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장애물 돌파, 고속질주 계속된다
이르면 다음달부터 순정품에 비해 가격이 절반가량 싼 대만산 자동차 대체부품을 수입차 수리에 사용할 수 있게돼 수입차 A/S 관련 소비자 불만이 다소 해소될 전망이다. 사진은 ‘2011 서울모터쇼’ 프레스데이 행사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금도 빠른 편이지만 그나마 수입차의 도전 속도를 늦추는 것은 국산차들의 선전 때문이 아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수입차 구매를 가장 망설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AS 문제다. 특히 과다한 수리비는 국산차들의 체면을 살려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부품을 해외에서 가져오다보니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게 되고, 이는 곧장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 보험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수입차 평균 수리비는 276만 원으로 국산차보다 2.9배 많았다.
수리 받는 데 필요한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렌트비 등 부대비용도 늘어났다. 수입차 평균 수리비 가운데 차량 렌트비가 차지하는 금액은 130만 원으로 국산차의 3.3배에 이른다. 수입차 수리건수 가운데 수리비보다 렌트비가 더 많이 나온 경우도 2009년 대비 3.2배 급증한 3만 5000여 건이나 됐다.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이 공개한 손해보험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벤츠·BMW·아우디·폴크스바겐 차량 평균 수리일수는 6~10일에 이르렀다. 국산차 평균(4.3일)을 훌쩍 넘어섰다. 같은 해 수입차에 지급된 자동차 보험금은 총 1조 673억 원으로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했다. 2009년(4774억 원) 대비 2.2배 증가한 액수다.
수입차 등록 대수 100만 대가 넘었고 판매 상승 분위기를 파악한 수입차 업체는 해결 방안 마련에 고심하기 시작했다. 수입차 업체는 부품 물류센터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부품 물류센터는 수입차의 신속한 수리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고 이는 장기간 수리로 발생하는 렌터카 비용 등도 획기적으로 줄일 것으로 기대했다.
부품 가격도 내려간다. 이르면 다음 달부터 순정품에 비해 가격이 절반가량 저렴한 대만산 대체부품을 수입차 수리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한국자동차부품협회는 5일 “범퍼와 보닛, 펜더, 문짝, 트렁크 덮개 등 40개 대체부품 인증기준이 마련돼 이르면 2월쯤 성능시험을 거친 수입차 대체부품을 대형정비업소나 카센터 등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대체부품은 완성차를 생산할 때 사용하는 부품은 아니지만 순정품과 품질과 성능이 비슷하다. 가격은 순정품에 비해 30~50% 저렴하다. 따라서 이 대체부품을 활용하면 수리비용이 훨씬 저렴해진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차 평균 부품비는 201만 원으로 국산차 43만 원의 4.7배나 됐다. 대체부품을 쓰면 이를 절반쯤으로 낮출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성능시험에 들어가는 대체부품은 대만 중견 부품업체 동양실업(TYG)에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는 미국 포드와 혼다, 도요타 등 세계 자동차 업체에 범퍼와 보닛, 라이에이터그릴, 몰딩류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인증을 받았으며, 완성차 업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전체 물량의 50%, 나머지는 자사 브랜드로 대체부품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미국은 1987년부터 대체부품 활성화에 나섰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대체부품을 썼다는 이유로 보증수리를 거부할 수 없도록 법에 명문화했다. 대체부품 인증은 비영리 독립기관인 미국자동차부품협회(CAPA)에서 전담한다. 이 협회는 정비공장, 부품유통업계, 보험업계, 소비자단체로 구성돼 있다. 인증 대상 품목은 충돌 사고 시 손상 빈도가 높아 수리비에 영향을 많이 주는 부품과 안전에 직접적 영향이 적은 부품(펜더, 범퍼커버, 램프 등)이다.
지난 1993년부터 2012년까지 약 5160만 개의 인증부품이 사용됐다. 순정부품 대비 가격은 약 50~80%선이다. 대체부품 사용으로 순정품 가격 또한 약 30%가량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부품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인식도 많이 개선돼 불만 접수 건수도 거의 없다. 사용부품 건수의 0.035%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 독일은 각국 인증기관이 연합해 2001년부터 대체부품 인증제도를 운영한다. 영국 자동차연구기관 태참(Thatcham)과 독일 차량정기검사협회(TUV)는 공동으로 자체 관리 규정에 따라 대체부품을 인증한다. 앞뒤 범퍼커버부터 범퍼몰딩, 범퍼그릴, 보닛, 펜더 등 차체 패널류와 플라스틱부품(외장부품)이 그 대상이다. 대체부품 제조업체는 10여 군데 있으며, 600여 개 부품이 인증을 받았다.
일본의 대체부품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부터 비영리단체 일본자동차부품협회(JAPA)가 자동차부품에 대한 품질평가와 인증을 실시하고 있다. 주로 소모성 부품을 인증한다. 자체 품질 기준에 의해 인증된 부품은 ‘우량부품(Superior Parts)’으로 선정된다. 우량부품은 순정품 가격 대비 약 60~70%선에서 거래된다.
이렇듯 수입차 업계의 시장 도전은 거세지만 한국 완성차 업계의 대체부품 생산은 여전히 막혀 있다. ‘디자인보호법’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차량 외형 디자인과 부품 디자인에 대해 의장특허를 신청하고 있다. 반면 수입차의 경우 디자인보호법이 적용되지 않아 대체부품 사용이 가능하다. 이제 더 이상 국산차=애국자, 수입차=매국노라는 등식은 없다. 국내 자동차 업체는 아차 하는 순간 점유율이 역전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