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평 2500원 때문에 ‘칼부림 질주’
이번에 이천경찰서 경제팀 김광제 팀장이 전하는 사건이 바로 8년여 전 이천 일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명 ‘이천 연쇄살인사건’.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50대 남성이 사흘간 이천과 충북 단양에서 저지른 끔찍한 연쇄살인 행각과 그를 검거하기까지 10여 일간의 숨 막히던 수사과정에 대한 얘기다. 이천경찰서 강력팀 근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김 팀장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마치 ‘살인기계’나 다름없었다. 첫 번째 살인 후 그의 살인행각엔 브레이크가 없었으니까. 도피 와중에도 과거의 기억까지 떠올려 앙갚음할 대상을 찾아 나섰다는 자체도 충격적이었고…. 첫 범행 후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범행을 저질렀던 것 같다. 더구나 범행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가 살아온 불우한 성장 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드러나 우리로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사건이었다.”
2000년 4월 12일 오후 4시 반경 천병호 씨(가명·당시 52세)는 이천시 중리동에 소재한 한 건강원에서 지인들과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놀이’는 진행됐지만 노름판이 끝날 무렵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돈을 잃은 천 씨가 개평 2500원을 가져가려 하자 옆에 있던 A 씨(당시 51세)가 이를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개평 2500원을 서로 가져가겠다고 싸우기 시작했고 급기야 심한 욕설과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때였다. 분을 참지 못하며 씩씩거리던 천 씨가 가게 안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손에 흉기를 들고 돌아왔다. 그리곤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이 씨를 향해 덤벼들었다. 가게 안은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해버렸고 사람들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천 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린 A 씨는 과다출혈로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천 씨는 자신을 말리는 동네사람에게까지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힌 후 그대로 달아났다. 당시 상황에 대한 김 팀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주변사람들의 진술 및 현장상황으로 볼 때 천 씨의 첫 번째 범행은 우발적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말 그대로 사소한 것이었는데 당시 천 씨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범행 후 천 씨는 첫 번째 범행 장소에서 1.9㎞가량 떨어진 이천시 창전동의 한 주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점 내실에서 잠을 자고 있던 업주 B 씨(당시 49세)를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한 뒤 현금 3만 원을 챙겨 달아났다. 다음은 김 팀장의 얘기.
“살해된 B 씨로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너무도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상황도 아니었다. B 씨는 저항 한 번 못하고 그 자리에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천병호가 B 씨를 살해한 이유는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2년여 전 천병호는 B 씨가 운영하는 주점 앞에서 잠깐 노점을 운영했었는데 B 씨가 영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그를 구타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B 씨에게 된통 당한 천병호는 상당히 억울해하며 이후에도 마음속 깊이 앙심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의도하지 않게 살인을 저지른 천병호가 홧김에 2년 전 일까지 떠올려 B 씨를 찾아간 것이었다. 첫 번째 범행을 저지른 지 불과 1시간 만이었다.”
하루 동안 일어난 두 건의 살인사건으로 인해 이천 시내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특히 수사팀이 우려한 것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첫 번째 범행과 달리 두 번째 살인은 다분히 의도적인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는 사실이다. 또 불과 한 시간 간격을 두고 두 명이나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으로 보아 천 씨는 추가 범행도 저지를 수 있는 위험인물이었다. 피살된 B 씨와 천 씨의 관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원한이 범행동기였음을 주목한 수사팀은 즉시 천 씨의 소재 파악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천 씨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특히 수사팀을 곤혹스럽게 한 것은 천 씨의 소재를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외지 출신으로 이천에 들어와 건강원 종업원으로 근무하던 천 씨는 미혼으로 가정도 꾸리지 못한 채 홀로 살아온 인물이었다. 수사팀은 연고지를 파악하기 위해 천 씨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김 팀장의 설명.
“수사팀이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천병호는 그야말로 불우한 성장과정을 거쳐 외롭게 살아온 인물이었다.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천 씨는 다섯 살도 되기 전에 부모를 여의고 고아원을 전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달리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성장해왔으니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 아닌가. 어린 나이에 몸도 고달팠지만 정신적인 충격도 상당했을 터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채 전국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근근이 생활해왔나 보더라. 특히 천병호는 승려가 되려 했던지 한때 지방의 사찰에서도 생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지방 곳곳의 사찰을 많이 옮겨 다녔더라.”
