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없는 메시지 보자 머리털 ‘쭈뼛’
조 씨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기다리다 못한 조 씨의 친언니는 사흘 후 경찰에 미귀가신고를 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조 씨는 수락산의 한 계곡 바위틈에서 옷가지에 싸인 백골 상태로 발견된다. 과연 조 씨의 죽음에는 어떤 곡절이 숨겨져 있던 것일까.
이번에 노원경찰서 강력5팀 이종길 형사가 전하는 사건은 갑자기 집을 나선 후 사라진 한 20대 여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와 범인을 체포하기까지의 영화 같은 수사과정에 대한 것이다. 수사 결과 범인은 20대 남성 2명으로 이 여인이 빚 독촉을 하자 여인을 유인해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사건은 주범이 피해여성과 애인관계로 지냈다는 점, 생매장이라는 잔혹한 수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도봉경찰서 강력팀 근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이 형사는 “마치 퍼즐 맞추기 같던 그때의 수사과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며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한 세상이지만 이런 사건을 맡을 때마다 정말 가슴이 착잡하다. 과연 돈이 뭐기에 사랑하던 여자를 그렇게 끔찍하게 살해해야 했는지….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기까지 꼬박 1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뒤늦게나마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의 넋을 위로할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
우선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상황에 대한 이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조 씨가 왜 그 늦은 시각에 갑자기 집을 나섰는지 이유를 밝히는 일이었다. 함께 살고 있던 친언니의 진술에 따르면 조 씨는 잠자리에 들기 전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했다고 한다. 조 씨는 상대방에게 ‘도대체 돈 언제 갚을 거냐’며 잠시 실랑이를 벌이는가 싶더니 ‘그럼 밥이나 먹을까’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집을 나섰다는 거였다.”
수사는 자연히 조 씨와 통화를 한 의문의 인물을 찾는 데 집중됐다. 조사 결과 조 씨는 당일 새벽 일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애인이었던 장필모 씨(가명·당시 25세)와 두 차례에 걸쳐 전화통화를 했고 그 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인물이 공중전화로 건 3통의 전화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기도 전에 사실상 수사를 보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다음은 이 형사의 얘기.
“담당 형사가 조 씨의 친언니로부터 미귀가자 신고를 받고 막 수사에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낯선 사람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가 소식이 없다는 신고와 달리 조 씨의 언니가 조 씨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확인 결과 조 씨가 언니에게 ‘언니, 나 지방에 돈 벌러 왔어’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마’ ‘요즘 나 진짜 힘들어’ 등의 문자를 수시로 보냈고, 동생의 안부를 걱정하던 조 씨의 언니도 답장을 보내는 등 서로 교신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동생을 찾아달라’고 하던 조 씨 언니의 진술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로서는 실종자가 가족과 뻔히 연락을 주고받는데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이 사건은 초임 형사에게 배당이 된 데다가 얼마 후 담당 형사가 다른 지역으로 전출을 가게 되면서 수사가 보류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조 씨 실종사건은 단순가출로 인정돼 내사가 종결되는 쪽으로 정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 형사는 이 사건을 지켜보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처음부터 내가 담당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가만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큰 의문은 친언니가 조 씨와 주고받았다는 문자메시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하는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주고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는데 바로 이것 자체가 이상했던 거다. 생각해봐라. 2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자매끼리 문자메시지로만 대화한다는 게 이해가 되는 일인지. 더 이상한 것은 조 씨가 언니뿐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등 그동안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과도 일체 통화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확인 결과 조 씨는 실종 직전 친한 친구와 춘천으로 놀러가자는 약속까지 해둔 상태였다. 가족들과 일체 한마디 상의도 없이 잠적했다는 것, 지방으로 돈 벌러 간다는 사람이 별다른 준비도 없이 성급하게 떠났다는 것, 들뜬 마음으로 친구와 여행계획을 세웠던 조 씨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고 새벽에 집을 나갔다는 것이 좀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과연 친언니가 거짓진술을 해가면서까지 친동생의 실종을 허위로 신고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 형사는 처음부터 이 사건을 다시 한 번 파헤쳐보기로 결심한다. 이 형사는 조 씨의 휴대폰 통화내역을 분석하는 한편 실종 전 1개월간 조 씨와 통화한 인물들의 리스트를 모두 뽑아 일일이 탐문수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일차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이 바로 조 씨의 애인 장 씨였다. 장 씨는 조 씨와 통화한 내역이 많았을 뿐 아니라 조 씨가 실종된 당일 새벽에도 통화를 한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장 씨를 피의자로 지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힘들게 착수한 재수사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집요하게 수사를 계속하던 중 이 형사는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찾아내게 된다.
