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취월장 ‘문라이트’ “룸메이트 덕분이죠”
#‘우승 청부사’ 이효희 & ‘토스의 달인’을 꿈꾸는 조송화
지난 3시즌 9득점에 불과했던 문정원(오른쪽)이 올 시즌 17경기에 출전, 163득점을 올려 서브퀸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정원은 이 모든 게 룸메이트 이효희(왼쪽)의 조언 덕이라며 공을 돌렸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2013-2014 시즌이 끝나고 세 번째 FA자격을 얻은 이효희는 지난해 5월 센터 정대영과 함께 도로공사로 이적했다. 창단 후 지금까지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도로공사는 두 명의 FA 대어를 영입하면서 올 시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오랜 기간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팀 합류가 늦어졌다. 손발을 맞출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그로 인해 시즌 초반에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도로공사에는 평소 친하게 지냈던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적응하기도 어렵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았고, 성적에 대한 부담은 크고…,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효희는 도로공사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우승 청부사’란 타이틀이 그때처럼 무거운 짐으로 다가온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효희는 이효희였다. 베테랑 세터가 안정을 찾자, 도로공사의 공격수 니콜, 문정원 등은 빠르게 ‘합’을 맞춰 나갔다. 도로공사는 최근 5연승을 질주하며 기업은행, 현대건설과 치열한 선두 싸움을 벌이고 있고, 이효희는 현재 세트당 10.313개의 토스를 기록하며 세트 1위에 올랐다.
1980년생인 이효희에게 결혼 얘기를 꺼냈더니, 그는 “배구랑 결혼했다”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어렸을 때는 빨리 결혼하고 싶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 지내는 게 편하다는 것.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한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귀띔하면서.
세터는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어도 칭찬받을 일이 거의 없고 조직력이 흔들리면 가장 먼저 욕을 먹는 외로운 포지션이다. 흥국생명의 세터 조송화(22)도 세터의 숙명에 대해 깊은 공감을 나타냈다.
“원래는 공격수로 뛰다가 고1부터 세터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됐다. 세터는 잘되면 묻히고, 못하면 가장 지적을 많이 받는 포지션이다. 김사니 선배의 백업 멤버로 뛰다가 언니가 아제르바이잔리그로 이적하면서 갑자기 주전 세터가 됐고, 내가 주전이 된 해에 우리 팀이 꼴찌로 내려앉았다. 여섯 팀 중 세터로는 최연소인 나는 숱한 비난을 들었고, 나락까지 떨어졌다가 지난 5월 흥국생명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박미희 감독을 만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다.”
조송화
“처음에는 사니 언니의 공백이 엄청 크게 느껴졌다. 내가 뭘 해도 사니 언니랑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외국인 선수로 인해 마음고생도 많았다. 모든 원인을 내게로 돌리는 바람에 크고 작은 상처가 있었다. 올해는 뭘 해도 마음이 편하다. 욕을 먹어도 조금 뻔뻔해지도록 노력했다. 나이 어린 세터이지만, 모든 선수들이 내 사인을 믿고 따라줄 때 짜릿한 희열도 느낀다. 무엇보다 감독님으로부터 신뢰받고 있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더욱 커졌다.”
요즘 조송화의 고민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고민을 얘기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는 다시 배구 얘기를 꺼냈다.
“‘토스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다. 그리고 실수가 일어났을 때 표정의 변화 없이 웃으면서 선수들을 이끌어가는 법에 대해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부상 없이 시즌 마지막까지 선수들과 함께 뛰고 싶고, 세터 부문 1위에 오르는 게 목표이다.”
#여자배구계의 ‘쌍둥이’ 자매, 제대로 날다!
올 시즌 여자 배구에 신선한 볼거리가 등장했다. 1996년생 쌍둥이 자매가 지난해 9월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입문 후 배구팬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나란히 1, 2순위 지명을 통해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에 입단했고, 신인임에도 눈에 띄는 성적을 보이며 소속팀에서 맹활약 중이다. 흥국생명 레프트로 뛰고 있는 이재영과 현대건설 세터 동생 이다영이 그 주인공.
쌍둥이 자매 동생 이다영(왼쪽)과 언니 이재영. 사진제공=발리볼코리아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수로도 뛴 바 있는 쌍둥이 자매는 유전자부터 남다르다. 부친은 이주형 익산시청 육상팀 감독이고, 모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배구대표팀 세터를 맡았던 김경희 씨다. 특히 이재영은 입단하자마자 흥국생명의 주전 레프트로 활약하면서 신인왕 후보 영순위로 꼽히고 있다. 아직 고교 졸업 전이고, 신인답지 않은 두둑한 배짱과 근성은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으로부터 아낌없는 칭찬을 받게 한다.
“어렸을 때부터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뽑히는 게 목표였다. 그 목표를 책상과 옷장에 붙여 놓았을 만큼 간절한 소원이었는데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잠시 허탈감도 생기더라. 사실 지난해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운동을 못하고 있었고, 프로구단 관계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선보이지 못했다. 잘못하면 밀려날 수 있다고 걱정했는데, 다행이 1순위로 뽑혔다. 재미있는 것은 한 가지 목표를 이루고 나니, 또 다른 목표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다른 생각 안 한다. 흥국생명이 어떻게 하면 상위권에 오를 수 있는지만을 연구하고 노력할 따름이다.”
이재영도 시즌 초반에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기도 했다. 성적이 좋을 때는 모두 칭찬만 하다가 성적이 조금 떨어지니까 기사 댓글들이 악플로 넘쳐났다. 인터넷을 보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기사를 보게 되는 상황들이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엄마는 어차피 겪어야 할 일들이라며 이겨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 힘들었다.”
