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버 증시분석가이자 케이블TV 진행자로 유명했던 한아무개씨가 절도 등의 혐의로 구속돼 조사받고 있다. | ||
증권가의 스타 증권분석가가 주식투자로 날린 돈을 만회하기 위해 십억원대 강도와 강간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특히 그는 한때 주식투자로 수십억원의 수익을 올리면서 ‘1세대 사이버 증권애널리스트’, ‘개미 투자자의 우상’, ‘주식시장의 보이지 않는 리더’ 등 온갖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스타 증권전문가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게다가 범인은 경찰 조사결과 과거에도 20차례 이상의 강도·강간 범행을 저지른 전과 3범의 흉악범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더욱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지난 9일 용산경찰서 수사관들에 의해 검거된 한아무개씨(44). 이 경찰서 강력반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한씨는 <일요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한 번 달리는 말에 오르자 멈출 수가 없었다.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며 얼굴을 떨구었다.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기구했다. 무일푼의 전과자에서 독학으로 증권 공부를 했고, 투자에 성공하면서 한 때는 십억원대의 재력가로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했던가. 한씨는 지난 2002년 말 투자에 실패하면서 수십억원의 빚을 지고 말았다. 그는 빚을 갚기 위해 지난해부터 강도·강간을 자행했고, 끝내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범행을 시작한 지난해 3월 이후 한씨의 하루하루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였다. 오전에는 강도범, 오후엔 증권전문가였던 것이다. 그의 위험한 이중행각은 정확히 9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현재 밝혀진 한씨의 신분은 그 엽기적 행각만큼이나 모든 것이 미스터리다. 심지어 가족조차 정확한 그의 실체를 모르고 있을 정도다. 그가 자신의 이력이라고 밝힌 C대학 경제학과 출신, D증권 애널리스트 근무 경력도 모두 조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씨가 범죄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대 초반이던 지난 82년부터였다. 한씨의 말대로라면 그는 대학시절부터 강도 행각을 벌인 셈이다. 그의 전과 기록은 강도, 절도 및 강간, 불법포르노 비디오 테이프 복제 등 모두 세 차례였다. 이로 인해 그는 청춘시절의 11년을 어두운 감옥에서 보냈다.
한씨가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사업가로 변신한 것은 96년 10월 출소후 우연히 교육용 비디오 사업에 뛰어들면서부터였다. 운이 따라준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이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한씨는 “증권사에 일하는 선후배도 많았고, 나도 관심이 많아 책을 통해 주식공부도 많이 했다”고 전했다. 한씨의 주식투자는 성공적이었다. 덕분에 그의 재산은 계속 불어나기 시작했다.
돈을 번 그는 지난 97년 중매로 만난 아내 A씨(40)와 결혼했다. 물론 아내에게 자신의 과거는 철저히 숨겼다. 아내 A씨에게는 “사업을 하느라 혼기를 놓쳤다”는 말로 둘러댔다. 결혼 후 아들과 딸을 둔 한씨의 가정은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한씨의 한 가족은 “부인에게도 참 잘했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아빠였다”고 그를 평했다.
한씨는 지난 97년부터 PC통신 하이텔에 ‘하○○’이라는 필명으로 자신의 주식 투자경험기를 쓰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론만 그럴싸하게 떠들어대던 다른 애널리스트와는 달리 자신의 직접적인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현장감 있는 그의 글은 큰 호평을 얻었다. 인터넷의 빠른 전파력 덕택에 그는 온라인의 스타가 됐다.
▲ 이중생활의 폭로가 두려워서였을까. 경찰은 검거 당시 한씨의 격렬한 저항으로 결국 차창을 부수어야만 했다. | ||
한씨를 잘아는 증권 관계자는 “한씨의 경우 IMF 외환위기 이후 투자자들이 주저할 때 대세상승기로의 전환과 상승 주도주를 정확히 예측하고 강력한 매수의견을 내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증권가에서 탁월한 시황분석으로 당시에는 생소했던 ‘사이버 애널리스트’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인물로 소개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98년부터 2000년까지 그의 명성은 각종 언론에 자신의 증시 투자전략과 관련한 인터뷰를 실으면서 하늘을 찔렀다. 자신도 개인투자자로서 수십억원대의 재산을 벌어 재력가로 행세하기도 했다.
