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초등학생 실종, 포천 여중생 실종에 이어 연초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이었다. 부천-포천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 역시 실종자가 변사체로 발견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실종됐던 최아무개양(20·D대학 2학년)은 연초에 사건 발생 한 달 만에 2월 초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건 수사에 나선 울산 서부경찰서 수사팀은 사체가 발견된 지 20여 일 만인 지난달 22일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부산 D여고 윤리교사 김아무개씨(40)를 체포했다.
이런 가운데 김 교사는 경찰 진술에서 “최양과 나는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는 사이”라고 진술해 또다른 충격을 주고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고등학교 때부터 최양이 죽기 전까지 3년 동안 서로 진지하게 사랑해왔다는 것.
그러나 그의 이 같은 주장도 두 사람의 관계를 입증해줄 만한 증언이나 목격자가 없는 데다, 최양은 피살되기 전 진지하게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사실 여부는 미궁인 상태.
수사팀에서는 김씨가 일방적으로 최양을 좋아한 나머지 질투로 살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고 있다.
끝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선생님과 제자의 비극적인 관계를 경찰 조사 내용을 토대로 추적해본다.
살해된 최양과 김씨가 처음 만난 것은 최양이 부산 D고교에 입학했던 지난 99년. 당시 김씨는 1학년 윤리과목 교사로 최양을 처음 만나게 됐다.
최양은 학급 반장으로 교사들과 잘 알고 지낼 정도로 모범적인 학생이었다.경찰에 따르면 김 교사는 공부도 잘하고 성실한 최양을 매우 귀여워 했다고 한다. 최양은 애교스런 성격에 교우관계도 좋아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은 편이었다.
최양과 김 교사의 관계는 흔히 여학생과 선생님 간에 있을 수 있는 약간의 스캔들도 없지는 않았다. 김 교사는 최양의 이메일로 “네가 외로워하고 힘들어하면 내 마음도 아프다. 내가 널 많이 아낀다”는 등의 내용을 보내기도 했다. 또 김 교사와 최양이 부산 시내에서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이 학교 친구들에 의해 목격된 적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소문은 흔히 있는 수준이었다. 당시 최양의 같은 반 친구들도 최양과 김씨가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둘 사이가 특별히 남 달랐다고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고 전했다.
최양의 언니도 전화통화에서 “만약 동생이 김 교사와 특별한 사이였다면 내가 알았을 것이다. 나와는 비밀이 없었고 조그만 고민도 상의했다”고 말했다.
최양의 대학 친구들 역시 최양이 보통의 여대생들과 마찬가지로 미팅도 하고 남자 친구도 사귀는 등 평범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친구들에 의하면 가끔 최양은 “아는 오빠가 데리러 온다”며 혼자 모임에서 빠지는 경우가 있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가끔 최양을 데리러 왔다는 남자가 김씨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경찰은 김 교사가 최양이 고교를 졸업한 뒤에도 최양을 계속 만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김 교사의 말대로 두 사람이 깊은 관계를 유지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드러난 게 없는 상황.
유부남인 김 교사는 당초 경찰에서 최양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스승과 제자’라고 주장했다가 나중에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라고 진술하는 등 일관성이 없다고 경찰은 전했다.
김씨가 재직중인 D여고 동료교사는 “김 교사는 평소 학교생활도 성실했고 결근 한 번 없었다.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당혹스러워했다.
또다른 학교 관계자는 “여학생과 남자교사가 친하게 지내는 일은 더러 있지만 어디까지나 스승과 제자 사이다. 그 이상의 관계로 진전되는 것은 본 적이 없다”며 “이 사건으로 학교와 학생들에게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수사관은 “김 교사가 자신의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의 자동차 뒷좌석에 묻어 있는 최양의 혈흔과 최양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달 6일과 7일의 김 교사의 행적이 묘연한 점 등에 미루어 혐의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최양은 지난 1월6일 대전에 사는 최양의 언니에게 전화해 “설날에 가겠다”고 전화한 후 연락이 끊겼으며, 이후 한 달 만인 지난 2월8일 울산 가지산 계곡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최양은 손과 발, 목이 노끈으로 묶여 있는 상태였다.
경찰은 최양 주변을 상대로 수사한 결과 용의자 김 교사와 최근까지 연락을 주고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김 교사를 추궁한 끝에 혐의를 확정했다.
또 김 교사의 승용차 뒷좌석에 손바닥 크기의 혈흔이 발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숨진 최양의 유전자와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부검결과 최양은 질식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가 최양을 목졸라 죽이고 사체를 유기할 목적으로 최양의 시체를 승용차 뒷좌석에 싣고 다니다 혈흔이 묻은 것으로 보인다”며 “혈흔은 김씨가 최양을 살해하기 전 폭력을 가해 입이나 코 부위에서 출혈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 수사관계자는 “김 교사와 최양이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사과정에서도 김 교사가 최양에 대해 매우 강한 집착을 보였다. 가정까지 있는 사람이 어쩌다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안타깝다”며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