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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의 한 장면 | ||
소장에 따르면 하씨는 지난해 친구의 소개로 만난 한 50대 사업가로부터 ‘아들을 꼭 얻고 싶은데 내 부탁을 들어주면 그 대가로 1억원과 출산할 때까지 거주할 집, 생활비를 대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문제가 생긴 것은 남자쪽에서 이 약속을 ‘없던 것으로 하자’고 선언한 뒤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하씨는 “약속이 이행됐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1억원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상하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이 소송을 접수한 제주지법 민사2단독은 현재 재판을 앞두고 쌍방으로부터 답변서 등 증거자료를 제출받아 검토중인 상태. 본격적인 법정공방을 벌이기도 전에 팽팽히 맞서고 있는 양쪽의 주장을 들어봤다.
# 고소인 하명옥씨. 지난 93년, 꼭 10년간의 결혼생활을 정리한 그녀는 그 이후 줄곧 전 남편이 남겨 놓은 외아들과 단 둘이 살아 왔다. 낮에는 건물 청소원으로, 밤에는 슈퍼마켓 점원으로 일하며 매달 70만원을 받고 있었다. 그녀의 소망은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키고 편안한 노후생활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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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아들 교육비 마련하려 >>
# 하씨와 법정서 마주서게 된 피고소인 윤창덕씨(가명?4). 딸만 둘을 둔 그는 평소 ‘이 세상에 태어나서 후손을 남기지 못하면 남자로서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사업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들을 두지 못한 데 대한 후회는 깊어만 갔다. 한때 양자를 들이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아내가 “미래를 생각한다면 피는 당신 피라야 한다”며 완강히 반대해 포기해야 했다.
윤씨가 아들을 열렬히 원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그는 아들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몇 차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장성한 아들만 있다면 나를 이렇게 우습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했던 경우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선산에 벌초를 갈 때도 그랬다. 집안의 온 식구가 모이는 그 자리에 별 생각없이 딸아이들을 데리고 간 윤씨. 다른 형제들이 자랑스레 아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보고 그만 ‘기가 꺾이고’ 말았다. 자신의 ‘뒤가 없다’는 사실이 서럽기만 했다.
그때부터 아들에 대한 윤씨의 소망은 심각한 현실의 문제로 떠올랐다.
그런 윤씨가 하씨를 만난 것은 지난해 12월.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원하던 윤씨의 고민과, 아들의 학비와 노후생활자금을 걱정해야 하는 하씨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평소 윤씨의 고민을 잘 알고 있던 ‘문 여사’와 하씨의 친구 이정수씨(가명겳?가 만남의 다리를 놓았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의 만남을 통해 윤씨와 하씨는 서로의 조건을 어느 정도 확인했다. 일단 윤씨는 하씨에게 ‘아들을 출산할 경우 그 대가로 1억원을 주겠다’는 것을 약속했다. 임신 이후 출산할 때까지 안정적으로 출산에 전념할 수 있도록 거주할 집과 매달 1백20만원 가량의 생활비 지원도 약속했다고 한다.
그 다음 절차로 두 사람은 지난 1월9일 제주도내 M산부인과의원을 찾았다. 하씨가 정상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윤씨로서는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가야만 했던 나름대로의 ‘아픈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4년 전, 아들에 대한 열망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윤씨는 아내의 동의 아래 ‘첩’을 두기로 했다. 생판 남의 피붙이인 양자를 데려다 키우는 것보다 절반이라도 남편의 피가 섞여 있는 게 낫다는 부인의 트인(?) 생각 덕분이었다.
적당한 상대를 물색하던 윤씨는 남편과 사별한 채 홀로 살고 있던 A씨(47)를 만났다. 결혼 시절 ‘임신이 너무 잘 돼서 귀찮을 정도였다’던 그녀는 ‘씨받이’로 적임자인 듯 보였다. 그런데 첩으로 들어온 지 3∼4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제서야 윤씨는 A씨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병원측으로부터 ‘A씨의 자궁에 문제가 있어 난자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 것은 그때였다. 결혼 시절 임신중절 수술을 몇 차례 했던 것이 문제였다. 첩을 들였던 것은 그렇게 실패했다.
윤씨의 지시로 M산부인과를 찾은 하씨는 먼저 일명 ‘루프’라고 불리는 피임기구를 제거한 뒤 혈액검사와 초음파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마치고 병원을 나온 하씨에게 윤씨는 다시 I의원을 찾아갈 것을 ‘지시’했다. 이곳에서 자궁촬영검사 결과, 의사는 “자궁이 깨끗하고 나팔관 조직도 막히지 않아 임신하는 데 아무 걱정할 것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M산부인과의 검사 결과. 첫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던지 사흘 뒤 윤씨는 하씨에게 2차 검사를 요구했다. 하씨의 주장에 따르면 다시 M산부인과를 다녀온 그녀에게 윤씨는 ‘호르몬 수치가 높아서 시험관 수정밖에 안 될 것 같다,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치료를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윤씨가 호르몬 분비 억제제 U정을 주며 하루 한 알씩 먹으라고 했다는 것.
<< 남자에겐 두번째 씨받이 >>
윤씨의 마음이 흔들리는 징후가 포착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 하씨는 이때 윤씨가 ‘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한 뒤 ‘잘 해보자. 노력해 보다가 안 되면 시험관 수정이라도 해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하씨 역시 동의했다고. 그 뒤 윤씨의 연락을 기다리던 하씨는 지난 2월20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게 된다.“본인의 처가 당신이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 싫다고 하오. 또 본인의 첩이 아이를 낳아보겠다고 하니 미안하지만 이 일은 중단해야겠소. 나중에라도 당신이 입은 경제적 손실은 보상해주겠소.”
이 편지를 받고 화가 치밀어 오른 하씨는 그 길로 윤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매번 차일피일 약속을 미루던 그는 지난 4월이 돼서야 나타나 ‘2백만원을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씨받이 계약’을 위해 여러 차례 병원진료를 받고 약까지 복용하다 이같은 사실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등 인격적으로 심한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하씨에게는 어림없는 금액. 이에 그녀는 아예 ‘계약액’ 1억원 전부와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상할 것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피고소인 윤씨의 주장은 하씨의 얘기와 엇갈리는 부분이 적지 않다흔치 않은 ‘씨받이 계약’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윤씨와 하씨. 과연 법원은 두 사람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