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풍구 뚫고 싹쓸이 ‘할리우드 뺨치네’
▲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한 장면. 익산 귀금속 절도단은 마치 이 장면처럼 천장의 환풍구를 뚫고 침입했다. | ||
이른바 ‘형제 절도단’으로 불린 이들 4형제의 범죄 행각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재미를 한껏 더 살리기 위한 극적요소로 받아들여졌다. 가족사를 확인 취재한 결과, 이번 사건의 주범은 4형제 중 셋째인 선아무개씨(38)와 전문 소매치기범 조아무개씨(31)였다. 셋째 선씨에 의해 범행에 가담하게 된 큰 형(51)과 동생(31)은 장물처리를 맡았고, 둘째 형(39)은 사건 당시 망을 보며 돕는 역할 분담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의 주범인 셋째 선씨는 특수절도 등 전과 4범으로 밝혀졌다.
그는 금은방을 운영해오다 채무 1억6천여만원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선씨는 친구 소개로 알게 된 전과 12범의 전문 소매치기 조씨와 함께 범행을 모의하고 보다 치밀한 작전을 위해 형과 동생까지 끌어들였다. 특히, 지난해 8월부터 올 4월까지 전북의 전주 군산 정읍 등에서 잇달아 발생한 3건의 금은방 절도사건도 선씨와 조씨가 예행연습 삼아 저지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던졌다.
주범 선씨는 광주지역 대학 용접과를 졸업하고 귀금속 유통업을 해오다 4년 전부터 금은방을 운영해왔다. 경찰에 따르면 선씨는 광주광역시 광산동과 호남동 등에 범행 아지트와 장물 보관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금은방 3개를 임대, 영업은 하지 않고 ‘내부 수리중’이란 푯말을 내건 채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선씨는 우선 보안경비업체의 시스템을 학습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영업하지도 않는 자신의 텅 빈 가게에 한 보안업체에 보안경비를 의뢰했다. 선씨는 이 과정에서 경비업체가 침입감지부터 출동까지 5분가량 소요된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 후 예행 연습에 나섰다.
선씨의 범행은 마치 영화 <미션 임파서블>을 모방한 듯했다. 지난해 9월 선씨는 전북 정읍 수송동 Y금은방 외부에서 보안경비업체의 도난방지용 전용선을 끊은 뒤 지붕과 천장 사이 공간으로 들어가 천장 환풍구를 뜯어내고 밧줄을 타고 금은방 내부로 침입했다. 당연히 경보음이 울렸지만 선씨는 금은방에 진열된 귀금속 3억8천여만원어치를 단 5분 동안 쓸어 담고 유유히 사라졌다. 당시 경찰과 보안업체 직원이 경보음이 울린 지 8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금은방 외부에 침입흔적이 없고 금은방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철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지난 1월에는 군산 영동의 G금은방에도 같은 수법으로 침입해 약 5분 동안 반지와 목걸이 등 1억원어치의 귀금속을 훔쳤다. 당시 금은방 주인은 “아침에 출근해 보니 천장 환풍구가 뚫려 있었고 귀금속만 깨끗이 털어갔다”고 말했다.
두 번의 범행으로 완전히 자신감이 생긴 선씨는 지난 2월 초 광주광역시 한 모텔에서 장기 투숙하면서 ‘보석 싹쓸이’ 계획을 세웠다.
완전 범죄를 꿈꾸며 그는 동조자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전문가’가 필요했다. 선씨는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전문 소매치기 전과 12범 조씨를 끌어들였다. 믿을 만한 동조자로는 형제들밖에 없다는 생각에 선씨는 자신의 형과 동생에게도 “함께 큰 사업을 해보자”며 끌여 들였다. 선씨의 형제들은 노동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형편인데다 셋째인 선씨가 형제 중 가장 똑똑해 나머지 형제들은 선씨만 믿고 범죄에 가담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선씨는 조씨와 함께 익산 귀금속센터를 털기 전 4월 초에 있었던 익산 보석축제에 참가해 익산 귀금속센터 현장답사에 나섰고 귀금속센터 직원들의 야유회가 있는 지난 5월10일을 ‘D데이’로 잡았다. 선씨와 조씨는 익산 귀금속센터를 털기 열흘 전인 지난 4월28일 미리 팀워크를 맞춰보는 예행연습 차원에서 전주 고사동의 M금은방에 침입해 귀금속을 털었다. 이때도 선씨는 금은방의 보안시스템을 절단하고 들어가 범행했다.
그러나 익산 귀금속센터는 여느 금은방과는 달리 천장을 통한 침입이 어려웠다. 선씨는 자신이 임대한 금은방에 익산 귀금속센터에 설치된 C보안업체와 똑같은 보안시스템을 설치해두고 여러 가지 실험 끝에 휴지로 열감지센서를 씌우면 센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범행에 그대로 적용했다. 선씨와 조씨는 범행 하루 전인 지난 5월9일 보안업체 직원으로 위장해 익산 귀금속센터를 찾아가 휴지로 열감지센서를 무력화시킨 후 다음 날 자정 화장실 창문을 통해 침입해 귀금속을 털었다. 이 때 선씨의 둘째 형은 밖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선씨 등은 예상했던 것보다 귀금속의 양이 너무 많자 다음 날인 11일에도 다시 센터를 찾아 보석을 쓸어왔다. 귀금속센터가 양일간 휴일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선씨 일당의 범행은 치밀한 사전 준비 만큼이나 얼핏 완벽한 듯 보였다. 사건 당시 현장은 전혀 증거가 남아있지 않아 자칫 미궁에 빠질 뻔 했던 것. 그러나 훔친 귀금속의 처리가 문제였다. 결국 선씨 등이 서울 종로의 보석상가에 훔친 대량의 금을 유통하려는 과정에서 경찰에 덜미를 잡히게 됐다.
사건을 맡은 익산경찰서 강력 5팀은 전국 3천5백여 개의 보석감정소와 취급업소, 1백30개소의 귀금속 제작업체, 호남 지역의 금은방 2천여 개 등에 주요 장물 수배서 4만장과 수배전단 2만장을 배포하며 두 달에 걸친 탐문수사 끝에 검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