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고 뽑고 바르고 ‘나도 장동건처럼…’
최근 여성만큼이나 외모에 신경을 쓰는 남성들, 일명 ‘그루밍족’이 뷰티업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일요신문 DB
오랜 공무원 생활을 접고 자영업을 시작한 안 아무개 씨(59)는 대표적인 ‘꽃중년’이다. 그의 미용 스케줄은 젊은 여성 못지않다. 매일 개인트레이너와 운동을 하고 주1회 피부와 바디마사지를 받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미용실을 찾아 헤어스타일을 정돈한다.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았지만 네일샵 회원권도 가지고 있다. 100만 원을 선결제하면 20%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바로 카드를 건네곤 꾸준히 다니는 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성형외과를 방문해 보톡스 시술은 물론이고 때론 수술도 받는다. 안 씨는 “쇼핑, 미용, 운동 등 나를 위해 평균 월 100만 원 이상은 지출한다. 계절이 바뀔 때면 200만~300만 원씩 옷을 살 때도 있다. 소득의 절반 이상이지만 아이들도 다 키웠고 문제될 건 없다. 함께할 사람도 없고 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늙고 병들어 골골거리는 것보단 낫지 않냐”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20대 여기자가 들어도 꽃중년의 인생은 귀찮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은 그런 삶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왜 굳이 꽃중년이 되려고 하는 건가요.” 그러자 잠깐의 고민도 없이 그의 대답이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애들에게 멋진 아빠가 되고 싶어 꾸민다는 사람도 있고 배우자의 성화에 못 이겨 꽃중년 대열에 합류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만족이지 뭐. 이 나이 되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직장에서도 이미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고 애들도 어느 정도 컸고. 그런데 쇼핑을 하고 꾸미다보면 변화하는 내 모습에 허전했던 마음이 좀 채워진다. 물론 겉만 화려하지 외로운 꽃중년들도 많다.”
잡티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피부에 영화배우 같은 콧수염을 기른 김상우 씨(43)는 누가 봐도 ‘꽃중년’이라 부를 만하다. 179㎝의 큰 키에 67㎏이라는 환상적인 바디라인은 그의 빼어난 패션 스타일을 돋보이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김 씨는 평범한 40대 아저씨였다. 볼록 나온 뱃살을 가리느라 펑퍼짐한 옷만 즐겨 입었고 얼굴 곳곳에서 기미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그를 바꾼 것은 드라마 한 편이었다. 2012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보고선 부러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김 씨는 “나와 비슷한 나인인데 정말 달라보였다. 운동부터 시작해 살을 빼고 난 뒤부턴 남자화장품, 옷, 신발 등 쇼핑도 재밌어졌다. 가족들도 직장동료들도 모두 칭찬을 해주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2012년 인기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스틸컷. 이 드라마가 방영된 이후 꽃중년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꽃중년은 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꾸준한 노력과 투자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인 것. 그래서인지 피부과, 미용실, 성형외과 등에서는 꽃중년을 꿈꾸는 아저씨들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주기적으로 보톡스를 맞는 건 일반화됐다. 쌍꺼풀 수술, 눈 밑 지방 제거, 측두부 리프팅 등 주로 동안을 위한 수술이 인기며 여름에는 제모도 받는다. 변화한 외모에 만족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과한 욕심으로 중독에 빠진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피부 관리실의 풍경도 확 바뀌었다. 서울 홍대에서 피부 관리실을 운영하는 박 아무개 씨(여·44)는 “남성 고객 중에는 20~30대 젊은 층보다 중년이 훨씬 많다. 여기까지 온 중년들은 다들 피부 전문가라 몇 번의 손길만으로 관리사가 베테랑인지 아닌지 알아차린다. 부담이긴 하지만 경제력이 있어 10회 기준으로 80만~100만 원 고급 패키지를 많이 구입하니 VIP로 대접한다”며 “아저씨들에게는 네일샵이 함께 있는 곳도 인기다. 아직까진 혼자 네일샵에 가는 게 부끄러워 피부 마사지를 받으면서 손톱 관리도 함께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러 아저씨들을 만나다보니 애써 꾸미지 않아도 한 번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꽃중년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었다. 억만금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다는 바로 늦둥이다. 중년의 나이에 얻는 늦둥이는 많은 뜻을 품고 있다. 무엇보다 정력에 아무 문제가 없는 ‘건재한 꽃중년’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아내와의 관계도 좋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음을 증명해주기도 한다.
