 몇몇 자료들에서 사실로 받아들일 만한 정황들이 포착됐다.
또한 같은 학교에 다니는 다른 학생의 학부모를 통해 이 학생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 포함됐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여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이 같은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들의 성적이 대부분 하위권이어서 그들의 존재 자체가 자신들의 내신 성적에 유리하다는 계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대부분 특목고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요강을 살펴보면 세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하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정하는 수급자의 자녀여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는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자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자’ 혹은 ‘생활이 어려운 자로서 일정 기간 동안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정하는 급여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필요하다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자’를 수급권자로 정하고 있다.
둘째는 학교장 추천서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일반전형의 학생들과 동일한 성적 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성적요건이 일반전형 학생들과 동일하다면 왜 다른 가정으로 입양까지 시키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일까.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은 대부분 미달이거나 경쟁률이 일반 전형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말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되면 그만큼 특목고에 진학하기가 일반전형에 비해 쉽다는 의미다.
물론 경쟁률이 낮아도 지원 자체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한다. 특목고 학원의 한 관계자는 “진짜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면 특목고에 들어갈 성적을 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요즘 현실”이라며 “요즘은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학교 입학 때부터 많은 사교육비를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들이 특목고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다른 학생들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나고, 학비나 생활비 등을 면제받아도 각종 사교육비 등에서 일반 학생들에 밀리기 때문에 지원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지원 자격 중 하나인 중학교 학교장 추천서는 어떻게 받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학원 관계자는 “특목고에 한 명이라도 더 보내면 학교의 이름이 그만큼 잘 알려지기 때문에 이를 마다할 교장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지원 자격이 갖춰진 학생을 고등학교 전형과정에서 걸러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런 은밀한 거래를 주선하는 학원가 브로커도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내년 입시부터 특목고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이 점점 늘고 있는 만큼 브로커들이 더욱 활개를 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들에 대해 중학교 1학년 학생을 둔 한 학부모는 “진짜 사회적으로 배려를 받아야 할 학생들이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 때문에 배려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편법도 서슴지 않는 부모와 이를 악용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일부 몰지각한 학원 간의 은밀한 ‘짝짓기’는 교육비리와는 또 다른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현재 검찰은 이런 내용의 신종 입시 비리에 대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조만간 수사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일요신문>은 취재 대상이 된 학생이 이미 학교에 다닌 지 1년 이상이 되었기 때문에 취재과정에서 생길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학생·학부모에게 직접적인 취재를 하거나 해명을 듣지 않았다.
자녀를 위해서 파양과 입양을 하는 일은 비단 학교 입시에서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대기업에서도 이런 비슷한 유형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임직원의 자녀가 대학생이 되면 회사 측에서 대학 입학금 및 등록금을 지원해준다.
물론 자녀가 대학생이 될 때 부모의 나이가 50대를 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런 혜택을 받는 사무직은 사실상 임원들에게만 해당한다.
다만 생산직에 있는 근로자들은 대부분 정년까지 현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혜택을 받는다.
이와 관련 최근 기자가 만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근 회사 내에서 대학 등록금 지원 문제가 핫이슈로 떠올랐다”며 “대학등록금 혜택 때문에 조카들을 자기 가정에 입양시키는 사례가 드러나 회사 차원에서 이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연간 1000만 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형제자매 중에 대기업 임직원이 있으면 그 가정에 입양시켜 4년간 등록금을 지원받는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선의를 가지고 입양을 하는 가정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마땅히 제제할 방법이 없어 고민 중이라고 한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