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공무원이 ‘동부’로 옮긴 까닭은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과 아들 김남호 씨(오른쪽). | ||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음성군 실세 간부였던 L 씨는 지난해 말 퇴직 후 동부그룹 계열사로 골프장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동부월드 이사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군청 간부가 퇴임 후 대기업 임원으로 스카우트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특히 골프장 인허가를 놓고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에서 주무 관청 간부가 분쟁 당사자인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점에서 뒷말이 무성하게 나오고 있다.
음성지역 사정기관 주변에선 전직 군수와 가족, 측근들의 비리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긴 괴문서가 나도는가 하면 ‘대기업 유착설’ ‘검찰 내사설’ 등 갖가지 소문이 떠돌고 있어 지역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지고 있다. 대검찰청은 청와대의 토착비리 척결 의지와 맞물려 음성군 골프장 사업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내사를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와 자스타 측의 분쟁을 넘어 대기업과 지자체 간의 토착비리 의혹으로 확전되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는 음성군 골프장 분쟁 2라운드 속으로 들어가 봤다.
음성군 차곡리 일대 골프장 인허가를 둘러싼 동부그룹과 자스타 측의 분쟁은 3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2006년 12월부터 시작된 자스타 측과 동부그룹 계열사인 (주)동부하이텍 간의 분쟁은 행정소송 및 민·형사 소송으로 확전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양측의 분쟁 과정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김남호 씨가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세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요신문>은 지난 1월 ‘동부그룹 황태자 김남호 씨 소송 휘말린 사연’(924호)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음성군 골프장 사업을 둘러싼 양측의 분쟁 및 김남호 씨 연루 의혹 등을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기자가 입수한 음성군 차곡리 일대 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김 씨는 2006년 12월부터 2007년 5월 사이에 골프장 부지로 예정된 차곡리 일대 토지를 집중적으로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는 2006년 12월 8일 차곡리 산62번지 3만 1339㎡(9480평)를 12억 3000여만 원에 사들였고, 같은 달 21일에는 차곡리 산61번지 6만 694㎡(1만 8360평)를 32억 원에 매입했다. 차곡리 산 61·62번지는 자스타 측이 골프장 건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지이기 때문에 동부의 ‘알박기’ 의혹이 일고 있다. 특히 김 씨는 이 부지를 시세보다 2배 이상 높은 가격에 사들여 자스타 측이 기존에 맺은 매매 계약을 파기시키는 등 막강 자금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김 씨는 또 2007년 5월 11일 골프장 부지인 차곡리 625·626·627·628지번의 4필지에 해당하는 과수원을 일시에 매입하는가 하면 골프장 부지 인근인 생극면 생리 일대 46만 5000여㎡(14만여 평)를 자신과 가족 명의로 매입하기도 했다. 김 씨가 생극면 차곡리 일대와 생리 일대 부지를 사들이기 위해 투입한 돈은 대략 80억여 원에 달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 씨와 그 가족이 생극면 일대 토지를 집중적으로 매입할 당시 김 씨는 유학생 신분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불법 농지 취득 의혹과 더불어 자금 출처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자스타 측은 “동부 측의 생극면 일대 골프장 부지 매입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고 차명계좌로 수십억 원을 들여 김준기 회장 아들 앞으로 땅을 매입한 사실 또한 의심스럽다. 동부 측이 알박기를 시도해 사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동부 측은 “차곡리 골프장 사업은 동부가 3~4년 전부터 추진해 왔던 사업이고, 토지 매입 또한 합법적으로 진행해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이사로 자리를 옮긴 전 음성군청 인·허가 주무 부서 간부의 명함. | ||
3월 4일 기자와 통화한 자스타 측의 고위 관계자는 “음성군과 동부그룹이 유착관계에 있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대기업이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을 동원해 중소기업을 고사시켰던 70년대 재벌의식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골프장 분쟁이 음성군과 동부의 커넥션 의혹으로 비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음성군청 실세 간부가 동부월드 이사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확인돼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동부월드는 김준기 회장이 세계 최고를 목표로 직접 진두지휘해 만든 음성군 소재 ‘레인보우힐스’ 골프장(2008년 3월 개장)을 운영하고 있는 동시에 동부가 추진하고 있는 차곡리 일대 골프장 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동부그룹 핵심 계열사다.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회장이 지난해 10월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것도 동부월드와 관련이 있다. 김 회장은 임원들과 공모해 2000년 12월 동부건설 자사주의 35%에 해당하는 763만 주를 판 뒤 자신이 저가에 사들여 동부건설에 손실을 끼치고, 2003년 6월에는 자신과 계열사에 골프장업체인 동부월드 주식 101만 주를 주당 1원이란 저가에 팔아 동부월드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최종 선고 받았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음성군 실세 간부였던 L 씨는 지난해 12월 29일 퇴직한 뒤 다음날 곧바로 동부월드에 입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L 씨가 퇴직하자마자 동부월드 임원으로 영입된 정황에 미뤄 동부와 L 씨는 사전에 ‘인사’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음성군과 동부월드 측은 L 씨의 퇴임과 영입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그 배경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3월 4일 기자와 통화한 음성군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에 퇴임한 L 씨가 동부월드 이사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 전후 사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고, 동부월드 관계자는 “L 씨가 이사로 영입된 것은 사실이지만 골프장 인허가 문제와는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4일 어렵게 휴대폰 통화가 된 L 씨는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할 말 없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고, 이후 기자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역 업계 주변에서는 군청 간부가 퇴임 후 대기업 임원으로 스카우트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 골프장 인허가를 놓고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에서 주무 관청 간부가 분쟁 당사자인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점에서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L 씨는 음성군청 실세로 재직하면서 레인보우힐스 골프장 인허가 과정은 물론 차곡리 골프장 사업에도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으로 알려져 L 씨의 동부행 이면에는 음성군과 동부 간의 검은 커넥션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음성지역 사정기관 주변에선 전직 군수와 가족, 측근들의 비리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긴 괴문서가 나돌고 있어 지역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지고 있다. 2월 중순께부터 나돌기 시작한 괴문서에는 지난해 12월 24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실형이 확정돼 군수직에서 물러난 박수광 전 음성군수와 측근들의 비리 의혹이 상세히 적시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괴문서에는 박 전 군수와 일부 군청 간부들이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 개입해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설, 골프장 회원권을 상납받았다는 설, 대기업 유착설 등이 구체적인 정황과 함께 적시돼 있어 지역 사정기관이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음성군 골프장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사업체 간의 법적 분쟁을 넘어 지자체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개입된 권력형 비리 형태를 갖추자 청와대와 사정당국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기자와 만난 대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의 토착비리 척결 의지와 맞물려 대검이 음성군 골프장 인허가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내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검이 내사에 착수한 만큼 음성군청을 정점으로 한 지역 토착비리는 물론 동부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도 수사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음성군 토착비리 의혹 및 동부그룹 비자금 사건으로 확전되고 있는 동부와 자스타의 지리한 법적 분쟁이 어떤 식으로 결론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