“조 씨가 실종된 이후 누군가 조 씨의 휴대폰으로 060 성인대화방에 여러 차례에 걸쳐 접속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사용된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8월경부터 추적을 거듭한 결과 접속자로 드러난 사람은 이정수(가명· 당시 36세)라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이정수가 사라진 조 씨의 휴대폰으로 대화방에 접속했다는 사실은 그가 조 씨의 실종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수사팀은 이정수의 행방을 찾아 나섰고 그해 12월 초 서울 면목동의 한 PC방에서 그를 발견해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이 씨는 060대화방에 접속한 사실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고 한다. 대신 수사팀은 이 씨로부터 뜻밖에도 장필모 씨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이어지는 이 형사의 얘기.
“이정수에 따르면 장필모와는 도박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인데 장필모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장필모가 이정수의 주민등록번호로 성인대화방에 접속했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또 장필모는 이정수에게 도박자금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돈이 장필모의 돈이 아니었다고 하는 거다. 조사 결과 그간 장필모는 애인인 조미진 씨에게 돈을 빌려 이정수의 도박자금을 대줬던 것으로 드러났다. 장필모가 조 씨와 돈 거래가 있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확인된 셈이었다.”
수사팀은 장 씨를 찾아낸 뒤 그를 상대로 집중적인 조사를 벌였다. 다음은 당시 조사과정에 대한 이 형사의 얘기.
“장필모는 사건 당일 조 씨를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장필모의 진술에 따르면 ‘새벽 1~2시경 노원구 공릉동에서 (조)미진이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안 받더라. 그리고 1~2분 후 미진이에게 샤워 중이어서 못 받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이었다. 조 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장필모는 평소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 피해자 조 씨가 백골로 발견된 수락산 계곡. 범인 장 씨는 애인이었던 조 씨를 심하게 폭행한 후 살아있는 채로 바위 틈에 유기했다. | ||
“당시 장필모가 사용하던 휴대폰은 그해 1월경부터 요금미납으로 발신이 불가능하고 수신만 되는 상태였다. 따라서 조 씨에게 전화를 걸고 나서 수분 후 다시 받았다는 장필모의 진술은 거짓이었다. 발신기지국에 조회해 봤지만 발신기록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또 장필모는 조 씨와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했으나 이정수를 조사한 결과 장필모가 조 씨와 채무관계가 있었고 그로 인해 줄곧 조 씨와 만나기를 피하는 등 적잖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장필모는 일관성 없는 진술을 하는가 하면 중요한 대목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수개월간 진행한 수사 결과 장필모는 분명 의심스런 인물이었다. 060성인대화방에 접속한 인물이 실종된 조 씨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이 형사는 조 씨가 누군가에게 이미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했다고 한다. 수사팀은 조 씨 실종사건을 살인사건으로 가닥을 잡고 조심스럽게 수사 강도를 높여갔다.
실종 당일 조 씨의 휴대폰 통화내역과 송수신 기지국을 재차 확인하던 수사팀은 당시 조 씨가 서울 상계 4동에서 발신된 전화를 받은 기록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일단 수사팀은 조 씨나 장 씨의 주변 사람들 중 상계 4동에 연고지를 둔 인물을 찾아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용의선상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장필모 씨의 친구로 몇 건의 강력범죄 전과가 있던 서민식 씨(가명· 당시 25세)였다.
