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모임이 ‘깃발’ 들면 호남·비노가 ‘화답’
지난 12월 24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들은 “새롭고 제대로 된 정치세력의 건설에 함께 앞장서자”고 정치권에 촉구했다. 연합뉴스
국민모임 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때 집권세력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원죄를 안고 있을 뿐 아니라 여당의 독주를 막고 국민의 생존권을 지킬 의지와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며 “기득권을 버리고 당적·계파와 소속을 넘어 연대하고 단결해 새롭고 제대로 된 정치세력 건설에 함께 앞장서자”고 역설했다.
관건은 역시 정치권 내부와의 연쇄반응 여부다. 일단 정동영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이 국민모임에 참여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정 고문은 국민모임 기자회견 직후 “지지자들과 상의 후 결정하겠다”며 긍정적 의사를 피력했다.
이를 바라보는 정치권 내부의 시선은 어떨까. 이미 야권 내부에선 신당 창당 내지는 분당과 관련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어왔다. 그 중심은 비노진영, 특히 호남이 중심이었다.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박주선 새정치연합 의원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호남정치의 복원’ 등을 명목으로 신당 가능성을 언급했다. 천정배 상임고문도 얼마 전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뜻을 함께하는 많은 정치인들, 또 정치권 밖에 있는 분들과 제가 한 번 힘껏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0월, 비노진영의 이러한 움직임을 현실화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던 이른바 ‘구국구당’ 모임의 좌장격인 정대철 상임고문 역시 공개적으로 일부 친노 강경파 인사를 비판하며 신당 창당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정치권 물밑에선 이보다 더 과감하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다. 바로 ‘제3지대론’이다. 본인의 부인에도 비노진영의 ‘당권카드’로 거론된 김부겸 전 의원을 중심으로 △만약 차기 당권이 문재인 의원에게 간다면 △김 전 의원을 중심으로 대규모 탈당러시가 진행될 것이고 △뜻이 있는 여권 내 비박계 소장파들과 합세해 신당을 창당한다는 시나리오다. 여기엔 대권주자인 안철수 의원과 김한길 전 대표가 합세할 가능성도 동시에 제기됐다.
일단 국민모임이 추진하는 신당 창당 움직임에 대해 정치권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물음표’에 가깝다. 한 정치평론가는 “처음으로 신당 창당을 현실적으로 구체화한 움직임이라는 데 의미가 있지만, 그 발원지가 정치권 밖 시민사회 세력이라는 점은 분명한 한계”라며 “이전 문성근 전 최고위원의 ‘100만 민란’과 박세일 서울대 교수의 ‘국민생각’ 모두 적절한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실패했다. 더군다나 애초 이번 모임에 함께하기로 한 무게감 있는 인사들 일부가 명단에서 빠졌다. 파급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합류를 검토 중인 정동영 고문에 대해서도 그는 “다른 비노진영 인사들이 이에 합류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며 “벌써부터 내부에선 (탈당 후 복당한 정 고문의 과거를 언급하며) 정 고문에 대해 ‘거두어주었더니, 개인을 앞세워 나간다’는 부정적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문제는 명분이다. 논의와 액션은 천지차이다. ‘문재인 의원과 친노세력이 집권하면 함께할 수 없다’는 명분은 여론에 절대 먹혀들지 않는다. 이러한 명분 자체가 외부엔 계파갈등의 소지로 비칠 것이다. 이것 이상의 명분을 찾아야 하지만 쉽지 않다. 또 한 가지는 시기다. 가장 큰 문제는 아직 총선이 1년도 더 남았다는 것이다. 창당의 에너지원을 모으기엔 너무 이르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 가능성에 대한 논의 자체가 곧장 수면 아래로 가라앉진 않을 전망이다. 비노진영으로서는 결국 친노진영에 대한 하나의 ‘압박 수단’으로서 사용할 공산이 크다. 현재 비노진영의 유력 당권주자인 박지원 의원 역시 호남발 신당 창당 논의에 대해 실제 동의하진 않으면서도 줄곧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반복해 언급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러한 박 의원을 두고 (친노진영에 대한) ‘의도적인 압박 아니냐’는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앞서의 평론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여권에도 계파갈등이 있다. 주류진영에 대해 비주류 진영이 왜 불만이 없겠나. 그럼에도 분당 얘기는 없다. 당 지지율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 뒤엔 박근혜라는 리더십이 뒷받침되고 있다. 이것이 야권과의 결정적인 차이다. 현재 바닥을 기고 있는 야권의 지지율이라면 신당 창당에 대한 얘기는 차기 대권까지 계속될 것이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지지율 15%가 깨지긴 쉽지 않겠지만, 현재의 저조한 지지율 자체가 친노진영 흔들기의 명분이 될 것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