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수가 늘어나면서 훌륭한 판사가 법복을 벗고 저질 판사들이 더러 스며들어오는 걸 봤다. 같은 판사들 사이에서도 저 분은 꼭 대법관이 될 훌륭한 분이라고 존경하는 판사가 있었다.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흠이 없었다. 거의 성자 수준이었다. 형을 선고받는 피고인들조차도 수긍하면서 그를 존경했다. 상황에 따라 그는 형식적인 법 논리를 초월했다. 법은 그 근본정신에 들어있다면서 관례의 틀을 과감히 깨기도 했다.
최고법관 자리가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그는 조용히 사표를 냈다. 주위에서는 아무도 그가 법복을 벗는 이유를 몰랐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진실을 알았다. 아버지인 그는 박사학위 준비 중인 아들의 학비 때문에 법관직을 그만 둔 것이다. 아들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그는 모든 걸 철저히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다. 대법관의 가능성을 아들을 위해 스스로 그만둔 그 모습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그런 자리들을 가짜들이 채우기도 했다. 재벌가에 팔려간 영혼이 실종된 판사도 봤다. 동료 판사들조차 나갔으면 해도 절대 나가지 않았다. 그가 쓴 판결들은 이미 신뢰를 잃었다. 백발의 노인이 법정에서 머리를 숙이는 것은 사법부의 권위에 대한 존중이다. 판사들 중에는 그 고개 숙임을 자신에 대한 것으로 착각하고 교만한 사람도 있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판사가 된 부류다. 대부분의 법관들은 조직의 명예에 누가 될까봐 항상 긴장을 하고 산다. 법관들만큼은 그래도 깨끗하리라는 국민들의 신뢰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다.
어느 법원장에게서 들은 얘기다. 캐나다 여행을 하다가 관광객들이 야생의 엘크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걸 봤다. 그 역시 엘크 떼 앞에 다가가 구경을 하고 있었다. 플래시에 자극이 된 대장 엘크가 갑자기 일어나 관광객 중에 서 있던 그를 향해 뿔을 겨누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도망을 했다. 10여 초의 도망 중에도 그는 죽음보다 ‘법원장이 엘크 뿔에 받혀 죽다’라는 기사가 더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사법부의 명예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자존심은 법원 내부에서도 바이올린 현같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것 같다.
친한 친구가 고등법원 배석판사로 있을 때 얘기다. 그는 판사들 사이에서 불성실하다는 평가가 제일 걱정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새벽 3시면 일어나 기도하고 판결문을 썼다. 판사 일을 하는 게 고시공부를 할 때보다 훨씬 힘들더라고 고백했다. 판사의 임용과 재임용에 대한 청문회 이상의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다. 소명의식이 없이 그 자리자체가 목적인 판사는 퇴출해야 한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