거기다 재력 과시도 절로 해결해준다.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는 것보다 자녀 한 명 키우는 데 더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서울의 한 비뇨기과 원장은 “병원 주변에 고소득층 직장인들이 많다보니 멀끔하게 차려입은 중년남성들이 늦둥이를 상담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늦둥이를 원하고 기를 능력도 충분한데 건강이 뒷받침되지 못해 고민하는 이들이 병원을 찾는 것”이라며 “사업을 하는 40대 중반의 남성은 친구의 늦둥이 소식에 부러움을 참지 못해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늦둥이는 큰 축복이지만 다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이를 적게 가지는 시대가 되다 보니 늦둥이도 꽃중년의 상징이 되는 게 조금 서글픈 현실이긴 하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70세를 훌쩍 넘기면서 인생의 절정기도 40대에서 50~60대로 점점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이런 점에서 꽃중년은 사회의 중심축이 점점 중·장년화 되어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후줄근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저씨들도 인생의 제2막을 향해 넥타이를 고쳐 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꽃중년의 나쁜 예 ‘사각팬티+스키니진’ 이건 아니잖아~ 늘 깔끔함을 유지하며 자기계발에 열중하는 중년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환영받기 마련이다. 특히 함께 일하는 상사가 ‘꼰대’가 아닌 ‘꽃중년’이라면 반기지 않을 사람이 없을 터. 하지만 어설프게 꽃중년 흉내만 내는 이들이 많다는 게 문제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밀 뿐 내면은 전혀 아름답지 않은 ‘밉상’ 꽃중년들이 직장인들의 공포로 떠오르고 있다. 허 씨는 “우리 회사에서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머리와 언제 빨았는지 모르는 얼룩덜룩한 셔츠는 상상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꽃중년 상사들 모두가 본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잔소리를 하는 탓에 탈모가 생길 지경”이라며 “말끝마다 외모에 대한 지적을 하는데 ‘나도 몸매 관리하는데 넌 뭐하니’ ‘옷 색깔이 그게 뭐냐’ ‘젊은 애가 감각 떨어지게 립스틱 너무 촌스럽다’ 등 별걸 다 꼬투리를 잡는다. 시도 때도 없이 그러니 눈도 마주치기 싫다”고 하소연했다. 꽃중년임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상사도 꼴불견이긴 마찬가지다. 아직 막내 딱지를 떼지 못한 김 아무개 씨(28)는 매일 아침마다 부장의 외모를 칭찬해주는 ‘주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김 씨는 “칭찬도 간단하게 하면 안 된다. 어제와 달라진 부분이 어디인지, 특히 잘 어울리는 아이템은 무엇인지, 어떤 연예인과 닮았는지 등 꼼꼼하게 칭찬해야 더 이상 시달리지 않는다. 혹 일이 바빠 칭찬을 안 하는 날이면 쓸데없이 사무실을 방황하며 트집을 잡는 상사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칭찬 한 마디가 뭐 어려운 일이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진짜 얄미운 부분은 따로 있다. 문제의 부장은 자신의 외모 꾸미기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 후배들에게는 커피 한 잔 사주지 않는 짠돌이인 것. 김 씨의 동료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부장을 피해 다니는데 어쩌다 함께 먹는 날이면 ‘명품 설명회’를 들어야 한단다. 김 씨는 “예약해둔 신상품을 보여주면 부러운 눈빛도 보내야 한다. 다른 부서에 라이벌 꽃중년이 있는데 그 사람의 패션을 지적하는 것에도 동참해야지 안 그럼 난리가 난다. 밥 먹는 내내 명품자랑을 하다가 본인은 잔돈이 없다며 300원(자판기 커피값)을 후배들한테 받아가니 좋게 볼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설프게 꽃중년을 따라하는 이들 또한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가 된다. 꽃중년에 대한 열망 하나로 자신의 몸매는 생각하지 않고 꽉 끼는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 것. 직장인 박 아무개 씨(49)는 “나 역시 꽃중년이 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포기했다. 그런데 주변엔 거울을 전혀 안 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볼록하게 나온 뱃살부터 처리를 해야지 무작정 슬림핏 옷을 입고 나와 꽃중년이라 우기니 난감할 따름이다. 한 번은 사각 트렁크 팬티를 입고 슬림핏 바지를 입은 동료가 있었는데 후배들이 뒤에서 욕하는 걸 듣기도 했다. 유행보다는 자기 체형에 맞는 옷이 가장 멋진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
당신은 무슨 ‘족’? 말은 달라도 뜻은 하나 “오빠라고 불러다오~”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외모, 탄탄한 몸매, 단정한 패션을 갖춘 이들을 통틀어 ‘꽃중년’이라 부른다. 그런데 ‘꽃중년’에도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족(族)’으로 분류된다. #골드파파(Gold papa) 꽃중년을 뜻하는 다양한 신조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그루밍족(Grooming)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들을 말한다. 본래 ‘그루밍(grooming)’은 마부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시켜 말끔하게 꾸민다는 데서 유래한 단어로 동물의 털 손질, 몸치장, 옷차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20~30대 젊은 남성들에게만 적용됐지만 최근에는 40대 이상 중년 남성들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피부와 두발, 치아관리는 물론 성형수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노무족(NoMU) ‘No More Uncle’이라는 의미로 아저씨라고 불리기를 단호히 거부하는 40~50대 중년 남성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젊어 보이기 위해 틈틈이 피부 관리를 받고 운동을 거르지 않으며 몸에 꼭 맞는 옷을 즐겨 입고 다닌다. 또한 내적인 젊음에도 관심이 많아 자유로운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며 젊은 세대와 거리낌 없이 소통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하하족(HAHA) ‘Happy Aging Healthy&Attractive’를 뜻하며 자기계발을 통해 즐겁게 사는 중년을 뜻한다. 이들은 문화생활을 통해 인생을 즐기고 건강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는 등 자신들을 위해 소비하는 특징을 가졌다.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수술로 억지로 노화를 막는 행위보다는 나이에 맞는 문화를 즐기며 정체성 찾기에 노력한다는 게 특징이다. #루비족(RUBY) 신선함(Refresh), 특별함(Uncommon), 아름다움(Beautiful), 젊음(Young)의 단어 첫 글자를 딴 것으로 말 그대로 젊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중년 여성을 의미한다. 가족에 대한 희생을 강요당했던 전통적인 여성의 개념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꾸미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할애한다. #나우족(NOW) ‘New Old Women’을 뜻하는 단어로 40~50대임에도 여전히 젊고 건강하며 경제력까지 갖춰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중년 여성들을 말한다. ‘오늘의 내가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며 자신에 대해 아낌없이 투자한다. 또한 유행의 선두주자로 다른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지만 남편과 자녀까지 자신의 취향대로 바꾸는 특성을 보인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