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7일 오후 10시께 경남 창원시 외곽의 한 농촌 마을. TV를 보며 졸음을 쫓던 최아무개씨(여·58)는 ‘아들’로부터 이상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최씨: “여보세요?”
남자: “여보세요. 저예요.”
최씨: “누구세요?”
남자: “저라니까요.”
최씨: “○○이니? 웬일이냐? 근데 너 목소리가 왜 그러냐?”
남자: “좀 피곤해서 그래요. 어머니, 여기 병원인데요, 내가 발기부전증이래요. 현대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고…. 어쩌죠, 제가 어머니하고 관계를 해야 치료될 수 있대요. 그런데 관계할 때 절대 얼굴을 보면 안 되고 말도 해선 안 된대요.”
전화기 너머로 다급하게 들려오는 ‘아들’의 하소연에 순간 최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농삿일밖에 모르는 순박한 농촌 아낙네인 그는 자식 걱정에 이내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며 눈물을 지었다.
그러나 사실 이 남자는 최씨의 아들이 아니라 사기 등 전과 4범의 차아무개씨(39)였다. 차씨는 창원시 북면 M여관에 미리 방을 잡아 놓고서 최씨에게 “먼저 여관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그리고 병을 고치려면 약간의 돈도 필요하니 가져오고, 돈은 침대 옆에 놓아두라”고 당부했다.
순진한 최씨는 능수능란한 차씨의 언변에 그가 자신의 아들인 줄만 알았다. 체면과 수치심보다는 오직 자식의 불치병을 고쳐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마침내 최씨는 차씨가 일러준 여관으로 찾아갔다. 그리곤 현금 20만원을 침대 옆에 놓고,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침대에 누워 ‘아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차씨가 방으로 들어왔다. 최씨는 차씨가 신신당부한 대로 그의 얼굴을 보려 하지도 않았고 말을 걸지도 않았다. 차씨는 최씨의 옷을 벗기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관계만 맺은 후 침대 옆에 있는 현금 20만원을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차씨가 나간 후에야 최씨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임 끝에 자신의 진짜 아들에게 전화를 건 최씨는 순간 머릿속이 노랗게 변해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그 시각 아들은 다른 지방에서 일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차씨는 이 같은 믿기 어려운 수법으로 여성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다 지난 7일 위계에 의한 간음 혐의 등으로 창원 서부경찰서에 검거됐다. 드러난 범행만 해도 다섯 차례나 되고 피해액은 7백30만원으로 집계됐다.
대체 차씨의 ‘황당무계한’ 사기극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경찰 관계자는 “임기응변이 뛰어난 차씨가 급박한 상황을 꾸며 피해여성들로 하여금 정상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 후 범행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경찰 수사 결과 차씨는 2년 전에도 이와 똑같은 수법으로 사기극을 벌이다가 체포돼 2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지난 5월 가석방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출소하자마자 다시 ‘전공’ 범죄를 저지르다가 4개월 만에 덜미가 잡힌 셈이다.
한 가지 공교로운 점은 차씨가 범행 장소로 쓴 여관이 2년 전 사건 때와 동일한 장소이고, 이번에 차씨를 검거한 형사도 2년 전 차씨를 검거했던 바로 그 형사라는 사실이다.
창원 서부경찰서 이견술 형사가 그 ‘묘한 인연’의 주인공. 이 형사는 “신고가 들어왔을 때 범행수법을 보고 차씨가 범인임을 확신했다. 확인해 보니 차씨가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을 알고 그를 추적해 검거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차씨는 2002년 5월11일 여대생 김아무개씨(당시 20세)를 상대로 비슷한 사기극을 벌이다 ‘황당’행각이 들통났다. 당시 그는 여대생 김씨에게 군대 간 남자친구로 속여 전화해 “내가 발기부전이다. 치료는 어렵고 액운을 쫓아야 한다”며 돈을 요구한 데 이어 같은 날 창원시 북면 M여관에서 김씨를 성폭행했었다.
사건 이후 피해자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군대 간 남자친구가 힘든 훈련으로 목소리가 변한 줄 알았다”며 “액운을 쫓기 위해 눈을 가리고 자신의 몸을 만지면 안 된다는 범인의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차씨에게 당한 후 군 복무중인 진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해보고 자신이 속은 걸 알았다. 김씨가 차씨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별 다른 증거도 없어 사건은 자칫 미궁에 빠질 뻔했다. 그러나 차씨가 대담하게 김씨에게 한 번 더 만날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차씨의 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간단했다. 전화번호부를 보고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남자가 받으면 끊어 버리고 여자가 받으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차씨는 전화를 받은 상대여성이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목소리면 “접니다”, 목소리가 어려보이면 “나야”라며 뜸을 들이고, 상대여성이 스스로 입 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상대의 응답에 따라 조카나 남편, 아들인 것처럼 행세하며 여성들을 속였다.
경찰이 밝힌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은 모두 4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여성들이다. 차씨는 여성들에게 “발기 부전증이다”, “고환에 문제가 있다” 등의 핑계를 대며 “액땜을 해야 된다”는 식으로 유인해 여성들의 돈과 몸을 빼앗았다.
차씨는 피해여성들에게 돈을 여관 앞 공중전화 부스 등에 놓아두라고 요구한 뒤 현장에 나타난 피해여성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젊거나 예쁜 얼굴이면 여관으로 들어가 성관계까지 가졌다. 경찰 관계자도 “차씨가 여관방에까지 들어가 피해여성의 모습을 보고 맘에 안 들면 돈만 가지고 그냥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지금까지 밝혀진 피해자는 5명이지만 여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번에 차씨를 다시 검거한 이견술 형사는 차씨의 주거지가 일정치 않아 추적에 애를 먹었지만 결국 경남 함안의 차씨 노모의 집 앞에서 잠복하다 지난 7일 그를 붙잡을 수 있었다. 이 형사는 “차씨가 나를 보자마자 돌덩이처럼 멍하니 서 있더라. 차씨에게 ‘나 기억하지?’라고 말하니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떡였다. 처음에는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으나 증거를 들이대자 순순히 자백했다”고 말했다.
그는 “차씨와 나하고는 묘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아마 다른 수사관이 이 사건을 맡았으면 피해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며 “차씨는 내가 이 지역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씨의 사기극은 황당했지만 그의 범행 사실은 과학수사로 입증됐다. 경찰은 여관에서 수거한 차씨의 정액과 차씨가 버린 담배꽁초에서 추출한 타액의 DNA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지난 9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한 수사관은 “어찌 보면 피해 여성들이 바보처럼 당한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워낙 차씨의 언변이 교묘했다. 피해여성들 대부분이 순박한 시골사람들이라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인정이 앞섰을 뿐이다. 차씨는 피해자들의 이런 순박한 마음을 악용해 범행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차씨 사건의 피해여성들은 대부분 자신의 신원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피해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눈 감고’ 당한 억울함이 수치심보다 앞섰던 탓일까. 몇몇 피해 여성들은 경찰에서 “이놈, 얼굴이나 한번 보자”며 뒤늦게 차씨에게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단독] 김용현 전 국방장관 "민주당이 내란 수준, 대통령은 자식 없어 나라 걱정뿐"
온라인 기사 ( 2024.12.06 08: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