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도 쌓이고 쌓이면 ‘이웃웬수’
▲ 이번 참극의 원인이 된 민 씨의 신축 건물(앞 쪽). 그 뒤로 보이는 건물이 살해된 이 씨의 집. | ||
민 씨는 지난해 식당으로 쓰기 위해 2층짜리 건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이웃들이 제기한 민원 탓에 사용 승인이 잘 나지 않는다며 앙심을 품고 있던 중 지난 5월 29일 새벽 자신의 식당에서 술을 마시다가 “이 씨, 강 씨가 가로수 벤 사실을 구청에 고발하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격분, 이들을 찾아가 다짜고짜 흉기를 휘둘렀다. 대전 북부경찰서는 사건 당일 민 씨를 살인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해 구체적인 살해동기 등을 조사하고 있다. 5월 30일 기자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아직 핏자국이 채 가시지도 않은 이 작은 마을엔 흉흉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이번에 살인극이 일어난 마을은 10여 가구가 사는 한적한 마을이지만 대청호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어 매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 또한 이 마을은 민 씨, 강 씨, 이 씨 등의 집성촌으로 세 가문의 친인척들이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평온한 겉모습과는 달리 마을에선 그동안 ‘내분’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최근 1년 사이에는 이웃들끼리 서로 원수처럼 등을 돌리고 살 정도였다. 이 같은 갈등은 마을 한 쪽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던 민 씨가 마을의 정중앙이라 할 수 있는 공터에 지상 2층짜리 건물을 신축하면서 불거졌다.
특히 이 건물의 바로 뒤에 위치한 두 집은 액자 속 풍경 같던 호수 대신 투박한(?) 새 건물로 시야가 가로막히자 불만이 많았다. 바로 이 두 집이 민 씨에 의해 난데없는 참변을 당한 이 씨와 강 씨의 집. 경찰과 주민들에 따르면 민 씨와 이 씨, 강 씨는 마을이 생길 때부터 함께 산 토박이이자 동네 선후배 사이. 강 씨는 대전 시내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었고 이 씨는 공무원으로 퇴직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있던 상태였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들 간의 갈등은 역사가 꽤 깊었다. 민 씨가 건물을 세운 공터가 실은 이 씨 집안의 소유였는데 15년 전 이 씨의 아버지가 아들 모르게 민 씨에게 팔아버려 이 씨는 마치 땅을 빼앗긴 듯한 심정이 됐고 그 이후 민 씨와 사이가 점점 벌어졌다는 것. 강 씨 역시 애초 민 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는데 자신의 집 바로 앞에 민 씨의 큰 건물이 들어서자 반감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민 씨 역시 마을 주민들 특히 이 씨와 강 씨에게 서운한 감정이 많았다고 한다. 먹고살기 위해 식당을 차린 것인데 잘되니까 특히 이웃 선배들 사이에서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당하고 이웃들에게도 배척당해 자신도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 이렇듯 반감을 키워가던 민 씨와 이 씨 등의 사이는 결국 지난해 민 씨가 새로운 식당을 차리기 위해 새 건물을 지으면서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취재 과정에서 상당수 마을 주민들은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큰 건물이 마을 한가운데 생기면서 시골 마을의 미관을 해치고 있다”는 등 새 건물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냈다.
주민들의 민원을 접수한 대덕구청은 사생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민원 내용에 따라 새 건물의 2층 창문에 가림막을 설치하도록 했고 민 씨는 이에 따라 2층 창문마다 아랫부분을 가림막으로 막았다. 그러나 주민들의 또 다른 민원 사항인 조망권과 일조권 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도시녹지과의 한 관계자는 “분쟁이 일어난 대청호 조망권은 쾌적한 주거 환경을 추구하고자 하는 개인 입장에서 불만은 있을 수 있지만 법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면서 “특히 일조권 침해의 경우 건물이 지어진 곳은 자연녹지권역이어서 법적으로 이를 주장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민 씨는 민 씨 나름대로 불만이 컸다. 주택용으로 신축허가를 받긴 했지만 새로운 식당을 구상했던 민 씨는 민원 제기로 결국 뜻대로 건물을 활용하지 못하게 되자 마을 민심을 주도하던 이 씨, 강 씨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지난 5월 26일 민 씨는 무슨 이유에선지 마을 공터에 있던 오래된 나무를 베어냈다. 그동안 민 씨에게 불만이 많았던 마을 주민들은 멀쩡하던 나무가 사라지자 수군대기 시작했고 특히 이 씨와 강 씨는 반감이 극에 달했다.
마을에 또 다시 긴장감이 감돌던 지난 5월 29일, 자신의 식당에서 술을 마시던 민 씨는 일행으로부터 “이 씨, 강 씨가 너를 구청에 고발해서 ‘혼내준다’고 하더라. 가로수 베어냈다고”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에 격분한 민 씨는 술김에 “그럼 내가 (먼저) 죽여주지” 하면서 식당에서 자신이 쓰던 회칼을 들고 강 씨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큰소리로 강 씨를 불러내 현관에 나온 강 씨의 복부 깊숙이 칼을 찔러 현장에서 사망하게 했다.
민 씨는 강 씨를 죽이고 바로 옆집인 이 씨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 씨에게도 다짜고짜 칼을 휘둘렀다. 이때 입은 부상으로 이 씨는 병원 후송 중에 사망했다. 민 씨가 칼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이 씨와 강 씨의 장성한 아들들이 이를 말리다 손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 아들들은 현재 입원 치료 중이다. 그런데 한 마을 주민의 말에 따르면 민 씨는 강 씨와 이 씨를 죽이고도 모자라 또 다른 이웃의 집으로 향하다가 주위 사람들이 말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취재 결과 민 씨가 베어낸 나무는 공공 가로수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민 씨 개인의 나무였다. 결과적으로 벌목 사실을 구청에 고발하더라도 벌금 정도로 끝날 사안이었던 셈. 도대체 이웃들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컸기에 그는 이처럼 맹목적으로 칼을 휘둘렀던 걸까.
장유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