그러나 당시 서 씨는 이미 또 다른 사건의 살인미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상태였다. 이 형사는 구치소로 직접 찾아가 서 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이와 함께 수사팀은 조 씨가 장 씨와 채무관계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 조 씨의 통장 입출금내역을 확인했다. 그뒤 조 씨가 거래했던 은행콜센터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게 된다. 다음은 이 형사의 설명.
“조 씨가 사라진 후 한 남성이 은행 콜센터에 전화를 건 사실이 있더라. 우리는 그 남성이 상담원과 대화한 녹취록을 입수했다. 조 씨의 카드로 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녹취록을 듣는 순간 머릿결이 쭈뼛했다. 1분가량에 불과했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장필모의 친구 서민식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범인이 아니라면 서민식이 조 씨가 거래하던 은행콜센터로 전화를 걸 이유가 없었다. 이는 그동안 두 사람이 보여온 행적과 수집한 정황증거들과 맞물려 이들이 범인임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장 씨는 경찰에 피의자로 검거된 뒤에도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집요한 추적과 수사를 하면서 경찰이 수집한 증거 앞에서는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사체만 찾지 못했을 뿐 내 머릿속에는 사건의 전말이 이미 그려진 상태였다. 나는 시치미를 떼는 장필모를 진술녹화실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네가 1년 동안 나한테 거짓말한 것을 싹 한번 들어봐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동안 조사 받을 당시 했던 진술을 듣던 장필모의 얼굴이 점차 하얗게 질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서민식의 목소리가 녹음된 콜센터 녹취록을 들려줬다. ‘자, 어떠냐. 이래도 너희들이 한 짓이 아니냐’고 했더니 이내 눈물을 쏟으면서 ‘잘못했습니다’라며 범행 일체를 자백하더라. ‘그래, 어디다 묻었냐’고 물으니 ‘수락산 계곡에…’라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끔찍한 살인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장 씨가 조 씨를 유기했다는 수락산 계곡은 등산로와는 떨어진 한적하고 가파른 곳이었다. 조 씨가 실종된 지 1년 만에 그 곳을 찾았을 때 조 씨의 사체는 완전히 부패돼 유골과 옷가지만 남아있던 상태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장 씨가 친구까지 끌어들여 애인인 조 씨를 살해한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두 사람은 2002년부터 연인관계를 유지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직장에 다니던 조 씨와 달리 특별한 직업이 없던 장 씨는 조 씨에게 돈을 빌리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게다가 장 씨가 도박에 손을 대면서 한 번에 수십만 원, 수백만 원씩 빌리기 시작한 돈은 어느새 1500만 원으로 불어나게 된다. 그러나 무직이었던 장 씨가 돈을 갚을 방도가 있을 리 만무했다. 참다못한 조 씨는 장 씨와 헤어질 것을 결심하고 그동안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조 씨의 빚 독촉이 날로 심해지자 장 씨는 친구 서 씨를 끌어들여 조 씨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게 됐던 것이다. 다음은 이 형사의 설명.
“사건 당일 새벽 장필모는 친구 서민식이 사는 동네에서 공중전화로 조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돈 언제 갚을 거냐’고 독촉하는 조 씨를 ‘돈 줄 테니 나와라. 밥이나 먹자’는 말로 불러냈다. 상계동 지하철역 앞에서 조 씨를 차에 태운 이들은 수락산 중턱으로 끌고 가서 마구 폭행했고 이 과정에서 조 씨는 갈비뼈가 나가는 중상을 입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심한 외상으로 항거불능 상태가 된 조 씨를 인근 계곡으로 끌고간 뒤 바위틈에 억지로 밀어넣었다. 조 씨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이들은 조 씨를 유기한 바위틈을 돌멩이로 막아 생매장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범행 후 이들은 조 씨의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가족들을 안심시키는 한편 조 씨의 거래은행에 제3자가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는 등 파렴치한 행각을 벌여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장 씨 등이 범행 후에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추가로 2건의 살인 및 인질강도 범행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두 사람은 각각 무기징역(서 씨)과 15년(장 씨)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