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갖은 협박에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남편이 빼든 카드가 바로 13년 전의 한 사건. 당시 아내는 아홉 살 난 아들을 ‘훈계’하다 그만 숨지게 하고 말았다.아내가 끝내 재결합을 거부하자 남편은 13년 전 사건을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남편의 의도와 달리 경찰의 조사결과는 공교롭게도 공소시효 만료로 인한 처벌 불가. 현행법상 폭행치사는 공소시효 7년을 적용받는다. 만약 살인 의도가 있었을 경우 공소시효는 15년. 당시 부인의 행위가 직접적인 사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었다.복잡한 실타래처럼 엉켜 버린 한 40대 이혼 부부의 기구한 사연을 추적했다.
어려서부터 아이는 유명한 ‘악동’이었다. 어른들의 말을 안 듣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손버릇이 좋지 않은 것이 더 문제였다. 어머니 지갑에서 돈을 훔쳐 오락실을 다녔고, 학교에서는 잘 사는 집 아이들의 물건 훔치기를 즐겼다고 한다.
오죽하면 담임교사가 “아이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특수학교 같은 곳으로 옮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부모에게 사정을 했을 정도. 아이는 어른이 잘못을 꾸짖을 때는 수굿이 듣고 있다가도 감시가 조금만 소홀해지면 그대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다.
그날도 아이는 방과 후 오락실로 달려갔다. 어머니가 붙잡아서 벌을 세운 뒤 외출하자 아이는 또다시 오락실로 향했다. 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에게 다시 붙잡히게 되지만. 저녁 찬거리를 위해서 시장에 가야 했던 어머니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아이의 양손과 양발을 각각 앞으로 모아 묶어 놓은 것. 어머니는 홧김에 아들 위에 이불까지 덮어 놓고 집을 나섰다. 그때가 1989년 3월8일 오후 7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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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어머니는 아이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향했지만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이미 싸늘히 식은 뒤였다. 사인은 호흡곤란으로 인한 심장마비.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택시를 운전하던 남편의 회사 앞에 찾아가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이윽고 운행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자초지종을 전해듣고선 “아이는 또 낳으면 되니 잊어버리라”며 오히려 아내를 위로했다. 남편이 동사무소에 신고한 사인도 단순한 ‘심장마비’였다. 지방의 한 도시에서 벌어졌던 13년 전의 악몽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이 일이 거의 잊혀졌을 무렵 이들 부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남편이 일을 저질렀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아내는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남편이 야간운행을 하는 날에는 부부의 출퇴근이 서로 엇갈리게 마련.
아내가 집을 비울 때면 남편은 당시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딸을 성폭행했다. 아버지의 계속되는 성폭행을 견디지 못한 딸은 급기야 이 일을 어머니에게 하소연하기에 이른다. ‘살아보겠다고 식당일을 다니고 있는데 남편이란 작자가 집에서 그런 짓이나 하는 것’에 억장이 무너진 아내는 경찰에 남편을 고소했다.
결국 남편은 이 일로 인해 구속됐고, 그 직후 아내가 이혼소송을 제기해 둘은 법적으로 갈라서게 된다. 경찰에 따르면 이혼한 뒤에도 부인은 “그 남자는 내가 아니면 돌봐줄 사람도 없는 인간”이라며 매달 면회를 가서 영치금을 넣어주는 등 한동안 옥바라지를 해왔다고 한다.
이쯤에서 끝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인연은 뜻밖에도 모질었다. 2년 전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남편이 아내에게 재결합을 요구한 것. 당시 아내는 이미 다른 남자와 동거생활을 시작한 뒤였다. 아내로서는 재결합을 하고 싶지도, 또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게다가 인연이 더 이어지려고 그랬는지 그에게는 자신이 구속되기 직전 아내가 낳았던 다섯 살 난 사내아이까지 딸려 있었다. 그가 수감된 뒤에는 할머니가 아이를 양육했지만 출감 이후 다시 그가 키우게 된 것. 이 때문에 그는 수시로 부인을 찾아다니면서 ‘네가 낳은 자식이니 네가 와서 키워라’며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심지어 부인이 사는 집까지 찾아가 동거남의 이빨을 부러뜨리기도 했다.그럼에도 부인이 재결합을 완강히 거부하자 그는 결국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13년 전 저세상으로 떠난 아들을 미끼로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그 일’을 가슴 속에 그대로 묻어두고 있던 아내는 오히려 “차라리 내가 지은 죄값이라면 달게 받겠다”며 응수했다.결국 지난 7월21일 새벽, 술기운에 파출소를 찾아간 남편은 13년 전 그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결과는 남편의 예상과 달리 공소시효 만료로 인한 불구속입건 처리.
살해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훈계 과정에서 벌어진 우연한 사고였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었다.이들 이혼 부부의 사건을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남편이) 택시운전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는 입장은 이해되지만,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고소까지 한 남편은 참 모진 사람”이라며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