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민 손’은 평소 따뜻한 손이었다
그런데 김 씨의 ‘사고’ 뒤에는 누구도 상상 못했던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이 사건은 ‘사고’가 아닌 ‘청부살인’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번에 성남수정경찰서 강력 3팀 최경 형사가 전하는 사건은 보험금을 노리고 두 번이나 남편을 청부살해하려했던 악독한 주부에 대한 얘기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최 형사는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건장했던 한 남성을 졸지에 반신불수의 몸으로 만들어버린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아내였다. 내연남과 공모, 사고를 가장해 남편을 살해하려했던 것이다. 돈 앞에서는 사람 목숨이 파리목숨처럼 여겨지는 삭막한 시대지만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끼리도 믿지 못할 세상이 된 듯해서 더없이 마음이 착잡했던 기억이 난다.”
얼핏 보기에 김 씨의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실족사고로 보였다. 추운 날씨에 등산을 하다가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는 사고는 겨울철엔 흔한 사고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김 씨는 상당량의 술까지 마신 것으로 확인돼, 술김에 집중력이 흐려져 발생한 사고로 여겨지기에 충분했다. 최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누가 보더라도 본인 부주의로 인한 사고일 뿐이었다. 가족들 역시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그런데 경찰의 귀에 우연히 이상한 얘기가 들려왔다. 간신히 의식을 차린 김 씨가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다급히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김 씨는 척추가 골절되는 심한 외상으로 반신불수의 몸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따라서 김 씨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은 말하나마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김 씨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유난히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는 점이었다. 이어지는 최 형사의 얘기.
“어느날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김 씨가 중환자실 간호사를 붙들고 얘기하더라는 거다. 무조건 ‘나 좀 살려달라’는 거였다. 김 씨는 거의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사고’의 진실에 대해 얘기했다고 한다. 내용은 자신이 당한 사고는 사고가 아니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김 씨의 얘기인즉 부인과 공모한 남자들이 자신을 죽이려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무시무시한 얘기는 간호사의 입을 통해 김 씨의 가족에게 전해졌고 그것이 경찰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김 씨에 따르면 사건에 가담한 인물은 총 3명. 자신의 부인 정순례 씨(가명·39)와 정 씨의 내연남 박영진 씨(가명·22), 그리고 박 씨의 사회선배 김만호 씨(가명·32)가 그들이었다.
김 씨의 기막힌 사연은 이랬다. 사건 당일 11월 27일 김 씨는 이들과 함께 충남 서산시에 소재한 팔봉산으로 등반을 떠나게 된다. 부인 정 씨와 박 씨는 ‘누나’ ‘동생’ 하며 격의없이 지내던 사이로 김 씨 역시 박 씨와 ‘매형’ ‘처남’지간으로 지내오던 차였다. 이날 박 씨 일행은 ‘신혼 이벤트를 해주겠다’며 등산을 제안했고 일행의 말에 김 씨는 아무 의심없이 선뜻 따라나섰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산 정상에 올라간 이들은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김 씨 역시 빡빡한 생활속에서 벗어나 탁 트인 정경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김 씨의 뒤에 있던 박 씨 일행이 갑자기 김 씨의 등을 밀쳤다. 다음은 최 형사의 얘기.
“안그래도 그곳은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가파른 산 정상이었다. 무방비 상태의 김 씨는 그대로 아찔한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떨어졌더라면 김 씨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하늘이 도운 것인지 김 씨는 절벽 계단 중간에 있는 펜스를 잡아 가까스로 추락을 면할 수 있었다. 기적적으로 펜스를 잡고 매달린 김 씨는 필사적으로 일행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김 씨를 도와주기는커녕 펜스를 잡고 있는 김 씨의 손을 마구 때렸다. 극심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펜스를 놓은 김 씨는 10m 아래의 철계단으로 떨어졌다.”
결국 김 씨는 척추가 부러지는 큰 상해를 입게 된다. 절벽 중간 철제다리 위에서 많은 피를 흘리며 신음하던 김 씨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김 씨는 다행히 지나가던 등산객들의 눈에 띄어 119구조대에 의해 긴급 후송됐고 구사일생으로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더욱 기가 막힌 일은 그때부터였다. 이어지는 최 형사의 얘기.
