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유령도시… ‘세베리아’ 봄날 올랑가몰라~
세종시에서 만난 정부부처 직원들의 말이다. ‘시베리아’와의 합성어가 별명으로 붙었을 만큼 아무것도 없던 이곳에 상점들이 드문드문 들어서고 있다. 2012년 첫 번째로 내려온 국무총리실 등의 공무원들은 감격스럽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말 마지막으로 짐을 꾸려 내려온 우정본부, 국세청 등의 직원들은 다시 ‘멘붕’에 빠졌다. 여전히 서울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유독 차가웠던 지난 7일, 이른 아침부터 세베리아 곳곳을 둘러봤다.
텅텅 빈 도담동의 상가 건물들. 그나마 상점은 꽤 들어섰지만 생활기반시설은 열악한 수준이다.
오송역에 8시 4분 열차가 들어오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출근까진 시간이 상당히 남았지만 사람들은 뛰었다. 이들이 향한 곳은 오송역과 세종청사를 오가는 셔틀버스다. 자리를 잡지 못했다간 20분 가까이 서서 버스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만 3년이 다 됐지만 여전히 상당수 공무원들이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서울-세종시 간 셔틀버스는 매일 만원이다. 이를 깨끗이 포기한 ‘KTX족’도 많았다.
한 정부부처에서 일하는 최 아무개 씨(34)는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여전히 절반 이상이다. 눈이 많이 오거나, 폭우가 쏟아질 때 집단 지각사태는 이제 특별한 일도 아니다. 세종시 정착을 위해 서울-세종시 간 셔틀버스를 단계적으로 줄이고는 있지만 이사할 마음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만 3년이 됐지만 세종시가 ‘세베리아’라는 딱지를 떼지 못 하는 데는 공무원들의 낮은 정착률이 한 몫 한다. 서울에서 출퇴근 하는 사람, 기러기 엄마·아빠가 상당수라서 기대만큼 빨리 상권이 성장하지 않고 있다. 도담동의 한 편의점 점장은 “혼자 사는 남성이 많아 간편식 종류를 신경 써서 준비한다. 아침·저녁으로 레토르트, 도시락 등을 사가는 중년 남성들이 많다”고 말했다. 버스 안에서 만난 한 40대 남성은 “저녁은 빵집에서 먹을거리를 사서 간단하게 때운다. 외식도 같이 할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1시 40분이 되자 청사 인근에는 식당 이름이 붙은 승합차가 줄지어 섰다. 일정 인원 이상 예약하면 픽업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게 기사들의 설명이었다. ‘카풀’을 해서 식당으로 가는 공무원들도 많았다. 동료를 기다리는 사람, 차량으로 청사 앞은 북적였다. 국토교통부 청사의 한 경비원은 “여전히 다수가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4500원에 한 끼 해결할 수 있고, 맛도 괜찮다. 외부에 식당이 많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물가도 비싸고, 서비스 질도 낮은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국토부 앞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예전엔 가는데 30분, 밥 먹는데 30분, 오는데 30분 걸리는 게 이곳 점심시간이었다”며 “많이 좋아지긴 했다”고 말했다.
청사 옥상정원은 운치가 있지만 가까운 거리의 고층아파트들로 인해 보안상 문제가 있어 보였다.
비싼 건 식대뿐이 아니다. 생필품, 교통비도 오히려 서울보다 비싸다. 대형마트는 세종시에 홈플러스 한 개뿐이다. 경쟁업체가 드문 까닭인지 서울보다 체감물가가 훨씬 비싸다는 게 주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교통비 역시 만만치 않다. 한 공무원은 “택시 기본요금은 서울보다 저렴하지만 미터당 요금은 훨씬 비싼 것 같다. 10분 이동하는데 보통 1만 5000원은 나온다”고 혀를 내둘렀다.
특히 세종시는 여전히 차 없이 다닐 수 없는 곳이다. 한낮에도 택시를 찾긴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정부부처에서 일하는 한 남성은 “차가 있어도 끌고 나올 수가 없다. 내가 차를 가지고 나오면 아내와 아이들의 발이 묶인다. 청사를 오가는 버스는 그나마 노선이 잘 돼 있어 그냥 버스를 타고 다닌다”고 말했다. 앞서의 강 씨는 “우리 사무실은 청사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다. 회사 앞에 오는 버스는 30분에 한 대 간격이고, 그마저도 돌아가는 노선이라 차로 20분 갈 거리를 1시간 걸려 간다. 차 없이 살 수야 있겠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니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던 회식자리도 거의 사라졌다. 또 다른 공무원은 “회식을 할 때면 대리 당번을 정한다. 누군가는 운전을 해야 집에 갈 수 있다. 택시도, 대리운전기사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기에 저녁 회식 자리는 밥만 먹고 일어나는 수준이다. 때문에 점심에 회식을 하는 문화도 생겨났다.
기자가 둘러본 세종시는 회식할 곳도 딱히 마땅찮아 보였다. 공무원들이 요즘 ‘뜨는 곳’이라고 추천한 아름동의 상가단지를 들렀으나 ‘도대체 어디가 뜨는 곳인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만큼 별 게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세종시에 사는 이들은 퇴근 후, 주말에 할 일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앞서의 강 씨는 “대형마트 하나가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다. 개점 날 좋아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젊은 미혼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식당, 카페 등이 부족했기에 새로 생긴 대형마트는 ‘단비’같은 존재였다. 마트 안에는 뷔페 식당인 애슐리, ‘삼둥이 만두’로 유명한 프리미엄 김밥집 등이 들어섰다. 강 씨는 “모일 곳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뷔페가 생겨서 정말 좋다. 한 달에 한 번씩 뷔페 가는 모임을 결성할까 생각중이다”며 웃었다.