수사팀은 우선 천 씨의 고향으로 향했다. 무슨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천 씨를 알고 있는 동네주민들로부터 사건 다음날인 13일 천 씨가 고향에 다녀갔다는 말을 듣게 된다. 몇몇 지인들에 따르면 천 씨는 5촌 조카를 만나려고 기다리다 밤늦게까지 만나지 못하자 그냥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후 천 씨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 씨의 과거 행적을 추적하던 수사팀이 주목한 것은 천 씨가 사찰생활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수사팀은 천 씨가 머물렀던 몇몇 사찰에서 잠복하는 동시에 천병호가 한때 노숙자로 생활했다는 제보에 따라 용산과 종로 파고다공원 등에도 형사들을 급파해 수사망을 좁혀 나갔다. 그러기를 수 일째, 수사팀은 우연히 그 무렵 충북 단양에서 발생한 한 건의 살인사건을 접하게 된다. 이어지는 김 팀장의 얘기.
“14일 단양군 영춘면 문수사에서 주지스님(당시 72세)과 그의 아내(69세)가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더라. 누군가 절에 침입해 노부부를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둔기로 때리는 등 잔혹한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난 사건이었다. 관할 경찰서 형사들은 두 사람을 상대로 범행이 이뤄졌다는 점, 범행수법이 너무도 잔인한 점, 없어진 돈이 4만 원도 안 되는 소액에 불과했던 점 등으로 보아 원한에 의한 범행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이렇다 할 용의자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단양 살인사건을 꼼꼼히 살펴보던 김 팀장은 중요한 사실을 파악하게 됐다고 한다.
“바로 문수사가 한때 천병호가 머물렀던 절이었다는 사실이다. 단양에 직접 내려가서 확인해봤는데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나 연고지 등으로 판단컨대 천병호의 범행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해된 주지스님 부부는 천 씨가 문수사에 머물 때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로 이들에게 어떤 앙금을 갖고 있던 천병호가 그곳에 찾아갔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던 것이다.”
수일간 잠복과 탐문수사를 계속하던 수사팀은 천 씨가 서울 종로 인근의 불교용품 판매점에 나타났다는 첩보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잠복근무를 한 결과 첫 사건이 발생한 지 12일 만에 서대문의 노상에서 천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천 씨는 왜 노부부를 그토록 끔찍하게 죽인 것일까. 조사 결과 천 씨의 범행은 두 번째 살인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묵은 감정 때문으로 드러났다. 다음은 김 팀장의 얘기.
“천병호에 따르면 한때 자신이 문수사에 머물 때 주지스님 부부가 자신을 구박했다고 하더라. 천 씨로서는 당시 노부부의 태도가 적잖이 섭섭했던 것 같고 상처도 받았었나 보더라.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이들 부부를 향한 원망과 증오는 천 씨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앙금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사흘 동안 무려 4명을 상대로 이뤄진 천 씨의 살인행각도 충격적이었지만 수사팀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천 씨의 범행동기가 너무도 사소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실제로 김 팀장은 “듣고 보니 피해자들에 대한 ‘원한’까지도 아니었다. ‘서운함’ ‘섭섭함’에 가까운 사소한 감정이 쌓여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의도치 않게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 후 묵혀 있던 감정이 폭발해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들을 찾아갔고 그것이 연쇄살인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천 씨는 “첫 범행을 저지른 후 막가자는 심정으로 섭섭하게 했던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나도 죽으려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천 씨가 범행 다음날 고향에 내려간 이유도 수십 년 전 있었던 일로 인해 앙심을 품고 5촌 조카를 살해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드러나 수사팀을 경악케 만들기도 했다.
당시 천 씨의 연쇄살인 행각은 뉴스에 오르내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경찰청 범죄심리 분석 자문위원회’는 천 씨를 상대로 정신심리분석을 진행한 결과, ‘성장과정의 결손에서 비롯된 인성장애와 사회부적응, 폭력에 대한 피해의식과 강박관념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돼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천 씨는 고아원에서 ‘힘센 형’들에게 수시로 폭행을 당했으며 군대에서는 고참들의 폭행을 견디지 못해 탈영까지 한 인물로, 어릴 때부터 잠재된 피해의식이 강한 대항 욕구를 가져왔고 결국 끔찍한 살인동기로 발전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실제로 천 씨는 성인이 될 때까지 절도와 폭력행위를 반복했으며 주변 사람으로부터 따돌림과 폭행을 당하는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혼도 하지 못하고 단순 노무직을 전전하는 등 사회 밑바닥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던 천 씨는 ‘외롭고 천한 사람은 차별 받는다’는 생각에 젖어 사회제도와 법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강도살인과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천 씨는 법정에서 사형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다.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천 씨는 항소심에서 ‘공소사실 중 일부 범행은 저지르지 않았으며 정신이상 상태에서 벌어진 범행이므로 1심 형량이 너무 무겁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의 심판은 냉정했다. “범행 방법이 잔혹하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데다 반사회적인 성품에 대한 개정의 정이 없는 피고인에게 극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당시 재판부의 의견이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