“큰 사고가 나자 사고지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러자 부인과 박 씨 등이 뒤늦게 허겁지겁 나타나 ‘조심하지 그랬냐. 괜찮은 거냐’며 호들갑을 떨더라는 것이다. 뻔히 자신의 등을 떠민 것도 모자라 가까스로 펜스를 붙잡고 있는 자신을 억지로 밀어 떨어뜨린 것을 아는 김 씨로서는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김 씨의 부인과 박 씨 등은 김 씨를 떠민 후 서둘러 현장을 빠져 나갔다가 사람들이 모여들자 의심을 살 것을 우려해 뒤늦게 나타난 것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김 씨는 바로 어제 있었던 ‘이상한 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제도 김 씨는 죽을 뻔했다가 간신히 살아난 셈이었다. 최 형사가 전한 그날의 얘기를 들어보자.
이때까지만 해도 김 씨는 부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고작 ‘요즘 내가 재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다음날 연달아 비슷한 일을 당하게 되자 김 씨는 이들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챈 김 씨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려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단독으로 가족들과 접촉할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사건의 진상이 알려질까봐 두려워한 부인과 그 일당들이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김 씨의 옆을 지켰을 뿐 아니라 타인과 접촉이 불가능하도록 휴대전화까지 빼앗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들은 김 씨가 자신들의 범행을 눈치챈 것을 알아차리고 김 씨의 입을 막기 위해 협박과 회유를 하기도 했다.
아무리 험악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김 씨의 얘기는 쉽게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이 최 형사의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수도 없었다. 최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단순한 ‘우연’치고는 너무도 이상한 점이 많았다. 일반인 같으면 살면서 한 번도 겪기 힘든 일을 이틀 연속으로 두 번씩이나 겪었으니…. 또 일행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김 씨를 산으로, 바다로 유인한 것도 그렇고 일행 중 김 씨만 그런 일을 연달아 당했다는 것이 뭔가 석연찮았다. 확인 결과 김 씨와 정 여인은 11월 초에 혼인신고가 되어 있더라. 즉 사고가 났을 당시는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서류상으로 볼 때 두 사람은 신혼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더욱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좀 더 면밀한 정황증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찰은 김 씨 부부에 대한 면밀한 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뭔가 석연찮은 점이 드러나게 된다. 이어지는 최 형사의 얘기.
“조사 결과 정 여인과 김 씨는 오랜 인연을 맺어온 사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해 4월 정 여인이 김 씨의 집에 세입자로 들어오면서부터 알게 된 사이였다. 당시 배우자와 헤어지고 외롭게 살아오던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졌고 결국 동거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이상한 점은 정 여인이 재혼한 남편 김 씨 명의로 여러 개의 보험을 들어놓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정 여인이 여러 개의 보험에 가입한 시기는 혼인 신고를 전후해서였다. 정 여인이 든 보험은 김 씨가 사고 등으로 사망할 경우 각기 1억 원에서 1억 50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 수혜자인 정 여인 앞으로 돌아오는 보험금의 액수를 합하면 무려 5억 원에 달했다.”
이쯤되니 경찰은 뭔가 찜찜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혼인신고 전후로 거액의 보험에 가입한 것이나 혼인신고를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김 씨에게 이상한 일들이 발생했다는 것은 경찰이 보기에도 이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고’ 현장마다 정 씨와 박 씨 일당이 함께 있었다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조사 과정에서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경찰을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단순히 ‘누나’ ‘동생’ 사이인 줄 알았던 정 씨와 박 씨가 깊은 관계였다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은 상당한 나이 차가 있었지만 정 씨가 김 씨와 재혼하기 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였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간신히 밥먹고 살아가는 빠듯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무리해가며 정 씨가 여러 개의 보험에 가입한 것도 의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전업주부로 지내던 정 씨가 매달 60만여 원 상당의 보험료를 납부하기 위해 대리운전까지 해왔다는 것도 석연치 않았다.
다음은 최 형사의 얘기.
“정 여인 일당을 불러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박영진과 김만호로부터 범행 일체에 대한 자백을 받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였다. ‘남편이 죽으면 거액의 보험금을 타게 된다. 남편을 죽여주면 1억 원을 나눠 주겠다’는 정 여인의 제안에 따라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박 씨 등의 진술이었다. 모든 정황을 종합해볼 때 정 여인은 애초부터 김 씨와 결혼생활을 유지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녀는 계획적으로 재혼한 남편 명의로 거액의 보험에 가입했고 거액의 사례금을 미끼로 내연남 일당을 끌여들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간단히 끝날거라 생각했던 ‘남편 죽이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마다 남편은 극적으로 살아나왔고 이들의 어설픈 살인극은 뒤늦게 알아챈 남편에게 덜미가 잡힌 셈이 됐던 것이다.”
하지만 공범들의 자백으로 추악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음에도 정 씨만은 ‘모르쇠’로 일관한 채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지 않아 경찰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법원의 심판은 냉정했다. 강도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 씨는 법정에서 7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