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수영선수 박태환이 세계반도핑기구에서 금지한 약물을 투여하는 과정이 선수 본인과 의사가 투약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채 빚어진 ‘의료사고’로 결론을 맺었다.
다만 박태환 측은 수차례에 걸쳐 주사제 성분이 금지된 약물이 아닌지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요청한 반면 의사는 이를 간과한 것으로 조사되면서 검찰은 과실책임이 인정된 의사를 재판에 넘겼다.
해당 의사는 문제가 된 주사제인 네비도(Nebido)‘의 사용설명서에도 반도핑기구 금지약물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데도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주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태환이 자신에게 금지약물을 투여한 서울 T병원 측을 고소한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 따르면 박태환은 네비도 주사를 맞기 전에도 이 병원을 여러 차례 오가며 건강관리를 받았다.
박태환은 뷰티스타일리스트의 소개를 받아 이 병원과 인연을 맺었고, T병원은 마케팅 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국보급 수영선수인 박태환의 건강을 무료로 관리해준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11월 박태환의 매니저 손 아무개 씨는 T병원 의사 김 아무개 씨에게 “국제적인 선수이므로 반도핑기구에서 금지한 약물을 주사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의를 요구했다.
같은 달 박태환의 건강을 전담 관리하는 담당자도 의사에게 이와 같은 취지의 주의 요청을 했고, 박태환 본인도 금지약물은 안 된다는 얘기를 의사에게 건넸다고 검찰은 전했다.
박태환이 T병원에서 네비도 주사제를 맞은 시점은 작년 7월 29일 오전이다.
앞서 박태환의 건강을 점검한 의사 김 씨가 남성호르몬을 보완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고 처방에 따라 주사를 맞는 날이었다. 이때도 박태환 측은 주사제 성분을 조심스럽게 여겼지만, 김 씨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당시 박태환은 주사제 약병을 보지 못했던 데다 스테로이드 계통의 약물이 금지약물인 것은 알았지만 테스토스테론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운동선수로서도 몰랐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주사를 맞기 전 박태환 측은 의사 김 씨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해 뒀는데, 이 대화에서도 박태환 측은 주사제가 혹시 문제가 되지 않을지 걱정했고 김 씨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사제를 맞은 박태환은 같은해 9월에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했고 도핑테스트를 받았다. 박태환이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한 것을 안 것은 작년 10월 말이다. 도핑테스트에서 첫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통보된 것이다.
박태환은 같은 해 11월 병원을 찾아가 항의했으나, 이때도 의사 김 씨는 체내 성분을 투여한 것이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다고 검찰은 전했다. 당시 대화 내용 역시 박태환 측이 녹음을 해 뒀다.
박태환은 작년 말 국제수영연맹이 최종적으로 금지약물 양성반응 사실을 통보해 오자 지난달 20일 녹취록을 첨부해 의사 김 씨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고소했다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관련자 10여 명을 소환조사한 결과 박태환에게 주사를 놓은 의사 김 씨에게 과실책임이 있다고 봤다. 본인은 네비도가 금지약물인 사실을 몰랐지만 부작용을 제대로 선수에게 설명하지 않은 점이 인정된다는 것.
특히 네비도의 사용설명서 첫 문구에 “약물에 함유된 테스토스테론은 세계반도핑기구 금지약물”이라는 사실이 적시돼 있는데 이를 김 씨는 간과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아울러 김 씨는 박태환에게 네비도 주사를 투여한 사실을 진료기록부에 기재하지도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이런 검찰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유무죄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의사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과실이 있었다고 해도 신체 기능을 강화하는 쪽에 쓰이는 네비도를 주사한 게 죄가 되느냐는 것이다.
검찰은 체내 호르몬 수치가 변화하는 것도 건강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김 씨를 기소했지만 신체 기능을 악화하지 않는 주사제 투여로는 과실치상죄의 ’상해‘를 구성할 수 없다는 의견도 법조계에서 많아 뜨거운 법정 공방이 뒤따를 전망이다.
윤영화 온라인 기자 yun.layl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