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만에 들통난 가출여중생 토막 살인 사건의 용의자들(위). 피해자 김양을 유기한 곳으로 알려진 서울 수서동 광평교 교각 밑. KBS-TV 촬영 | ||
바닥에 누워 있는 친구는 가느다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잠에 깊이 빠진 걸까. 아니었다. 그 친구는 나머지 친구들이 휘두른 주먹과 몽둥이에 맞아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마치 고문을 받은 듯 머리카락도 듬성듬성 잘려나가 있었다. 이성을 상실한 7명의 10대들은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들 자신도 영화 속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겼던 끔찍한 ‘일’을 다시 저지르고야 만다.
“시체를 토막 내 불에 태우는 게 어떨까. 그대로 땅에 묻으면 나중에 발각될 수도 있잖아. 어서 빨리. 여자애들은 바닥에 비닐을 깔고 밖에서 누가 오는지 망을 봐.”
이들 10대들은 친구의 토막 난 사체와 함께 ‘죽음의 비밀’을 태워버리려 했다. 그러나 ‘살인의 추억’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연쇄 살인범 유영철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10여년 전 일어났던 끔찍한 엽기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는 지난 7월22일 토막 살인 사건의 용의자들을 검거해 사건 전모를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건은 유영철이 저지른 일부 범행처럼 시신을 토막 내는 수법이었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아니었다. ‘나홀로’ 저지른 범행도 아니었다. 고의 여부를 떠나 10대 7명이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잔인하게 토막 냈으며, 한술 더 떠 시신을 불에 태워 버리기까지 한 엽기 살인극이었다. 더구나 친구를 저승길로 보낸 이유는 단돈 34만원 때문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발생 당시 이들 7명의 나이는 만으로 16~17세였다. 정상적이라면 고등학교를 다녀야 할 나이. 그러나 이들은 소위 말하는 ‘문제아’였다. 그 중 원아무개씨와 홍아무개씨는 지난 93년 특수 강간 등으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적이 있으며, 유아무개씨도 지난 94년 1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강도상해죄 등으로 징역 2년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전과자’였다.
특히 홍씨와 유씨는 올해 5월 서울 장안동에 근거한 폭력 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검거돼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상태다. 나머지도 일찌감치 학교 다니기를 포기한, 말 그대로 ‘노는’ 아이들이었다.
사건의 시작은 94년 10월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기도 수서와 서울 잠실 부근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이들 10대들은 주로 신천 유흥가 등에서 취객들을 상대로 속칭 ‘아리랑치기’를 하며 생활비와 유흥비를 마련하고 있었다. 사건의 피해자인 김아무개양(당시 15세)이 사건 공범 중 한 명인 홍씨와 안면을 튼 것도 바로 이 즈음이었다.
홍씨는 가정불화 등의 이유로 과천 집에서 가출해 우연히 강남구 수서동 도시개발 아파트 주변을 맴돌던 중 김양과 거리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고, 서로 처지가 비슷해 빠르게 친해졌다. 그 후 홍씨는 김양을 친구들에게 소개했고, 김양은 홍씨의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막역한 사이로 발전했다.
김양에게 예기치 못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이듬해 2월 어느 날. 사건 전날 원씨의 수서동 집에 놀러 간 김양은 원씨와 함께 친구들이 자주 모인다는 ‘아지트’를 찾았다가 참혹한 변을 당했다.
그 아지트는 잠실동 소재 다세대 주택 반지하방으로 이번에 불구속 기소된 남아무개씨(여·26)의 일수방이었다. 남씨는 공범으로 구속된 또 다른 김아무개씨(여·26)와 동거하고 있었다. 이전부터 이들 ‘7인방’은 이 방에서 거의 매일 모이다시피 했다. 피해자 김양까지 합세한 이날도 이튿날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 3시께, 새벽 늦게 잠이 들었던 남씨가 자신의 지갑에서 34만원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면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잠에서 깬 ‘룸메이트’ 김씨까지 지갑에 현금 4만원이 비었다고 소리치자 방 안에는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남씨가 잠시 외출했던 유씨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작은 해프닝 정도로 넘어갈 만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당시 남씨와 사귀고 있던 유씨는 피해자 김양을 추궁하다가 김양이 절취 사실을 부인하자 나머지 6명과 함께 김양을 몰아세우기 시작한 것.
