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법안 쪼개고 토씨 바꾸고… 양은 급증 질은 ‘뚝뚝’
국회 법사위 사무실에 쌓여있는 계류법안을 관계자가 들여다 보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국회사무처는 지난 12월 15일 ‘의원 입법 지원 효율화 방안 마련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2000년 개원한 16대 국회 이후 법안 발의 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처리 속도는 자꾸 늦춰지고 있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현재 19대 국회 법안 가결 비율은 11% 수준으로 18대 국회 당시 가결률(16.9%)보다 5%포인트 이상 낮다. 17대 국회(25.6%), 16대 국회(37.8%), 15대 국회(57.4%) 등과 비교해 보더라도 해를 거듭할수록 국회의 법안처리의 효율성은 점점 뒤떨어지고 있다.
이날 세미나 참가자들은 국회의원들의 입법 활동에 대한 성토를 쏟아내기도 했다. 손병권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는 “단순히 입법 발의 건수로 정량평가를 하니 질적으로 외화내빈”이라며 “초선 비례대표일수록 법안 발의 수가 많은데 법안을 통해 부족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하나의 법안을 시차만 달리 해 발의하는 쪼개기나 한문을 한글로 고치는 등 자구 체계만 바꾸는 법안을 20~30개씩 발의하는 것도 의원들이 정량평가를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세미나를 준비했던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골치가 아프다”며 “글자 몇 개 바꿔서 개정안 쏟아낸다는 수준의 비판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해 놓고 이후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올해 정기국회 때만 발의 건수가 1300건(전체 10%)이다. 쿼터제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라고 비판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본회의가 열리는 날이면 법안들이 뭉텅이로 통과되는 풍경도 반복되고 있다. 지난 9일 열린 본회의에서 138건의 법안을 처리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3시간 47분, 1건당 1분 39초에 불과했다. 본회의 상정 법안들은 각 상임위에서 충분한 검토를 거친 후 올라온다고 감안하더라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중론이다. 올해 많은 비판이 제기됐던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의 경우에도 본회의 당시 심각한 우려를 표한 의원은 없었고 대부분 찬성표를 던졌다.
현재까지 가장 왕성한 입법 활동을 보인 개별 의원들의 성적표에서도 낙관적 수치를 발견하기 어렵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입법왕’으로 꼽혔던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은 이번 국회에서도 총 197건으로 가장 많은 법안을 발의해 놓았다. 그러나 이중 원안·수정가결 건수는 15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국회 계류 중이거나 (대안반영)폐기됐다. 총 178건을 발의한 김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가결 법안이 15건으로, 가결률 10%를 넘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재선 의원은 “국회의원이 법안을 많이 내는 것 자체를 시비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도 “법안을 보면 1년을 꼬박 준비한 것도 있지만 하루 만에 뚝딱 완성되는 것들도 있다. 본회의 때 내용을 충분히 숙지할 시간이 없는 것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