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지수일 뿐 ‘베팅 지표’는 아니다
2월 8일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 열린 산지통합경주에서 ‘레이팅 1위마’ 경부대로(2번 마)가 맨 먼저 결승선 통과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먼저 레이팅이 어떻게 산출되는지부터 알아보자. 레이팅은 지난해 10월부터 한정적으로 1, 2군 마필에만 적용해오던 것이다. 1부터 140구간까지의 숫자로 표시하는데 수치가 높을수록 경주마의 객관적인 능력이 높은 것은 물론이다. 먼저 6군은 레이팅이 없다. 신마가 대부분이라 능력 자체가 베일속에 가려져 있어 그럴 수밖에 없다. 5군은 40 이하로 책정된다. 4군은 41~60, 3군은 61~80, 2군은 81~100, 1군은 101~140이다.
그렇다면 각 군에 속한 경주마들의 레이팅은 어떻게 산정하는 것인가. 최초의 레이팅은 수득상금액을 기준으로 한다고 한다. 최근 6개월 수득상금 50%, 최근 1년상금 30%, 총수득상금 20%의 비율로 정하고 여기에 나이가 어린 말은 일정한 감량을 준다는 것. 레이팅은 ‘파트1’의 경마선진국 70%가 시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혈통면에서 국내 경마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미국경마에선 시행하고 있지 않다. 마사회에서 꼭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아다시피 미국은 가장 앞서가고 있는 경마 선진국이 아닌가. 다만 상금에 의한 현재의 승급제도가 허점이 많아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는 취지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레이팅의 객관성 문제는 시행초기인 만큼 좀더 지켜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다만 레이팅에 의한 부담중량 부여는 상당히 현실적이면서 합리적으로 보인다. 기준마를 선정해 1마신에 2포인트, 1포인트는 0.5kg정도로 계산한다고 한다. 레이팅 감점을 줄 때도 경주 중 불상사 또는 기수의 부적절한 기승으로 발생한 성적 부진은 참고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상의 것을 참고로 해서 실전경마를 한번 살펴보자. 서울과 부경을 통털어 최강마로 평가받고 있는 경부대로가 출전해 가장 관심을 모았던 부경 일요경마 6경주부터 살펴보자.
서울의 1군 경주도 한번 살펴보자. 일요경마 서울 9경주에선 광교비상이 레이팅 122로 압도적이었고, 2위는 불꽃대왕과 강해가 112로 같았다. 그 다음은 서울정상 108, 무악 104, 글로벌퓨전 103이었다. 이 경주는 핸디캡 경주가 아닌 별정경주로 진행됐기 때문에 레이팅 1~6위가 동일부중(58kg)을 지고 달렸다. 그렇다면 당연히 레이팅 순으로 입상이 갈리고 착차도 커야 했지만 실전에선 그렇지 못했다. 입상마들이 비슷하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레이팅 1위인 광교비상이 1위, 공동2위였던 강해가 2위, 레이팅 6위였던 글로벌퓨전이 3위를 했다.
글로벌퓨전의 3위는 이변이었지만 단거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변이라 할 수도 없었다. 거리적 특성을 감안하지 못한 약점이 드러난 것이다. 글로벌퓨전이 2000미터에 뛰었다면 5위 이내에도 들기가 어려웠을 테지만 1200미터 경주였기 때문에 3위를 차지했다. 레이팅에서 경주마의 거리 적성은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사회에서도 당분간은 거리별로 차등화된 레이팅 산정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밖의 레이팅 1위마도 살펴보자. 어느 정도 객관성이 담보될 수 있는 3군 이상의 경주만 살펴본다. 금요일 9경주의 플레임캠프는 1위로 골인했지만 같은 날 10경주 골든캐럴은 5위를, 11경주의 포리스트볼드는 7위를 하는 등 부진했다. 일요경마에서는 5경주의 승리그랜드가 11위로 부진했다.
서울에선 토요일 8경주 개선행진곡이 7위를 했지만 일요일 10경주에선 9번 베스트나인이 3위를 차지해 체면은 지켰다.
결과적으로 레이팅은 1군 경주에선 상당히 정교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하위군으로 내려갈수록 그 느낌은 떨어졌다. 성장기에 있는 말들은 기복이 심하고 마필 컨디션도 자주 변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경마팬 입장에선 레이팅에 플러스 알파를 찾아내야 함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주에도 언급했지만 레이팅은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아야지 베팅의 지표로 삼아선 안된다. 경마에는 경주마의 능력 외에도 도착순위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 가장 큰 변수는 기수의 능력이다. 레이팅이 높은 말도 기수가 실수하거나 마필의 특성에 맞게 말몰이를 해주지 못한다면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부담중량도 마찬가지다. 부담중량은 경마에서 능력 차이를 조절하는 유일한 장치다. 부담중량을 늘리거나 줄임으로써 모든 출전마에 우승기회를 공평하게 준다고 하지 않는가.
전개상의 변수도 있다. 선행을 나서야만 능력발휘를 하는 선행마의 경우 레이팅이 높아도 자기보다 빠른 말이 있다면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입상하기는 힘들다는 것은 경마 몇 달만 해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경마는 상수의 게임이 아니라 변수의 게임이다. 레이팅은 어디까지나 상수일 뿐이다. 경주에서 레이팅 차이를 극복해낼 수 있는 변수, 예컨대 조교우수마, 적임기수로의 변경, 부중감소특혜, 단독선행마 등을 찾아낸다면 레이팅 순위는 과감히 무시해도 되는 것이다.
김시용 프리랜서