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유출자 색출 기회’ 3번 날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윤회 동향 문건 유출 사태에 관해 언급했다. 사진제공=청와대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청와대는 최소한 두 번은 문건 유출자 색출과 문건 회수에 나서야 했다. 그 첫째는 청와대 행정관들의 비리 행태에 대한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 문건 내용이 지난 4월 <세계일보>에 보도됐을 때였다. 청와대는 이미 이때 박관천 경정이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일할 당시 문건을 빼돌렸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도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청와대가 이미 문건의 대량 유출 사실을 알았다고 밝혔다.
두 번째 기회는 지난 6월 공직기강비서관실 오 아무개 행정관이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유출된 문건 100여 장의 존재 사실을 보고했을 때였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자신이 오 행정관을 시켜 정호성 비서관에게 100여 장의 뭉텅이 문건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청와대에서는 오 행정관이 유출된 문건의 사진을 스마트폰에 담아 왔다고, 다른 말을 하고 있다.
형식이 어떻든 당시 오 행정관은 정 비서관에게 ‘문건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다. 회수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했다고 한다. 당시 오 행정관이 소위 취재원 보호를 이유로 문제의 문건(또는 사진)을 어디에서 입수했는지 밝히기를 거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중대 사태를 맞은 청와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더욱이 박지만 EG 회장이 지난 3월 국가정보원과 청와대의 친분 있는 인사를 통해 자신의 동향을 담은 청와대 문건이 대량 유출됐다며 조사를 부탁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더더욱 청와대가 문건 유출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야 한다는 얘기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12월 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대량으로 청와대 문서가 유출되는 심각한 보안사고가 터졌는데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덮은 건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조 전 비서관은 그 이유에 대해 “언젠가부터 내가 목표물이 돼 버렸다. 내가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이들의 입장에선 제거 대상이 이미 청와대를 떠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시 이 문제를 끄집어 내 시끄럽게 할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문건 유출자 색출과 문건 회수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안했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그럴 만한 여력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청와대가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라 내부 사정으로 인해 유출자 색출과 문건 회수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각이다. 앞서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문건이 유출됐을 경우를 가정해 의문을 제기했던 여권 인사도 청와대가 ‘안한 게 아니라 못했다’는 쪽에 무게를 뒀다.
“문건 유출과 같은 심각한 공직기강 해이를 감시하고 바로잡아야 할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오히려 사고를 친 주범이었던 게 문제”라며 “당시 청와대, 그 중에서도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정호성 제1부속·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은 공직기강비서관실 전체를 못 믿을 집단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박관천 경정은 조응천 전 비서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장 강한 이빨’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심복 중의 심복이었다. 그런 박 경정이 문건 유출자로 지목됐는데 어떻게 조 전 비서관이 이끄는 공직기강비서관실에 유출자 색출을 맡길 수 있었겠느냐.”
공직기강비서관실 직원들 중 ‘피아’ 구분이 어렵다고 판단한 문고리 3인방 등 청와대가 직원 물갈이에 우선적으로 매달리느라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일부 전·현직 청와대 직원들도 이런 해석에 공감을 표했다.
우선 공직기강비서관실에 조응천 전 비서관이 ‘데려다 꽂은’ 직원들이 여러 명 있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경찰 내부에서 수사통으로 인정받았을 뿐 정보 파트 근무 경험이 거의 없었던 박관천 경정이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배치된 것도 조 전 비서관과의 돈독한 관계 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통령의 측근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나 실세들을 감시해야 하는 공직기강비서관실 직원은 고도의 정무적 감각과 정치적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조사를 받기 위해 5일 서울중앙지검으로 출두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처음에는 전 씨가 공직기강비서관실로 온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내부의 반대가 워낙 심해 결국 무산된 것으로 안다. 박지만 회장을 관리해야 하는 조 전 비서관이 전 씨를 대신해 오 행정관을 데려다 썼다는 얘기”라며 “최 아무개 전 행정관도 조 전 비서관과 각별한 사이로, 조 전 비서관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며 데려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점이 문제가 됐는지 실제로 공직기강비서관실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다른 어떤 조직보다 극심한 인적 교체에 내몰렸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거의 대부분의 직원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지난 2월 박관천 경정이 1차로 경질된 데 이어 지난 4월 조 전 비서관이 물러난 뒤 순차적으로 물갈이가 이뤄졌다. 특히 권오창 현 공직기강비서관 부임 이후에 그 폭이 더 커져 지난 7월에는 7명의 직원이 한꺼번에 교체되기도 했다. 공직기강비서관실 직원 수가 20명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조직을 ‘뒤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가 ‘조응천의 흔적’을 지우느라 문건 유출 관련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여전히 강하다. 조 전 비서관의 주장과는 다른 시각에서 청와대의 의도적 직무유기, 사건 덮기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문고리 3인방을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봐 온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측근 실세들의 비밀주의가 더 큰 화를 부른 것 같다”며 다음과 같은 설명을 풀어놨다.
“청와대의 감찰 문건이 한 두 장도 아니고 100여 장이나 유출됐다는 건 사고도 보통 사고가 아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걸 공식적으로 보고하고 공론화해서 해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권에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쫓아내는 선에서 조용히 넘어가려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을 듯하다. (11월 28일) <세계일보>의 문건 보도 이전까지 청와대 문건이 그렇게나 많이 유출됐다는 사실은 아마도 대통령에게는 보고되지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가 문건 유출자 색출과 문건 회수를 안했건 못했건 간에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 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수개월 동안 청와대 내부에서 불신의 시선을 받으며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짧게는 조응천 전 비서관이 물러난 지난 4월부터 공직기강비서관실 직원 물갈이가 끝난 7월까지다. 박관천 경정이 정윤회 문건을 작성해 물의를 일으키고 경질된 1∼2월을 시작점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최소 4개월, 길게는 6개월가량 청와대와 대한민국 정부가 소위 ‘워치독(감시견)’ 없는 상태로 방치됐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국기문란이자 기강해이”라는 지적과 함께 “문건 유출 관련자는 물론 관리 책임자들도 반드시 문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 정부 고위 관료는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해 놓고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이율배반”이라며 “관리의 최고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은 물론 문고리 3인방에게도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이 궁극에는 청와대 개편과 개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