그의 질주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2002년 1월에는 투자분석서도 펴냈다. 2001년에는 당시 국내 1위의 인터넷 금융정보 업체 P사에 임원급인 투자사업본부장으로 전격 영입됐다.
P사 관계자는 “영입 당시 한씨는 이미 유명 인사였고 이력서에도 ‘대학을 졸업하고 D증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고 해 의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씨는 P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2002년 8월부터는 아예 경제전문 케이블TV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한씨가 출연했던 케이블TV의 한 관계자는 “한씨는 처음에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출연했다. 순발력도 있고 명쾌한 분석으로 시청자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전격 발탁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씨를 추천한 P사의 공신력을 믿고 한씨를 방송에 출연시켰는데 이런 일을 당하니 황당하다”고 전했다.
이렇듯 남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은 한씨가 몰락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12월. 그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투자자들이 ‘괜찮은 정보가 있다’고 해 그들에게 수십억원을 맡겼으나, 결국 작전세력에 속았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작전세력들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한씨는 “일반인들은 그 세계를 잘 모를 것이다. 난 이미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고 작전세력은 그런 점을 이용했다. 그리고 나도 작전세력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한씨는 본인의 돈과 차입한 돈 등을 모두 날렸다. 이로 인해 그는 수십억원의 빚(일부 언론에서는 10억원대라고 했지만 한씨는 그보다 더 많다고 했다)을 지게 됐다.
궁지에 몰린 한씨에게 내면에 숨겨져 있던 야누스의 또 다른 흉악한 얼굴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잃은 돈을 만회하는 방법은 강·절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범행을 위한 그의 계획은 치밀했다. 그는 지난해 1월 경기 용인시에 있는 집을 나와 혼자 서울 개포동에 10평 규모의 아파트를 임대했다. 이곳을 아지트로 삼아 범행도구를 모으고 장물을 보관했다.
한씨는 청계천 일대와 용산을 돌아다니며 빈집털이용 만능열쇠 꾸러미, 전자만능키, 살상위협용 각종 칼, 대형 절단기, 전자 보석감별기, 전기충격기, 결박용 철사 등의 범행도구를 구입했다.
치밀한 성격의 한씨는 범행대상을 물색한 후 사전답사를 거치는 등 철저히 준비했다. 주로 집이 비어 있는 낮시간을 이용해 복면을 쓰고 역삼동, 한남동, 이태원동 등 고급주택가에 침입했다.
지난해 4월10일에는 역삼동 최아무개씨(여·23)의 집을 전자 만능키로 열고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다. 최씨의 양손과 발을 결박하고 칼로 옷을 찢어 강간하면서 관계를 하는 장면 등 나체사진을 30여 회 촬영하고 “신고하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한 뒤 현금 6만원과 신용카드를 훔쳐 달아났다.
같은해 12월31일에는 이태원동 고아무개씨(남·33) 집의 경보기가 노후화돼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 집에 침입, 고씨를 흉기로 위협하고는 현금과 수표, 보석류 등 2억5천만원을 훔쳤다. 한씨는 보석을 훔칠 때에는 전자 보석감별기를 이용해 진품만 골라 털었다.
한씨는 자신이 훔친 타인의 신분증으로 은행과 증권사에 계좌를 개설했다. 훔친 수표를 돈세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강도 범행을 하는 가운데서도 세탁한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고 개인 투자자문업무도 병행했다. 당시 그는 상담업무로만 이미 월 1천만원 이상의 고정 수입을 벌어들이는 스타였다.
그러나 이렇게 용의주도하던 그의 범행은 곧 꼬리가 잡혔다. 신분추적을 막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이용했지만, 경찰이 이 신분증을 몰래 추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한씨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지난 8일 개포동의 한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려다 긴급 출동한 경찰을 만나고 말았다. 이날 한씨는 출동한 경찰을 격투 끝에 따돌리고 달아났다.
그러나 한씨는 도망가면서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경찰은 가방 안에 있던 통장에서 지문을 채취해 한씨의 정확한 신분을 파악했다. 신분이 드러난 한씨는 이튿 날인 9일 개포동 임대아파트에서 잠복중이던 경찰에 의해 붙잡히고 말았다.
검거 당시 한씨는 자신의 자동차 안에서 나오지 않고 끝까지 저항해 경찰이 야구 방망이 등으로 자동차 유리문을 부수고 검거했다. 한씨를 검거한 용산경찰서 강력반 형사는 “한씨가 힘도 세고 행동이 민첩해 검거과정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며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