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행 슬슬 시동 “중원을 잡아라”
지난 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 주최로 열린 나라혁신포럼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에서 안희정 충남지사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안 지사는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에 힘 모아줘야 할 때”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오른쪽은 원희룡 제주지사. 연합뉴스
“우리가 선택한 대통령이다. 질책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함께 힘을 모아주어야 현재 대통령중심제의 헌법체계가 그나마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권 여당의 정치인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지난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있었던 신년 조찬포럼에 참석한 야권의 대권주자 안희정 충남지사의 말이다. 오히려 동석한 여권의 대권주자 원희룡 제주지사는 안 지사의 말에 “얘기 다한 것이냐”고 다소 놀라워하며 “100% 대한민국을 혹시 집권 핵심세력에서부터 포기했거나 약화된 건 아닌가”라고 되레 박근혜 대통령에 비판을 가했다.
안 지사의 깜짝 발언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선 “안 지사다운 통 큰 발언”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한편, 또 다른 일각에선 “현재 청와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도가 지나친 발언”이라는 평이 오가기도 했다.
안 지사의 발언에 대한 평가를 넘어 정치권에선 의도된 우클릭 행보라는 반응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대선은 결국 중원싸움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원’은 두 가지 의미다. 지역적인 의미에서 충청권과 중도층을 의미한다”며 “안 지사의 이번 발언은 진보진영의 주자로서 중도층과 보수층을 염두에 둔 전략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다. 이념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작업은 대권주자로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안희정 지사의 우클릭 행보는 이번 발언뿐만이 아니다. 가장 돋보였던 것은 재선 전부터 지역의 보수단체들과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안 지사는 수차례에 걸쳐 고엽제전우회, 재향군인회, 한국전쟁참전용사회 등 지역 보수단체 인사들과 직접 만나가며, 자신의 대북관을 설득시키기도 했다.
이는 보수성향이 강한 ‘계룡대 문화권’인 충남 남부 지역에서의 선전을 비롯해 지방선거 재선 성공의 강한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특히 야권 지사로서 여대야소인 도의회와의 유연한 스킨십 역시 이러한 폭 넓은 스펙트럼을 기반으로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9월 2일 열린 새누리당 충청권 예산정책 협의회에 참석한 안희정 충남지사. 사진출처=안희정 공식사이트
안희정 지사의 저서를 통해서도 이러한 우클릭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안 지사는 민선 6기를 앞둔 2013년에 출간한 저서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는, 야권 입장에선 후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특히 저서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중공업 정책을 두고 “박정희 대통령이 농업만으로는 경제적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중공업 육성이라는 미래의 비전에 매달려 성공했다”며 “이 계획은 10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고 추진됐다”고 성공작으로 평했다.
이러한 안희정 지사의 우클릭 행보가 주목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같은 친노진영의 좌장이자 잠재적 경쟁자이기도 한 문재인 의원과의 차별성 때문이다. 즉 기존 친노가 갖는 극단적인 이미지와 정치적 행태를 넘어 이념의 스펙트럼을 보다 폭 넓게 가져가고 있다는 뜻이다. 비노진영의 한 당직자는 안 지사에 대한 당내 내부 상황을 전했다.
“안희정 지사는 친노 인사임에도 우리 비노진영에선 별 다른 거부감이 없다. 이는 친노 강경파에 둘러싸인 좌장 문재인 의원과는 분명한 차이다. 안 지사가 보다 유연하게 다가오는 편이다. 분명한 것은 최근 야권 내에서도 몇 가지 의미 있는 변화의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특히 얼마 전, 당권주자 ‘빅3(문재인, 박지원, 정세균)’의 출마를 반대하는 연판장이 당내에서 돈 적이 있다. 이에 참여한 의원들 상당수는 비노진영 인사였지만, 일부는 문재인 의원보다는 안 지사와 보다 가까운 친노진영 인사도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미 친노진영 내부에서도 경우에 따라 ‘당권은 문재인, 대권은 안희정’이라는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한 셈이다.”
안희정 지사는 민선 5기였던 2013년 9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안희정은 기존 친노 인사들과는 다르다’는 인식에 대해 “그렇다. 난 다른 이미지를 가지려고 한다”며 “난 그 모든 것을 통합할 생각이다. 친노와 비노를 통합할 것이고, 심지어 보수와 진보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통합시킬 것”이라고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기존 친노 인사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통합’에 대한 그의 큰 그림은 결국 대선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안희정 지사의 민선 5기에 참여한 한 최측근 인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언젠가 서울로 올라간다. 문제는 시기일 뿐”이라며 “다음이 될 수도 있지만, 이번 대선도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지켜봐 달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과 동시에 차기 대권주자들의 경쟁도 이미 시작됐다. 아직은 후발주자이자 원석에 가까운 안희정 지사의 우클릭 행보와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기존 친노 진영의 차별적 행보 역시 중요하게 지켜볼 대목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