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를 퍼트리겠다며 일반 가정집에 협박편지를 보낸 황당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동안 에이즈에 걸린 유흥업소 종사자 여성이 감염 사실을 감춘 채 의도적으로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사례는 있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돈을 요구하며 에이즈를 전파하겠다는 사례는 없었다.
현재 경찰은 편지를 보낸 일당은 실제 에이즈환자이거나 에이즈를 전파하는 게 목적이 아닌 단순 협박 사기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에이즈를 무기로 돈을 요구하는 신종 협박범죄 사건의 내막을 알아본다.
“5백만원을 안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신 가정에 에이즈를 퍼트리겠다.”
지난 12월18일 경기 수원시 조원동 이판세씨(40·가명)는 집 우편함에 들어 있는 한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광고물이겠거니’하며 봉투를 개봉한 그는 내용을 읽고난 뒤 깜짝 놀랐다.
A4 용지 한 장 분량으로 작성된 편지에는 ‘수원 조원동 모 아파트에 모여 사는 에이즈 환자들이다. 치료비가 없으니 약을 살 수 있도록 5백만원을 계좌로 입금해라. 20만∼30만원이라도 좋다. 그렇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에이즈를 전염시키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씨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장난으로 넘길 일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은행 계좌번호까지 적어 놓은 점도 그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씨는 편지가 복사본이 아닌 직접 자필로 작성한 원본임을 눈치채고 더욱 놀랐다. 단순히 무작위로 보낸 협박 편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이 떠오른 것.
이씨는 경찰에 곧바로 편지를 신고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신고를 받고 수사에 들어간 경찰은 이 같은 협박 편지가 조원동 일대 가정집 8곳과 강원도의 한 가정에도 배달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중에는 경기도 교육감 관사도 포함돼 있었다.
편지가 전달된 것으로 알려진 가정은 모두 규모가 큰 단독 주택. 범인은 문패가 달린 제법 큰 집만을 노려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편지를 받은 이씨도 건물 여러 채를 소유한 재력가였다.
경찰은 편지를 받은 9곳 가정의 피해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돈을 보낸 집은 없었다. 경찰은 편지에 적힌 주소지와 은행 계좌를 동시에 추적했다. 일단 편지에 적힌 조원동 아파트는 에이즈 환자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편지를 보낸 범인이 실제 에이즈 환자이거나 정신 이상자가 아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범인들이 협박 전문사기범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의 은행 계좌 추적작업은 쉽지 않았다. 통장 자체가 타인 명의로 개설돼 여러 단계를 거쳐 범인들의 수중에 들어간 탓에 단 한 번의 확인으로는 범인들의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다.
또한 대포 통장 거래가 대포폰(타인 명의 전화), 혹은 여러 PC방의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진 탓에 발신자 위치나 IP추적 작업도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현재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한 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날짜는 12월18일이었지만, 일주일 뒤에야 이 같은 사실을 외부에 알렸을 뿐이다. 경찰은 협박 편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수사 과정 자체가 노출되면 수사에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찰은 현재 편지에 적힌 대포 통장 계좌를 추적해 그 통장을 범인들에게 판 매매자 두 명을 소환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무려 24개의 대포 통장을 만들어 인터넷 등을 통해 개당 7만∼8만원에 판매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이번 에이즈 협박편지와는 직접 연관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통장 은행 CCTV와 동일 수법 전과자들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범인 검거에 나서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협박 편지를 수원 전역으로 뿌렸을 것으로 보고 범인들에게 돈을 준 피해자가 있는지에 대해 수사를 벌이는 한편, 이들의 ‘대포 통장’의 입금 내역을 추적해 또 다른 수법의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이들이 지난 11월 강남 일대 유치원에 협박 편지를 보낸 범인과 동일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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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사 ( 2024.12.15 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