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남경필 의원, 원희룡 의원, 김희정 의원 | ||
한나라당 내부에서 소장파 의원들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 지도부는 그들대로 소장파에 불만이고, 보수 의원들은 성향이 맞지 않아 원래부터 좋지 않게 여겼다. 최근 들어 이러한 불만은 외부로 표출돼, 소장파는 안팎의 견제와 공세에 곱사등처럼 터지고 있다.
한나라당 소장파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한나라당 한 원외 당직자의 불만이다.
“소장파 의원들의 눈을 보십시오. 대부분 눈동자에 초점이 흐려져 있습니다. 어느새 현실에 안주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열린우리당 386세대와 비교할 때 한나라당 소장파에게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적극성의 결여다. 한나라당 소장파는 애써 강하게 추구하는 게 없다. 지난 여름 독도를 방문하고, 호남지역에 농활을 다녀온 이후 사실상 활동을 중단해버렸다.
소장파의 모임인 ‘수요 조찬모임’은 국정감사를 핑계로 한 달여 동안 만남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야 겨우 모임을 재개했다.
정치를 하면서 ‘이것을 꼭 이뤄내겠다’는 목표 의식도 높지 않다. 대부분 당선이 최대의 목적이었던 사람들처럼 비친다. ‘이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비전이나 ‘이런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치열함도 없다.
화려한 주목을 받으며 최고위원에 당선됐던 원희룡 의원은 한 달 이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원 의원은 “외롭게 싸우는 데 지쳤다”고 고백한다. 한나라당 최고위원회나 상임운영위원회에서 원 의원은 항상 소수파로 몰렸다고 한다. 국가정체성 문제 등을 두고 당이 너무 강경으로 가지 말자고 주장해도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원 의원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더 이상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경필 의원도 원내수석부대표 활동에 주력할 뿐 소장파로서 목소리 내기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근래의 움직임은 ‘튀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과 ‘원만하게 살자’는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변화를 이끌어야 할 이들이 당내 노선투쟁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셈이다.
최연소의원으로 주목받았던 김희정 의원이나 이성권 의원 등도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한 채 구경꾼처럼 밀려나 있다.
김용갑 이방호 의원 등 보수파 의원들이 갈수록 목청을 높이는 데 비해, 이들의 한가로움은 좋은 대비를 이룬다. 한때 한나라당의 미래를 이들에게서 찾은 사람도 많았지만, 요즘 들어 이 같은 기대는 거의 사라졌다.
한나라당은 내년 1월 당명개정과 선진화 프로그램 등을 발표하면서 대대적인 환골탈태를 준비하고 있다. 그때쯤 가면 소장파와 보수파의 대결이 불가피하다.
소장파들이 지금까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당 변화를 비주체적으로 맞이한다면 한나라당의 근본적 변화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 관계자는 “소장파들이 지금 놀 때가 아니다. 치열하게 준비하고 승부하고 맞부딪치면서 당의 변화를 주도해야 하는데 이게 뭐냐”고 말했다.
보수파 의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나라당이 소장파 얘기를 들어 잘된 게 있나”라며 무시해왔다. 이들은 박근혜 대표에게도 수시로 소장파의 문제점을 건의하고 있다. 가령 소장파들은 언제 배신할지 모르며, 내용없이 인기주의에만 연연하고 있다는 등이다.
학자나 율사 출신의 초선의원 가운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기준 박형준 장윤석 윤건영 박재완 유승민 의원 등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한다. 자연 이들이 박대표 주변에서 각종 현안을 처리하고 있다.
소장파들의 문제 해결방식이 일종의 ‘한탕주의’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일이 터지면 언론 플레이 등을 통해 여론몰이를 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소장파들의 행태가 어느 정도 본질을 드러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또 너무 정치적 계산이 빠른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박 대표를 뽑았으면, 적극 밀어주면서 박 대표를 개혁의 동력으로 활용할 생각을 해야지, ‘박 대표로 대선을 이길 수 있나, 없나’하는 대권게임에만 연연하면서 실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소장파가 소극적으로 변한 데는 박 대표를 놓고 고민에 들어간 것도 한 가지 이유로 꼽힌다.
물론 이 같은 한계를 전적으로 이들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도 무리는 있다. 한나라당은 여전히 보수적 의원들의 입김이 강한 보수정당이다. 소장파들이 목청을 내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소장파들이 ‘나이많은 어른들’의 비위를 맞추어가며, 변화를 시도해야 하기 때문에 2중의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소장파들은 국감이 끝난 뒤 모임을 갖고 “이제라도 열심히 하자”고 결의했다.
이들은 국보법 폐지반대투쟁에만 몰입하지 말고, 참칭조항을 포함한 개정운동에 적극 나서자고 결의했다. 또 선명투쟁을 주장하는 강경파에 맞서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노력에 힘을 보태자고 공감대를 이뤘다. 뒤늦게 박근혜 대표의 4대 개혁법안 철회 주장이 잘못됐다는 점도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다시 당내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정풍운동을 벌일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한나라당 소장파의 위기는 어쩌면 한나라당 전체의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환골탈태를 해야 하는 한나라당은 자칫 흔들리는 배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대한 성과를 이루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가고 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