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끌려 ‘유영철 따라하기’
정 씨는 이미 지난 7월 7일에 있었던 항소심 첫 공판에서 “사회에 나가도 다시 살인을 하겠다. 더 이상 살인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조바심이 난다”고 진술, 변호인과 방청객들을 경악케 한 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살인범들이 그러하듯 정 씨 역시 시일이 지나면 세상에 대한 분노를 거두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게 범죄 전문가들의 전망이었다. 이번 결심공판에서 정 씨의 최후진술에 이목이 집중됐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정 씨가 준비해온 메모지를 꺼내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말이 나오기를 내심 기대했었다.
하지만 정 씨는 그 마지막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려버렸다. 이날 최후진술에서 정 씨는 살인을 할 때의 희열감을 표현하는 동시에 “부자를 더 해치지 못해 안타깝다”고 발언, 법정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정 씨의 표정에서 뉘우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살인을 멈출 수 없었다’ ‘살인은 하늘의 뜻이었다’고 말하는 등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시키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또 ‘가진 자에게만 잘해주고 힘 있는 기관들이 더하다’며 법행정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 씨의 태도가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또 다시 사형존폐론에 대한 치열한 갑론을박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알려졌듯이 정신감정 결과 정 씨는 ‘혼재성 인격장애’라는 진단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정 씨가 살인을 즐기는 연쇄살인마가 된 일부 원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지만, 참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파렴치한 지금의 언행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 정신과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오히려 상당수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전문의들은 정 씨의 언행을 사회의 이목을 끌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로 보고 있다. 정 씨가 ‘엽기살인마’에게 쏟아지는 세간의 시선을 즐기고 있으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분노에도 희열감을 느끼는 이상심리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어릴 때부터 누구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아웃사이더로 성장해온 정 씨의 불우한 성장과정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았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정 씨는 살인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을 인물이다. 현재 그의 행동은 어떻게 해서든 최고로 악랄한 희대의 살인마로 각인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심리학자는 “정 씨가 연쇄살인범의 대명사가 돼버린 유영철을 거론한 것만 봐도 얼마나 ‘튀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다”며 “유영철에게 강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유영철과 함께 한 건 하고 싶었다’는 발언을 한 데서도 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이번 최후진술에서 부자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하며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1순위 젊은 여성, 2순위 여자 어린이, 3순위 남자어린이로 범행의 우선순위를 정해 놓았다’고 진술한 바 있고 실제로 부자를 범행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이와 관련, 범죄전문가들은 “정 씨가 ‘부자=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은 사람=죽여도 되는 부류’라는 나름의 엉터리 논리로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몇몇 심리학자들은 정 씨의 뻔뻔한 태도가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처벌이 예정된 상황에서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자신의 불안감을 역설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