쌍둥이 자매가 같은 종목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데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엄마 말씀으로는 난 농구, 다영이는 배구를 시키려 했다가 아는 분이 쌍둥이는 같은 종목을 할 때 더 자극도 되고 서로 발전할 수 있다고 조언해주신 바람에 농구로 갈 뻔했던 길이 배구로 틀어진 것이라고 들었다. 아무래도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특히 난 그 ‘끼’를 주체하지 못했다고 하더라. 초등학교 3학년서부터 배구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배구’ 하면 ‘재미있다’는 것과 연결이 된다.”
이재영은 동생 이다영으로부터 배구에 대한 조언을 많이 듣는 편이라고 말한다.
“다영이가 세터라 내가 공격하는 비디오 영상을 보고 잔소리를 많이 해주는 편이다. 같은 팀이 아니라서 더 냉정하게 분석해주는 것 같다. 만약 둘의 포지션이 같았다면 서로 견제와 질투를 했겠지만, 포지션이 달라 서로를 라이벌로 의식하지 않는다. 난 다영이가 세터 부문에서 1등을 했으면 좋겠고, 난 공격부문에서 1위를 하고 싶다. 지금은 그런 목표를 채울 수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닿을 수 있는 목표라고 믿는다.”
이재영은 인터뷰 말미에 마음 속 깊이 감춰둔 속내를 끄집어냈다. 바로 올림픽 얘기다.
“다영이랑 같이 올림픽 무대에 서보는 게 소원이다. 그리고 한국 여자 배구 하면 ‘쌍둥이’가 떠오를 수 있도록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다. 마지막 소원은 훗날 FA가 됐을 때 다영이랑 한 팀에서 선수로 뛰는 것이다.”
동생 이다영은 언니 이재영의 성장세에 미치지 못하지만, 주장 염혜선의 백업 멤버로 활약하면서 이재영과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함께 발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배구팬들은 네트를 마주보고 경쟁하는 쌍둥이 자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는 반응이다.
#‘서브의 신’ 문정원&백목화
백목화.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베테랑 세터가 합류하면서 내 경기력도 수직 상승했다. 효희 언니랑 룸메이트를 이루고 있는데, 언니가 방에서도 경기와 관련된 조언을 자주 해준다. 처음에는 12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선배를 모시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언니가 다른 선수와 룸메이트 한다고 할까봐 걱정이다. 언니가 날 제대로 이끌어주고 있다.”
문정원은 인삼공사 백목화와 함께 배구계의 ‘서브 퀸’으로 꼽힌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네트 위를 스치듯 날아가 꽂히는 서브에 상대 수비수들은 속수무책이다. 서브 에이스로 팀 승리를 이끄는 역할을 하면서 문정원의 기량은 급상승세를 탔다.
2007년 현대건설에 입단 후 2008년 KT&G(인삼공사)로 이적 후 레프트 공격수로 활약 중인 백목화는 문정원의 롤 모델이다.
“정원이랑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당시 친분은 깊지 않았지만, 프로 생활하면서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다. 정원이도 나도 1라운드가 아닌 2라운드에 지명됐고, 둘 다 서브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신선한 긴장감을 주고받는다. 올 시즌 내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정원이가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다. 정원이의 서브는 도통 어디로 향할지 모르겠고, 그걸 받아내기도 만만치가 않다.”
백목화는 2년 전 V리그 시상식에서 ‘기량발전상’을 수상했다. 올 시즌 기량발전상의 유력한 후보는 단연코 문정원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V리그 ‘최고 얼짱’ 곽유화 인터뷰 얼굴만 보면 앙돼요~ 2011년 도로공사 배구단에 입단한 곽유화는 올 시즌을 앞두고 흥국생명으로 팀을 옮겼다. ‘미녀군단’에 진짜 ‘미녀’가 합류한 셈이다. 배구 팬들 사이에서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 같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뛰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곽유화는 팀을 옮기면서 보이지 않는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 놓는다. 2014-2015 V리그 2R 흥국 VS 현대 경기에서 곽유화가 조송화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2013-2014시즌 종료 후 도로공사가 FA로 이효희 언니를 영입했고, 보상선수로 기업은행에 지명됐다가 기업은행이 흥국생명의 김사니 언니를 영입하는 바람에 흥국생명에서 도로공사에 지명된 나를 받은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리저리 ‘팔려가는’ 듯한 느낌에 슬픈 감정이 북받쳤다. 하지만 주위에서 ‘팔려간 것’이 아니라 ‘선택받아 간 것’이라고 위로와 조언을 해줘서 조금씩 슬픈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곽유화는 어느새 프로배구 4년차에 접어들었다. 흥국생명 입단 후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얼굴이 좋아졌다’는 반응이었다고. “핑크색이 잘 어울린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구 실력이 많이 는 것 같다. 쌍둥이 (이)재영이가 공격형, 난 수비형이라서 상황에 따라 투입되는데, 재영이의 성장세를 보면서 더 자극을 받는 부분도 있다.” 곽유화는 얼굴이 예쁜 선수로 알려진 반면, 성적이 좋지 못할 때는 오히려 두세 배 이상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런 반응들이 억울하기도 했지만, 생긴 것과 실력이 함께 가지 못하는 건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배구를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삼고 심기일전하고 있는 중이다.” 곽유화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팬들의 반응 때문에 있는 ‘남친’이 없다고 부정하기는 싫었다고. 올시즌에는 새로운 팀에서 ‘얼굴도 예쁜 선수가 배구도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