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은 “당명 때문에 집권을 못했느냐”면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담긴 현재의 당명을 고쳐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당명 새정치민주연합은 민주당이 안 의원이 만든 새정치연합과 합당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항변은 백번 옳지만 그가 말만 앞세운 새정치로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지 궁금해 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관훈토론회 때 필자의 질문에 대해 문 위원장은 “나의 진짜 속내는 민주당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며 “전에 비대위원장을 할 때 ‘도로 민주당’을 만든 것도 자신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면 “새정치를 버리고 또 ‘도로 민주당’이냐는 소리를 듣게 될 것에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고 했다. 지난 1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같은 취지로 당분간 현재의 당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실 새정치민주연합을 민주당으로 바꿀 수도 없다. 민주당이 버려지자 그 이름의 정당이 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버릴 때는 언제고 무슨 염치로 이제 와서 다시 가져가겠다는 거냐”는 현 민주당의 반박이 안 의원의 항변보다 더 신랄하게 들린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 개정 역사를 살피면 어지러울 정도다. 약세의 야당으로 존재해온 세월이 길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온갖 세력하고 연대를 하다 보니 누더기 당명이 됐다. 한국, 통일, 통합, 평화, 신(新) 등 온갖 정치적 수사를 ‘민주’의 앞뒤에 붙여 당명으로 삼았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 세력과 연대했던 제19대 총선 때의 통합민주당은 그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당시의 야권연대는 19대 총선은 물론 18대 대선 패배의 원인(遠因)이다. 통진당 해산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사과도 반대도 할 수 없는 꿀 먹은 벙어리 신세였다.
그런 무원칙하고 무책임한 연합으론 집권하긴 어렵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도로 민주당이 되려면 주변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당명을 짜깁기를 하지 않는다는 당당함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민주당의 영구 당명화’ 용의를 물은 것도 그런 취지였다. 그 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 전 고문이 새해 벽두 탈당하는 사태를 보며 그런 기대의 무망함을 절감하면서, 정 전 고문이 내건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모임’이라는 긴 이름의 정파명에 새삼 눈길이 간다. 자칭 약칭이 ‘국민모임’이나 ‘국물모임’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나올 것 같다.
시대에 따라 정강 정책은 바뀌더라도 당명은 바꾸지 않는 것이 정당정치 선진국들의 모습이다. 미국에선 공화당과 민주당이 200년, 영국에선 보수당과 노동당이 100년 넘게 같은 이름이다. 한국 정치에서 야당 못지않게 당명 개정이 잦은 여당도 새겨야 할 일이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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