급기야 피해자 김양은 오후 7시 무렵부터 무려 9시간 동안 친구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유씨, 원씨 등은 주먹과 발로 김양의 온몸을 가격했으며, 피해자 김양을 친구들에게 소개해준 홍씨까지 나무 막대기로 피해자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로 수차례 때렸다. 공범으로 불구속 기소된 신아무개씨(여·26)는 가위로 피해자의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했다.
계속된 추궁과 구타로 인한 충격으로 피해자 김양은 의식을 잃었다. 그 상황에서 이들은 ‘김양이 병원에 가다 죽으면 모두 감옥에 간다’는 불안감 때문에 김양을 그대로 방치했다. 김양이 쇳소리 같은 숨소리를 내며 호흡곤란을 일으키자 유씨는 아예 김양의 코와 입을 막기까지 했다. 자신은 이를 부인하고 있으나 경찰 조사에서 나머지 친구들이 이같이 진술했다고 한다. 결국 새벽께 김양은 호흡이 정지됐다.
한동안 묘한 침묵에 빠져 있던 이들은 증거를 없애기로 공모했다. 시신의 흔적을 없애기로 한 것. 원씨와 김씨가 동대문시장 등에서 약초절단기와 비닐 등을 구입했고, 7명은 그것을 이용해 피해자 시신을 훼손했다. 여자들은 집 밖에서 망을 보고 남자 네 명이 돌아가면서 시신을 여섯 토막으로 나눴다. 그리고는 이들은 이튿날 새벽 원씨의 아파트 부근인 서울 수서동 소재 광평교 교각 밑에서 땅에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1시간 동안 태운 뒤 흙으로 덮었다.
그후 이들의 ‘범죄’는 무려 10여년간 드러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 김양의 보호자가 정식으로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하지 않은 탓이었다. 더구나 목격자도 없었기 때문에 최근까지 ‘완전범죄’로 남는 듯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들의 ‘완전하지 못한’ 입 때문에 경찰에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이들이 각자 주변 지인들과의 술자리 등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털어놓은 ‘취중진담’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것. 무의식적으로 내던진 말이 입소문으로 퍼져 경찰의 귀에까지 들어간 셈이다.
경찰이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한 것은 지난 6월 초. 서울 서남부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영등포에서 탐문 수사 도중 ‘과천에 사는 10대 중반 학생이 수서 쪽에서 10년 전에 살해당했다더라’는 소문을 접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 관계자는 “수소문 끝에 6월 중순엔 피해자 이름을 ‘김○○, 김△△’로 압축해낼 수 있었다”라며 “그 뒤로 과천에 거주하면서 두 이름을 가진 78년~80년생 여성들의 주소지와 연락처를 하나씩 파악했다”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과천 소재 초등학교 세 곳, 중학교 네 곳의 학생기록부 등을 뒤져 피해자 이름과 비슷한 이름 30명을 압축해낸 경찰은 그 중 한 명의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실을 확인했다. 부모에게 확인한 결과, 딸이 10년 전 가출해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주민등록 또한 직권말소가 된 상태였다.
경찰은 뒤이어 수서 부근을 탐문 수사하던 중 피해자 김양이 원아무개씨를 만난 이후 행방불명이 됐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6월28일 원씨를 긴급 체포했다.
원씨의 자백을 받은 경찰은 6월29일 새벽 내레이터 도우미인 남씨를 암사동 자택에서 검거하고, 당일 오후 수사진을 부산으로 급파해 심씨와 김씨를 체포했으며, 마지막으로 지난 7월13일 가스업체 종업원으로 일하는 또 다른 원씨(남·27)를 검거했다.
경찰 조사 결과, 원씨와 지난 5월 구속된 유씨와 홍씨는 사건 이후에도 자주 만났으며, 부산에 거주하는 김씨와 신씨도 최근까지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이후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대질신문에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면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을 텐데, 이들은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고개를 숙이고 혐의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뜻밖의 사실이 확인됐다. 바로 비참한 살인을 낳게 한 ‘사라진 34만원’ 중 10만원이 당시 아지트로 쓰던 반지하방 장판 밑에서 발견되었다는 점. 누가 남씨의 지갑에서 돈을 빼냈고, 그 중 10만원을 장판 밑에 숨겼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실제 돈을 훔쳤던 베일 속 범인은 피해자 김양을 두 번 죽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