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병 속에 팥 대신 ‘금은보화’가 빼곡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반부패 운동’의 칼날을 빼들었다. 2014년 3월 1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2차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시진핑이 새 국가주석으로 호명되자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AP/연합뉴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중국인들 사이에서 부패가 만연한 이유에 대해 영국의 방송 BBC는 “럭셔리에 대한 열망이 부패를 부추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부패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몰락한 ‘신4인방’이 여러 경로를 통해 수수한 뇌물 역시 가히 천문학적이었다. 가령 가장 최근 체포된 링지화가 권력을 통해 쌓은 부의 규모는 저우융캉의 1000억 위안(약 18조 원)보다 더 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가 그동안 은닉한 황금, 서화, 골동품이 트럭 여섯 대 분량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신화통신 기자 출신의 투자회사 대표이자 링 부장의 동생인 링완청은 “많은 관리들이 형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공직에 오르거나 또는 승진했다”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링 부장의 재산을 관리해왔던 링완청은 부패 혐의로 체포된 후 조사받는 과정에서 링 부장이 뇌물을 숨겨둔 산시성의 비밀 장소를 자백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12년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링 부장의 아들인 링구가 몰던 10억 원대의 페라리 스포츠카 역시 뇌물을 통해 구입했거나 혹은 선물 받은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이밖에 쉬차이허우의 비밀 지하창고에서는 뇌물로 추정되는 현금 1톤과 함께 보물 200㎏이 발견됐는가 하면, 보시라이는 총 2179만 587위안(약 40억 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쉬밍 다롄스더 그룹 회장으로부터 여대생부터 여배우까지 100여 명의 여성을 성상납 받았다는 사실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다. 이처럼 뇌물을 주고받는 관례는 비단 공산당 고위급 관리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중국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내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이니스 이코노믹 위클리>에 따르면 중국의 선물 사업 규모는 연간 약 8000억 위안(약 141조 6000억 원)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선호하는 뇌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먼저 ‘월병’이 있다. 중국에서는 설 다음으로 최대의 명절인 ‘중추절’에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 ‘월병’을 나눠먹는 풍습이 있다. 하지만 ‘월병’이 단순히 정을 나누기 위한 선물이 아닌 뇌물로써 제공될 때 문제는 달라진다. 문제는 ‘월병’ 안에 든 내용물에 있다.
고가의 술 역시 인기 있는 선물 품목이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은 술은 ‘마오타이주’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에서 ‘마오타이주’의 인기를 쫓아오는 술은 없다. ‘마오타이주’의 가격이 정점을 찍었던 것은 지난 2011년이었다. 당시 어떤 곳에서는 500㎖ 병 하나가 2300위안(약 40만 원)에 판매되기도 했었다.
이에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마오타이주를 사는 사람은 마오타이주를 안 마신다. 마오타이주를 마시는 사람은 마오타이주를 산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 그만큼 ‘마오타이주’는 대개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저우주겡 역시 인터넷을 통해 고가의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과 명품 시계를 차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면서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당시 그가 차고 있었던 시계는 10만 위안(약 1700만 원)가량의 ‘바쉐론 콘스탄틴’이었으며, 이밖에 ‘롤렉스’ 등 여러 개의 명품 시계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저우주겡의 연봉은 4만~6만 위안(약 700만~1000만 원) 정도였다.
중국인들의 명품 브랜드 사랑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 이 가운데 톱 3는 루이비통, 샤넬, 구찌다. 이 셋은 관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물 품목이기도 하다. 2012년 비즈니스 컨설턴트사인 ‘베인 앤 컴퍼니’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전 세계 명품 매출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개는 개인 용도로 구입하지만 선물 용도로 구입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뇌물을 주고받는 관례는 공산당 고위급 관리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내려 있다. 뇌물로 가장 선호하는 품목인 1. 황금월병, 2. 마오타이주, 3. 선불카드, 4. 명품시계.
주택과 땅을 뇌물로 받는 경우도 흔하다. 가령 2013년 베이징의 관리였던 꾸이 아이궈는 총 300만 위안(약 5억 원) 상당의 주택 세 채를 뇌물로 받았다가 발각됐다. 당시 그는 현금 104만 위안(약 1억 8000만 원)도 함께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주택 외에도 토지와 관련된 모든 것-건축, 매매, 실내장식 등-을 둘러싼 부패도 만연하다. 이와 관련, 하이난성의 한 토지 개발자는 “정부 관리의 도움으로 땅을 싸게 매입해서 5000만 위안(약 88억 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면 이 가운데 2000만 위안(약 35억 원) 혹은 그 이상을 뇌물로 지급할 의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안후이성의 다른 토지 개발자는 주택을 건설하기 전에 총 19명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지급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현금은 여전히 가장 손쉬운 뇌물 수단으로 꼽힌다. 하지만 현금보다 더 은밀한 방법은 바로 선불카드다. 특정 금액의 현금이 충전되어 있는 선불카드는 레스토랑, 백화점, 피트니스 클럽 등 다양한 곳에서 이용 가능하다.
선불카드를 이용한 뇌물 제공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중국인민은행은 지난 2011년 선불카드를 발급 받는 사람들의 이름을 반드시 등록하도록 규정을 수정했으며, 특히 1만 위안(약 177만 원) 이상의 선불카드를 구입할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인민일보>가 조사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1년 공산당원 가운데 4만 명이 현금 또는 상품권을 뇌물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총 3억 8600만 위안(약 680억 원)에 해당하는 액수다. 1인당 평균 9650위안(약 170만 원)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베이징 지방당국 징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가장 각광받고 있는 뇌물은 따로 있다. 바로 골동품과 명화다.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데다 현금처럼 너무 노골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익명의 관리의 말에 따르면 직급이 높아질수록 뇌물로 받는 골동품의 양도 늘어난다고 한다.
원저우시의 전 공안국장이었던 왕톈이는 2000년 부패 혐의로 체포될 당시 명화 195점, 자기 23개, 서양 조각품 4점, 오래된 동전 495개, 골동품 도자기 220개 등 박물관 전체를 다 채울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귀중품들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러니 “오늘날의 반부패 담당 관리들은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어야 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직접 예술품을 건네는 것보다 우회적인 방법은 예술품 경매를 통해 ‘돈세탁’을 하는 것이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뇌물을 주고 싶은 사람에게 가짜 혹은 싸구려 예술품 한 점을 선물한다. 그러면 선물을 받은 사람은 이 예술품을 경매에 내놓고, 뇌물 제공자는 경매에 참여해 마치 이 예술품이 진품인 듯 그리고 매우 값비싼 듯 고가에 낙찰을 받는다. 그런 식으로 결국 예술품의 주인은 고액의 현금을 챙기게 되는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이처럼 경매 시장이 돈세탁의 온상이 되고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가짜 예술품들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