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짐 쌀 시간도 없이 “나가라”며 쫓겨나다시피 한 비서관에게 신의를 기대하는 게 상식이 아니지 않을까. 유진룡 전 장관은 해외 순방을 하는 와중에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통보를 대사관 측으로부터 받았다는데, 그런 상황에서 신의를 얘기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배신은 배신당한 사람의 성향과 관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부하를 존중하지 않는 상사에게 신뢰를 지킬 부하는 없다. 조직의 팀원들은 리더의 몸이다. 몸이 없이 정신은 구현되지 않는다. 그런데 리더가 팀원을 늘 닦달하면서 월급이나 축내는 존재로 생각하거나, 믿지 못하거나, 무시하거나 한다면 결정적인 순간의 배신은 따 논 당상이다.
나는 <삼국지>의 유비가 부하를 존중하는 리더십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공명의 머리를 빌리고, 관우의 힘을 울타리 삼고, 조자룡의 의리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들을 신뢰하고 아꼈기 때문이다. 삼고초려, 삼고초려 하지만 누구나 삼고초려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급해서 세 번 찾아간 것이 삼고초려는 아니니까.
유비의 삼고초려는 지혜를 빌리는 지혜의 전형이다. 유비는 공명을 얻기 위해 자세를 낮춰 지혜를 빌리는 지혜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것이다. 그것이 한 순간의 제스처가 아니었던 것은 결국 그의 유언장에서 드러나지 않는가. 내 자식의 앞날이 밝아 보이지 않으면 원래 천하는 만백성의 것이니 공명 스스로 촉의 주인이 되라, 했던 그 유언장!
나는 ‘리더는 괜찮은데 주변 사람이…’라는 식의 얘기는 믿지 않는다. 리더의 실체는 바로 누구를 모으는가에서 결정된다. 괜찮은 사람을 들어 괜찮게 쓰는 것도 리더고, 괜찮은 사람을 들어 졸장부로 쓰는 것도 리더다. 주변을 아부하는 사람들로만 포진하는 것도 그 리더의 자질과 관련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이 똑똑한 야심가 조조 밑에 모이지 않고, 뭔가 부족한 듯 보이는 유비의 품에 든 것은 분명하다. 유비가 그들을 알아보고 아꼈기 때문이다. 조자룡이 죽음을 무릅쓰고 유비의 아들을 구해 나오자 고맙다, 하지 않고 네가 더 소중한 존재라고, 목숨을 함부로 걸지 말라고 명하는 리더라면 어찌 배신할 수 있을 것인가.
리더가 부하를 아끼면 부하는 리더를 위해 목숨을 건다. 그러나 리더가 부하를 소모품처럼 여기면 부하는 리더에 절망하고 눈치만 보다가 자기 살 길을 찾아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