공무원들이 요즘 뜨는 곳으로 추천한 아름동의 상가단지. 서울 번화가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이런 생활기반시설이 없어 세종시에 정착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가족도 많다. 큰 결심을 하고 이사 왔다가 막상 부딪쳐보니 아직 아이들을 키울 환경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다시 대도시로 가버린다. 한 공무원은 “서울에서 살다가 세종시에 왔다가, 다시 대전으로 넘어가는 가족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사교육 때문이다. 공무원이 할 말은 아니지만 아이들 교육은 포기할 수 없는 문제 아니냐. 학원이 많이 생겼다지만 아무래도 서울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5일 세종에서 근무하고, 주말 2일은 서울로 올라간다. 주말만 되면 세종시는 유령도시다. 한 공무원은 “가끔 피곤하면 세종시에 남기도 한다. 하지만 할 일이 너무 없다. 그나마 국립도서관, 호수공원이 찾을 만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지겨워서 이제 못 하겠다. 오죽하면 회사에서 인근 땅에 텃밭을 만들어 직원들한테 분양을 했는데 경쟁이 그렇게 치열했겠느냐. 모두 정말 할 일이 없어서 이러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혼 직원들보다 더 문제는 미혼남녀들이다. 정부부처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세종시로 내려오면서 헤어진 젊은 직원들도 꽤 된다.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한 사례도 있다”고 귀띔했다. 앞서의 강 씨 역시 “결혼해서 내려와도 찢어지는 판에 미혼남녀가 제대로 만날 수 있겠느냐. 우리 회사에서만도 세 커플이나 깨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인력 유출도 정부 관계 기관에서는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세종시로 근무지가 옮겨왔다고 해서 공무원시험 지원율이 떨어지지 않지만 관계기관은 다르다. 특히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대거 세종시로 내려오면서 고급인력 유입이 떨어지고 있다. 한 연구원에서 일하는 직원은 “세종시로 내려오면서 특히 유능한 박사 인력이 계속 떠나 문제가 심각하다. 복지혜택으로 유인해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예산이 없어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세종시에 내려온 지 만 1년이 됐다는 한 부처 공무원은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있어야 살만한 곳이 될 것 같다. 과천처럼 발전할 거라고 얘기하지만, 과천은 그래도 서울과 가깝지 않느냐. 문화·생활수준이 높은 이들이 억지로 이곳에 정착하려니 계속 말이 나오는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라고만 하는 듯한 정부의 무책임한 지원 대책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라고 토로했다.
세종시=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불편한 청사’ 오명 기재 - 문광부 왕복 40분 “세계 최고 비효율” 비효율적인 청사 구조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 총 길이 3.5㎞의 세계 최대 규모의 공공기관 건축물이지만 세계에서 최고 비효율적일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까지 이동하는데 족히 20분은 걸린다. 왕복 40분이 이동하는 데만 쓰일 정도다. 청사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효율성을 높이려고 각 부처들 세종시에 모아둔 것 아니냐. 차라리 멋은 없을지라도 고층빌딩 몇 동으로 지어서 엘리베이터만 타면 금방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세종청사는 화장실 부족 등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최준필 기자 청사에서 유명한 옥상정원은 갈대가 펼쳐져있어 한겨울임에도 운치가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가 가까운 거리에 있어 보안상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인근 아파트는 모두 고층인 반면 청사는 7층짜리에 불과해 아파트 베란다 창에서 청사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화장실, 주차장 부족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업무효율 문제 역시 개선 정도가 미미하다는 게 공무원들의 평가다. 앞서의 공무원은 “화상회의 빈도는 크게 늘지 않았다. 여전히 국장, 과장들은 서울에 자주 출장을 다닌다. 여기에 산하 공공기관들도 전국으로 흩어져 업무 효율은 더 떨어졌다”며 “근본적으로 업무효율이 개선되려면 국회가 세종시로 내려와야 한다”고 답답해했다. [서] |
원주민들 불만 더 크다 “공무원 위주 인프라 너무해” 세종시 이전으로 불만이 가득한 건 공무원들만이 아니었다. 인근 주민들도 불만이 많긴 마찬가지였다. 공무원들의 생활반경 위주로 인프라가 재편돼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얘기였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길이 바뀌고, 버스 노선도 바뀌면서 못 가게 돼버린 곳들이 늘어났다. 간선도로 위주로만 버스 노선이 짜여서 골목 구석구석까지 운행하던 버스들이 일부 없어졌다”며 언성을 높였다. 인근 부동산 시장이 ‘불패 신화’를 써내려가면서 우선 분양권, 보상금 등을 둘러싸고 주민들 사이의 갈등도 잦아졌다는 게 인근 부동산 업주들의 얘기다. 첫마을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주인은 “‘딱지’로 얻은 수익을 두고 싸우는 형제들이 비일비재하다. 세종청사 영향으로 인근 땅값이 많이 오르면서 순식간에 부자가 된 이들도 있다. 때문에 한 끗 차이로 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집도절도 없는 신세가 돼 주민들 사이에도 갈등이 생겼다”고 말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