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갑자기 한 사내가 회칼을 꺼내더니 다른 사내를 찔렀다. 수차례 칼에 찔린 사내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러나 칼을 든 사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시 차에 오른 사내는 칼에 찔려 쓰러져 있던 사람을 레커차로 짓밟기 시작했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뒤 레커차에 불을 질렀다. 불타는 레커차를 뒤로 하고 사내는 유유히 사라졌다.
▲ 전주 ‘아중리 저수지 살해 사건’ 현장. 모래에 덮혀있는 넓은 피자국이 사건 당시 참혹함을 대변해주고 있다. | ||
이 사건은 이른바 ‘아중리 저수지 살인사건’으로 불리며 전주시 주민들에게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접한 전주 시민들은 범행의 잔혹함에 치를 떨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전주에서는 ‘싸전다리 살인사건’을 비롯한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이 이어져 불안하던 터였다.
다음날 경찰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최아무개씨(23·전주시 우아동)를 체포했다. 죽은 사내는 송아무개씨(24·전주시 산정동)로 이 두 사람은 초등학교·중학교 동창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 사이였다.
무엇이 이 두 사람의 우정을 갈라놓은 것일까.
경찰 조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두 사람의 우정이 깨어진 것은 한 여자를 둘러싼 삼각관계 때문이었다.
이들의 잘못된 만남은 1년6개월 전인 2002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씨는 여자친구 J씨를 처음 만났다. 나레이터 모델을 하고 있었던 J씨(21)는 일거리가 없던 차에 때마침 자신의 친언니가 운영하던 애견센터에서 가게 일을 도와주게 되었다. 이때 우연히 최씨가 가게에 들렀다가 J씨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최씨는 첫눈에 미모의 J씨에게 빠져 들었다. 이후 최씨는 자주 가게에 드나들며 J씨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두 사람은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J씨에 의하면 최씨와 죽은 송씨는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사이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셋이서 어울리게 되었다고 한다. J씨는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최씨가 자주 드나들면서 나중에 두 사람은 동거를 하게 되었다. 최씨는 밤늦게 술을 마시면서 친구인 송씨를 같이 데리고 와 세 사람이 한 방에서 자는 일도 종종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최씨와 J씨의 사이가 조금씩 벌어지게 된 것은 최씨가 J씨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였다. 최씨는 술이 취한 상태에서 J씨와 다툴 때면 손찌검을 했다. 이런 일이 있고나서는 늘 송씨가 J씨를 위로하고 다독거려 주었다. 그러면서 J씨와 송씨 사이에는 애틋한 감정이 싹트게 됐다.
최씨와 J씨의 사이는 점차 벌어져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지난 2월8일 심하게 싸운 두 사람은 마침내 결별을 선언하게 된다. 최씨와 결별하게 된 J씨는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송씨와 사귀게 됐다. J씨에게 은근히 연정을 품고 있었던 송씨로서는 최씨와 J씨가 헤어지자 기회를 만난 것.
그러나 최씨는 J씨를 쉽게 잊지 못했다. 홧김에 헤어지기는 했지만 관계를 예전처럼 되돌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J씨의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J씨와 송씨가 사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씨는 믿었던 J씨와 송씨로부터 동시에 배신을 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가 난 최씨는 송씨에게 “어떻게 친구의 여자친구를 그렇게 빼앗아 갈 수 있느냐”며 다그쳤다. 친한 친구를 앞에 두고 송씨는 뭐라 대답할 지 난감하던 차에 “장난이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며 웃으면서 발뺌을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최씨를 더욱 화나게 할 뿐이었다. 최씨는 2월17일 송씨를 아중리의 한 카페로 불러냈다. 이미 최씨는 낮에 전주의 한 시장에서 회칼 두 개를 구입해 안주머니에 숨기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맥주 18병을 마신 뒤 아중리 저수지로 향했다. 최씨가 송씨에게 조용히 할 말이 있다고 하자 아무것도 모르던 송씨는 순순히 최씨를 따라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최씨는 “J가 나와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만났더라면 순순히 놔줬을 것이다. 오랫동안 믿었던 친구가 내 여자친구를 건드렸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나서 그랬다”며 살인 동기를 털어놨다.
사건을 조사한 전주 중부경찰서의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순수하게 J씨를 사랑한 데 반해 송씨는 만나는 여자도 많고 건달끼가 좀 있어서 장난스럽게 J씨를 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점이 최씨를 더욱 화나게 만들어 결국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이들 관계가 금이 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